비교하지 않는 부모가 될 수 있을까?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게 영유아검진은 때맞춰 돌아오는 기념일과 같다.
출산 직후, 갓 태어난 아이를 품에 안은 그 감동이 채 가시기도 전에
간호사 선생님은 방금 막 엄빠가 된 생초짜 부모에게 숱한 것들을 안내한다.
뭐가 뭔지도 모르겠고 얼떨떨하게 "네, 네, 네.." 대답하는 사이,
분명 영유아검진에 대한 설명도 지나갔다.
아이는 세상에 남과 동시에 국가에서 지정한 검진대상이 된다.
어느덧 15개월을 맞은 우리 집 둘째도 얼마 전 3차 검진을 마쳤다.
그런데 내 아이가 '정밀검사 요함'을 받았다!
검사를 받는 동안 의사 선생님 왈
"오우 몸무게가 많이 나가네요."
둘째는 예정일보다 2주 일찍 태어났음에도 3.5kg을 가볍게 찍고 태어난 모태 우량아(?)라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런데 검사결과지를 받아보니 100명 중 몸무게가 96등(100등이 가장 무거움..)?!?!
첫째가 일곱 번의 영유아검진을 받아 나도 이 분야에선 고참인 줄 알았는데
그동안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정밀검사 요함'?
걱정하는 나를 보며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괜찮아요. 몸무게만 많이 나가는 게 아니라 키도 크고 머리도 크니까요."
앗... 네 그렇군요 선생님;;
우리 둘째는 내 생각보다 좀;; 더 많이 컸다. (100명 중 키 95등, 머리크기 90등)
"여보 우리 **이 정밀검사 요함이래."
바쁜 회사일로 함께 검진을 가지 못한 남편을 놀래키고 싶어서 이렇게 운을 뗐다.
남편이 사색이 되어하던 일을 멈추고 물었다.
"왜?"
"너무 커서"
"에이 난 또~"
좀 많이 큰 둘째의 영유아검진은 이렇게
귀여운 에피소드를 남기고 끝이 났다.
하지만 내가 영유아검진을 웃으며 넘어가지 못했던 때가 있었다. 바로 첫째의 5차 검사(생후 30~36개월).
영유아검진은 크게 신체계측과 발달선별검사로 이루어진다.
36개월 이전까지의 발달검사의 질문은
*정지되어 있는 공을 찰 수 있는가?
*숟가락을 들어 음식물을 집에 가져갈 수 있는가?
*벽면 전등 스위치를 끌 수 있는가?
*연필의 아랫부분을 잡을 수 있는가?
등으로 비교적 쉽게 느껴졌었다.
내가 굳이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아이가 먼저 하는 것들이어서 고민 없이 답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세 돌을 앞두고 받아 든 5차 검사의 문진표는 내 아이가 하지 못하는 것 투성이었다.
*세발자전거의 페달을 밟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가?
*그려진 점선을 따라 선을 그을 수 있는가?
*시범을 보여주지 않고도 네모를 보고 그릴 수 있는가?
*옷의 단추를 풀 수 있는가?
*신발 끈 구멍이나 구슬 구멍에 끈을 끼우고 뺄 수 있는가?
아이에게 시켜보지 않아 할 수 있는지 알지도 못하는 것도 많았다. 부랴부랴 아이에게 네모를 보여주고 선도 그어보게 했지만 야속하게도 아이는 관심도 없고 짜증만 냈다.
옷의 단추를 푸는 건 기대도 못했고
자전거의 페달은 뒤로 돌리기 바빠 계속 제자리였다.
'하지 못한다'에 체크하는 문항이 태반이었다.
내가 명확하게 '할 수 있다'에 체크한 건 대소변 가리기 관련 문항에 불과했다.
마치 나의 과오 같았다.
왜 나는 아이에게 일찍이 시켜보지 않았을까?
자극이 부족했나...
다른 아이들은 이때에 이걸 할 수 있는 걸까?
아이가 뒤쳐진 거 같아 불안했다.
이 무렵 어린이집 선생님께
"어머니. ♡♡ 이가 소근육이 조금 약해서 연습 좀 많이 해주세요."
