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가수의 귀환을 기다리며
Tracklist.
01. 내게 다가올 널 위해
02. 괜찮아요
03. 기분 좋은 날
04. Say Goodbye
05. 가재와 게
06. A Moment
07. Mr. Flower
08. 하룻밤의 꿈
09. 첫사랑
10. 부메랑
11. 꼭
12. 버담소리
13. 야상곡
몇 년 전, 모 단체가 김건모의 사생활 관련 악성 루머를 폭로하였다. 그 일로 검찰에 출두하여 조사를 받았고, 결국 김건모와 관련된 구설수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이 일 때문에 한때 '국민가수'라고 불리었던 김건모는 너무 많은 것을 한꺼번에 잃어야만 했다. 그리고 세상사에 환멸을 느낀 그는 지금까지도 대중들 앞에 돌아오지 않고 있다.
김건모는 그저 가수 한 명이 아니다. '국민가수'라는 칭호가 괜히 붙었겠는가? 그의 목소리는 우리 모두가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는 추억이자, 90년대라는 한 시대를 상징하는 엠블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그가 안타까운 일에 휘말려 우리 곁에 오지 못한다는 사실이 무척 안타깝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를 향한 짙은 그리움을 담아, 그의 앨범에서 가장 부진한 성과를 낸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이 6집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김건모의 6집 [Growing]은 1999년 11월에 발표되어 90년대가 끝나는 시점의 마침표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앨범이다. 당시 중학교 1학년인 나는 이 앨범이 나오기를 기다려 발매일에 맞춰서 구매했는데, 앨범의 첫 트랙을 듣고 '역시 김건모'라며 감탄했다. 어렸을 때라 왜 어떤 면에서 좋은지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하면 흑인음악 특유의 리듬감과 음색, 그리고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믿음을 주는 김건모 특유의 감성이 한데 어우러져 안정감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곡을 차례차례 들어가며 생각했다. 이번 앨범도 전곡이 좋으니까 또 백만 장 찍겠구나, 하고.
헌데 웬걸. 듣다 보니 당황스러운 곡이 하나 나왔다. 그게 10번 트랙 '부메랑'이었다. 이 곡은 그간 김건모가 선보여 왔던 댄스곡과도 결이 약간 달랐다. 어린 시절의 내가 그 '다름'을 온전히 받아들이기엔 역부족이었기에, 나는 부디 '부메랑'만은 타이틀곡이 아니기를 바라고, 또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그 주 음악방송에 김건모가 컴백 무대를 이 곡으로 하는 걸 보면서, 무척 좌절했던 기억이 난다.
댄스곡을 타이틀로 하고 싶었다면 차라리 다음 트랙인 '꼭'이 좋지 않았을까. 그게 아니라면 기존에 본인이 해 오던 어법에 충실하여 발라드 타이틀로 'Say Goodbye'를 내걸고 후속곡으로 '부메랑'이나 '꼭'을 밀었으면 성공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건 그냥 내 생각일 뿐이다. 당시의 김건모에게는 기존의 방식이 따분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고, 그래서 새롭게 어떤 시도를 해 보고 싶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세월이 좀 지나서 다시 '부메랑'을 들어보니 김건모가 왜 이 곡을 타이틀로 밀었는지도 좀 알 것 같았다.
어린 내가 '부메랑'을 듣고 당황했던 이유는, 바로 '가요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부메랑'은 훵크 소울 댄스곡의 어법에 맞춰 만들어진 곡이었으므로 당시 가요만 듣고 팝을 아예 듣지 않던 내게는 당연히 당혹스럽게 느껴질 수밖에.
'한국의 스티비 원더'라고 불리우며 흑인음악의 표현을 잘하는 것으로 정평이 난 김건모가 6집 정도 내면서는 '제대로 된 흑인음악'을 해보고 싶었을 것이다. 가요계에서는 이제 제법 잔뼈 굵은 중견가수 대접을 받고 있으니, 이번만큼은 자기 음악의 뿌리가 되어 주었던 '흑인음악' 자체를 제대로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 같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이 앨범은 김건모 앨범 중 유일하게 밀리언 셀러 등극에 실패한 앨범이 되었다. 하지만 이 앨범은 뒤늦게야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그 가치를 재조명받아서 종국에는 밀리언셀러에 성공하게 된다. 비록 당대에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훗날에라도 명반의 지위를 획득하게 되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Credits & Comments
01. 내게 다가올 널 위해
작사 한경혜
작곡 방시혁
편곡 방시혁
앨범의 문을 여는 곡인 만큼, 이 앨범 역시 앞서 발표된 작품들만큼 잘 만들어진 웰-메이드 앨범일 것이라는 예측을 할 수 있게끔 믿음을 주었던 곡이다. urban 분위기의 R&B 곡으로, 김건모가 흑인음악을 표현하는 능력이 얼마나 출중한지를 제대로 느껴볼 수 있다.
