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툰 글씨로 차용증을 썼다

살기 위해서

by 싹쓰리





신발을 벗고 소파에 앉는 순간

머리가 빙빙 돌았다

금방이라도 픽하고 쓰러질 것만 같은 느낌

이모는 따듯한 물 한잔을 건네주며

나를 진정시켜 주었다

그러자 무슨 일인지 자초지종을 물어보는데

모든 말이 들리지가 않더라

그저 내 머릿속에선


‘어떤 액션을 취해야 이모가 날 도와주실까?’



거절당할 용기가 없어서

도와달라는 말은 못 하고 계속 말을 빙빙 돌렸다

처음이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도와달라고 누군가에게 말을 한다는 게

침이 바짝바짝 말라간다

심장은 쿵쾅대며 손발은 달달 떨렸다

나는 연신 끅끅 대며 울기만 했고

또 한 번 좌절해야 했다



“이모 그냥.. 이런저런 일이 있어서 속상해서 왔어요 “


숙모의 급발진과 사촌언니에게 폭행당한 내용만

간략하게 말씀드렸다

그 이후 타이밍을 계속 보고 있었는데

사촌오빠가 배고프겠다며

나를 위해 요리를 해주겠다고 한다


‘..............’

‘혹시 도와달라는 거 눈치채고 말을 돌리는 걸까?’

’ 정신 차려 밥 먹으려고 울면서 여기까지 온 거 아니잖아 ‘

‘바보 같아 정말..’


그렇게 나는 나와 끝없이 타협하는 동안에

주방에선 풍성한 음식들이 차려지고 있었다

마치 내입을 꽉 막아버리듯 말이다

모든 상황들이 다 나를 죽이는 것만 같고

도움을 요청하러 가서 밥을 먹고 있는 나의 모습

‘그래 오늘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먹었더니 배가 고프긴 하네...’


눈치 없이 배는 고팠다


허기진 배와 허기진 마음이 배가 되어

눈물을 참고 꾸역꾸역 식사를 시작했다

나에게 남은 거라곤 절망적인 마음뿐

자존심이 대수냐 싶은데

난 자존심이 중요했나 보다

도저히 그 자리에서 입이 떨어지지 않으니..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로

소가 도살장에 끌려가는 것처럼

불구덩이 같은 집으로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이모는 그 마음을 알았을까?



작은 이모네 사촌오빠가

어릴 적부터 항상 해주던 말이 있다


“ 00아 거긴 정신병자들이 사는 곳이라.. 너도 같지 않으려면 그 집에서 꼭 탈출해야 해 알았지?! “



오빠 말이 맞아

난 지금까지 정신병자들과

정신병동에 살고 있었어

어릴 적 무심코 웃어넘긴 농담에 불과했지만

그걸 알기까지 꽤 오랜 세월이 걸렸구나

순간 머리가 띵하며 울린다


‘어떻게든 탈출해 보자 정신병동 탈출을 위하여 무엇이든 해보자고..‘





그날 밤 공황장애가 찾아왔다

응급실까지 갔다가 돌아와 오지 않는 잠을 청해야 했다

내일은 또 어떤 날이 올까 하는 불안감에

심장이 너무 아파온다

엄마는 자꾸 무슨 일 있었냐고 물어보는데


“괜찮아 그냥 요즘 스트레스받아서 그런 것 같아 자고 나면 괜찮아질 거야”


자고 나면 모든 것이 다 괜찮아지길 바라며

뜬눈으로 서글픈 밤을 보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이 되자마자 아침부터 우리 집 현관문을 쾅쾅 두들기며 맞은편 사는 사촌언니가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을 하며 날 또 때리러 왔다

힘도 좋지 힘도 좋아



비실비실한 엄마와 난 저항할 힘도 없었다

멧돼지는 우릴 계속 공격했다

멧돼지가 그렇게 뿔이난 이유는 있었으니

울면서 찾아온 조카가 마음에 걸리셨는지..

이모가 그날 밤 전화해서

애를 왜 때리냐고 다그친모양이다

그러니까 화가 나서 때려죽이려 온 것

결국 온 가족이 다 소환되어 우리 집에 모였다

숙모 삼촌 사촌언니 사촌오빠 그리고

작은 이모까지 오셨고

외삼촌은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숙모와 딸 편을 들었다

역시 천생연분 짝짜꿍이다

사촌오빠만이 엄마와 나를 지켜주며

싸움을 중재시키고 있었다




칼만 안 들었을 뿐

살인사건 나기 직전의 싸움이랄까

무서웠다 나랑 엄마랑 이렇게 죽을까 봐

죽음이 코 앞까지 다가온 것처럼 몸이 덜덜 떨렸다

그 사건을 계기로 엄마랑 나는

그 정신병자 집단에서 탈출하게 된다











이모는 나에게 한 가지 딜을 하였다


엄마 대신 내가 차용증을 작성하면

보증금 2000만 원을 빌려주겠다고..


이제 갓 성인이 된 나에게 차용증이라니

알 수 없는 묘한 기분에 착잡했지만

당장 이 돈이 아니면 갈 곳이 없기에

살기 위해서 서툰 글씨로 차용증을 작성하였다

그런 나를 무기력하게 바라만 보는 엄마..

우리 엄마는 나를 지켜줄 수가 없다는 현실에

그날 난 온 마음이 다 녹아내렸다

그 이후 종종 엄마는 그때 얘길 꺼낸다

어떻게 어린 조카한테 차용증을 쓰라고

할 수가 있는지 그런 이모가 참 야속하다고


난 마음속으로 말한다

‘ 엄마는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었어 난 그게 더 야속해 엄마..’













결국 나를 지킬 수 있는 건 나뿐일까?

그렇다면 단단해지고 강해져야겠다

다시는 이런 수모들을 겪지 않도록 말이다






































keyword
이전 06화반지하 청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