라는 (지금 생각해 보면 크게 예민할 거 없는, 선생님의 감사한) 조언도 듣게 되며
'우리 아이는 다른 아이들보다 뒤처졌구나.'
라는 이상한 결론을 내버렸다.
그날부터 나는 특훈에 들어갔다.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아이와 선긋기 연습을 하고
가위질도 가르치고
네모, 세모 등 따라 그려보게 했다.
역시 쉽지 않았다. 어르고 달래 봤지만 짜증엔딩일 때가 많았다.
이제 어느덧 네 돌을 지나 다섯 돌을 바라보고 있는 아이. 내 아이는 여전히 위의 일들을 하지 못할까?
아니, 그렇지 않다.
특훈을 그만둔 지 오래였지만
(제 풀에 지쳐서 중단했다. 역시 가족끼리는 뭘 가르치는 게 아니다.)
신기하게도 아이는 올봄을 기점으로 많은 일들을 자연스레 해낼 수 있게 되었다.
오래 걸리지만 단추도 스스로 채울 수 있고
드디어 페달을 앞으로 밟는 법을 터득했으며
미숙하지만 도형도 곧잘 그린다.
36개월 검사지에서 받아 들었던 과업을
약 50개월에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36개월 검사 당시 혼자 심각한 나에게
엄마가 딸의 디스를 곁들이며(?) 해주신 말이 있다.
"너도 그 나이에 그런 거 다 못했지 뭐.
넌 초등학교 1학년때까지 엄마가 단추 채워줬어.
우리 ♡♡이 정도면 너무 잘하는 편이지. 때 되면 다~ 하는 걸 뭘 그런 거까지 검사하냐? 그런 거 믿지 마라"
그땐 귀여운 손녀딸에 콩깍지가 제대로 씐
손녀바보 할머니의 무조건적인 두둔이라고만 여겼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엄마의 말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다.(역시 육아 슨배님..)
분명 아이들은 (어렸을 적 우리가 그러했듯) 우리가 가르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
또 제 속도에 맞게 커간다.(비교는 크게 의미가 없다.)
영유아검진과 같은 정형화된 검사는
육아에 너무 몰입해 버린 우리에게
간혹 과한 걱정을 안겨줄 수 있다.
아이의 개인차를 고려하지 않은 채 '평균'의 틀 안에 갇혀 이분법적 사고를 하게 하기 때문이다.
(나는 평균의 허상을 아이를 키우며 여실히 느끼고 있다.)
왜 아이의 신체발달을 굳이 줄 세워야 하는가.
작은 사람이 있고 마른 사람이 있기 마련인데
아이가 성장곡선을 벗어나면
부모는 왜 그토록 불안해하는가.
검사결과에 의연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여기에 자유로울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만큼 우리는 아이를 사랑하니까.)
그래서 실제로 많은 부모들이 아이의 영양상태나 신체발달, 언어발달 등을 본인의 성적표처럼 여기곤 한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은 알고리즘에 의해 입력값에 따라 출력값이 고정되어 있는 AI가 아닌,
생동하는 유기체이므로 그저 그 속도를 인정해 줄 필요가 있을 것이다.
어쩌면 아이를 너무도 사랑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3자의 입장에서 '그렇구나 그럴 수 있지'라는
마음이 아이에게도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탄생과 동시에 검진대상이 된 아이들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고
사회인이 되어서까지도 정형화된 검사와 사고의 틀 안에 갇히게 된다. (시험 내지 취업, 결혼, 출산 등과 같은 의례 등)
6살인 내 아이도 이미
'한글 떼기'라는 어마무시한 과제를 받아 들고 고군분투하고 있다. 교정해주고 싶은 부분이 한가득이지만 5차 영유아 검진의 기억을 떠올리며
애써 못 본 척하고 있는 중이다.
앞으로도 내 아이는 인생의 수없는 과업을 마주할 것이다. 그 안에서 내가 의연한 부모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
태어날 때 자기 밥그릇은 다 가지고 태어난다는
말이 있듯
내 아이의 성장을 낙관적으로 그리며 기다리는 엄마가 되고싶다.
그래서 우리가 함께하는 이 시간이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행복으로 기억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