02. 괜찮아요
작사 박진영
작곡 박진영
편곡 박진영
과거 김건모의 백업 댄서로 활약했던 바 있었던 박진영이 랩 피쳐링과 프로듀싱까지 도맡아 한 노래이다. 과거의 좋은 인연이 세월이 흐른 뒤 새롭게 만나 의미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그 존재감이 인상적이다.
03. 기분 좋은 날
작사 조경아
작곡 정재윤
편곡 정재윤
제목처럼, 듣고 있노라면 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상쾌한 봄날 같은 노래이다.
04. Say Goodbye
작사 김태윤
작곡 김건모
편곡 김건모
멜로디가 선명하고 기승전결이 뚜렷한 발라드이다. 대중을 사로잡을 수 있을 만한 요소가 고루 갖추어진 좋은 곡인데, 이 곡이 타이틀이 되지 못한 건 다소 아쉽다.
05. 가재와 게
작사 김태윤
작곡 김석원
편곡 김석원
선배 가수 이문세와 듀엣으로 호흡을 맞춘 곡으로, 결혼에 대한 각기 다른 생각을 자유롭게 나누는(?) 독특한 노랫말이 재미있다.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과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의 'The Girl Is Mine'과 비슷한 무드를 풍기는 아름다운 듀엣 곡이다.
06. A Moment
작사 강세일
작곡 강세일
편곡 강세일
앨범에서 유일하게 가사 전문이 영어로 된 곡으로, 팝송이라고 해도 위화감이 거의 없을 정도로 뛰어난 발음과 표현력이 압권이다.
07. Mr. Flower
작사 김태윤
작곡 김건모
편곡 김건모
3집이나 5집에서 자주 선보였던 뉴 잭 스윙 장르의 곡이다. 자신의 목소리로만 쌓은 풍성한 코러스가 듣는 재미를 배가한다.
08. 하룻밤의 꿈
작사 김건모, 여정윤
작곡 방시혁
편곡 방시혁
꿈처럼 달콤하게 빠져드는 부드럽고 나른한 느낌의 발라드이다.
09. 첫사랑
작사 남정호
작곡 김건모
편곡 김건모
첫사랑의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어쿠스틱한 곡이다.
10. 부메랑
작사 문창배
작곡 문창배
편곡 문창배, Wayne Linsey
문제의(?) 타이틀곡 '부메랑'이다. 어렸을 땐 제발 이 곡만은 타이틀곡이 아니길 빌고 또 빌었을 만큼 이 곡에 대한 느낌이 좋지 않았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다시 들어보니 이 곡, 정말 잘 만든 곡이었다. 일단 사운드 자체가 굉장히 화려하다. 마치 라스베이거스 쇼 음악을 듣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게다가 훵키 소울 리듬이 듣는 사람을 무척 흥겹게 만들어준다. 당대에 그 가치를 미처 알아봐주지 못한 나 자신이 미워질 만큼? 지금은 이 곡이 아주 좋아졌다.
11. 꼭
작사 남정호, 윤일상, 김태윤
작곡 김건모, 윤일상
편곡 윤일상
앞의 '부메랑'과는 달리, 이 곡은 당시의 내게 곧바로 '느낌'이 왔다. 이 곡을 밀었다면 히트는 따논 당상이라고 생각했었다. 당시에 히트곡 제조기라고 불리었던 무려 '윤일상'의 작품인 데다가 빵빵한 디스코 사운드가 덧입혀진 이 곡을 듣고도 춤을 추지 않을 도리는 없다. 무척 신나는 곡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가사는 무척 애절하다.
12. 버담소리
작사 김건모, 이승호, 윤일상, 김태윤
작곡 윤일상
편곡 윤일상
영어 문장 'But I'm Sorry'를 한국어 발음 나는 대로 적은 제목이라고 하는데, 곡의 동양적인 선율과 절묘하게 어울린다. 이 곡도 타이틀감인데. 아니나 다를까 앨범의 흥행 여부와 관계없이 이 곡은 김건모의 대표 히트곡 중 하나로 아직까지 사랑받고 있다.
13. 야상곡
작사 김건모
작곡 김건모
편곡 김건모
그래도 나의 원픽은 이 곡이다. 이 곡은 피아노 반주 위에 김건모의 목소리만 얹힌 초미니멀 구성의 노래인데, 이 곡을 들으면 왜 김건모가 그토록 뛰어난 가수로 평가받는지를 여실히 느낄 수 있다. 김건모의 목소리는 악기를 최소화할수록 더욱 빛난다. 그런 목소리가 있다. 악기들이 오히려 목소리를 방해하는 것 같은 목소리. 더 가까이서 선명하게 듣고 싶은 목소리. 김건모의 목소리가 그러하다. 그래서 '야상곡'에서의 김건모는 다른 악기들을 다 걷어내고 오로지 피아노 위에 자신의 목소리로 멜로디를 불렀다. 백미(白尾)라는 말은 이럴 때 써야 하지 않을까. 앨범의 문을 닫는 곡으로 이만큼 훌륭한 선택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