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할 수 있다
보증금 2000만 원에 월세 80만 원
월세는 높았지만
더 이상 묻고 따질 여력이 없었다
매월 나가는 월세를 감당해야 했기에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취직도 하고
엄마랑 나는
바뀐 환경에 금세 적응하며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갔다
회사에서는 소처럼 미친 듯이 일했다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 영업팀에 들어갔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제일 끝까지 남아
홀로 사무실 불을 끄고 퇴근을 했다
매일같이 난리 피우던 궁예 삼촌과 숙모가 없으니
마음이 그렇게 후련하고 참 편하더라
‘…………..’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어느 날인가부터
밥 먹으려 밥숟가락만 들면
엄마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엔 공감하며 하소연을 들어줬다
엄마도 그만큼 힘이 드니 나한테 털어놓고 싶었겠지
그렇지만
딸은 감정쓰레기통이 아닌데..
그 증세는 날이 갈수록 심해져 갔다
나는 눈치보기 바빠
엄마 표정 엄마 숨소리 엄마 말투를
조용히 그림자처럼 밟아 갔다
“엄마 왜 그래 또 무슨 일이야?”
엄마의 한숨의 이유는 항상 똑같았다
“너희 이모가 보증금 빌려준 걸로 온갖 생색이란 생색은 다 내면서 엄마를 너무 무시해 “
“$^%&^*&^(*^(%$#!~~!@##%$^%”
큰외삼촌의 갑질에서 벗어나니
이번엔 작은 이모의 갑질이라니
엄마 형제들은 왜들 이럴까 참나
숨이 턱 막혔지만
비참함을 느끼며 슬퍼하는 건
나에게 시간낭비뿐
‘그 시간에 얼른 돈이나 벌자’
라는 생각밖에 할 수 없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밥상머리 앞에서 늘 돈 이야기를 꺼내니
밥이 목구녕으로 넘어가려야 넘어갈 수가 없었다
내 몸도 마음도 정신도 삐쩍 말라갔다
어느 날은 노이로제 걸릴 만큼
그놈의 돈돈 얘기하는 게 지겨워서
밥숟가락을 던지며
“배고파서 밥 좀 먹으려 하면 왜 자꾸 돈얘길 꺼내!!! “
소리 지르고 씩씩대며 방으로 들어가 버린 날도 있다
우리 엄마에게
가난이 배어있는 그 모습이 사무치도록 싫었다
내가 그 모습을 닮아갈까 두려웠다
엄마와의 대화는
어떻게든 열심히 살아내서 버티고 싶은
나를 한없이 추락하게 만들어버려서
엄마와 대화하는 것 자체가 너무나 큰 스트레스였다
나는 돈을 벌어야 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아주 많이는 대체 얼마일까 생각해 봤을 때
오늘 하루 아무 걱정 없이 잠들 수 있는 만큼만
딱 벌고 싶었다
공부머리는 없지만 승부욕 하나만큼은 남달라서
한번 불붙으면
미친 듯이 불타오른다
그렇게 회사에서도 인정받아
동기들의 시기질투를 감내하며
그러거나 말거나 매일 같이 열정을 다했다
그러면서 더 큰 욕심이 생겼다
‘푼돈에 얽매지 말고 좀 더 큰 물에서 놀아보자!‘
다니던 회사를 돌연 퇴사하고
돈을 더 벌 수 있는 영업의 길로 향했다
한 번도 생각조차 안 했던 길
전공과 완전 반대인 곳에서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까?’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었지만
나는 하루하루 지날수록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샘솟았다
그게 지금 생각해 보면 나의 터닝포인트였다
그땐 한창 코로나가 시작할 때쯤이었는데
외부 활동도 금지되고
출퇴근 모두 재택으로 바뀌게 되니
사람들이 점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집에 있으니까 여기저기 다 고쳐볼까?
하며 너도나도 집을 고치기 시작했다
코로나는 즉 인테리어의 황금기였다
난 여기서 이모가 빌려주신 보증금을 청산하고
내 인생에서는 없었던 결혼을 꿈꾸게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마음먹기에 따라 인생은 달라질 거야
그러니 나 자신을 믿자
누가 뭐라 하든 외로이 달려왔다
그게 내가 걸어온 길이였어
만약 정신병동에서 탈출하지 않았다면
난 매일 같이 주저앉아 울기만 했을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