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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 나눔 이야기

노력했어요. 그래도 더럽다면 미안합니다.

by 닭죽 Dec 13.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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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를 가게 되어 집정리를 하고 있습니다.

집 크기가 삼분의 일 정도 작아지기 때문에 짐을 많이 정리해야 합니다.


지난달부터 당근마켓 중고거래로 열심히 물건을 내다 팔았습니다.


물건이 거래되는 시세를 대강 확인하고 약간 저렴하게 올리면 잘 팔리는 것 같습니다.



팔릴 것 같은 물건은 팔고,


애매한 물건은 나눔 하기도 하면서 짐을 줄였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버리려고 모아둔 퍼즐 매트 (아이들 층간소음 방지용)를 쓰레기봉투에 넣으려다가


나눔 하면 쓰실 사람 있으실까? 싶어 당근에 올려 보았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당근! 하고 채팅알림이 옵니다.



"안녕하세요! 혹시 어디 제품건지 알스 있으가요?"


"안녕하세요 쿠팡이나 다이소에서 샀을 거에요. 회사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네네 알겠습니다. 좋은하루 보내세요.(이모티콘)"


"꾸벅.(이모티콘)"


이분은 선호하시는 브랜드가 있는 모양입니다. 쓸모없는 걸 올렸나 싶어 약간 기가 죽었습니다.



당근! 하고 다시 채팅알림이 울립니다.


"안녕하세요! 혹시 제가 받을 수 있을까요?"


"네 안녕하세요. 가능하세요."



드리겠다고 신이 나서 답하고 보니 퍼즐 매트가 너무 더러워 보였습니다.


청소기로 흡입했지만 재질에 들러붙은 먼지, 머리카락 이런 건 거의 떨어지지 않았거든요.


거기에 애들 낙서, 흘린 자국, 늘어붙은 자국.


버리겠다고 생각해서 손대지 않았는데


누굴 주겠다고 했으니 손에 걸레를 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몇 년 전에 당근마켓을 통해 아이들이 타는 전동 자동차를 나눔 받은 적 있습니다.


돈주고 사려면 십만원이나 이십만원이 당근 넘기 때문에 살 생각은 없었는데,


애들 경험 삼아 태워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공짜라면 뭐든지 좋지?!)


모르는 동네를 찾아가 suv 짐칸에 겨우 실리는 전동 자동차를 낑낑거리며 겨우 싣고 왔는데


주인은 만나지 못했고, 그 자동차는 집 밖에 오래 방치된 듯한 그런 전동차였습니다.


배터리는 장착되어 있었지만 방전이 오래되서인지 죽어 있었고,


원주인의 아이들이 험하게 가지고 놀았는지 패인 자국, 낙서자국, 테이프 붙은 것들이 덕지덕지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그 차를 가지고 집에 와서 보는데 어떤 슬픔 같은 게 밀려왔습니다.


그 집 아이들이 맘껏 가지고 놀며 남긴 그 흔적들을 보는데,


우리 애들한테 못해주는 거 같고 그 애들이 쓰다 남긴 그런 물건이나 주는 것 같아서


비교되는 그런 마음이 들어서 울컥했습니다.


그래서 박박 닦았습니다. 테이프는 떼어 내고 그 자국과 색연필 낙서들은 알콜솜으로 열심히 문질렀습니다.

거칠게 패어진 홈들은 사포로 박박 문질렀습니다. 꽤 깊어서 한참 문질러야 했죠.


앞유리를 대신한 플라스틱을 한쪽만 사포질 하니 이상해서 전체면을 전반적으로 문질러 줘야 했습니다.


오염되서 이상한 소리만 둥둥 울리는 스피커는 떼어내 버리고, 밑면에 나사로 조립된 부분은 전부 열고 분해해서


그 안의 흙과 풀쪼가리들을 죄다 청소했습니다.


인터넷으로 12v 납축전지를 주문하고 납축전지를 충전할 수 있는 충전기도 따로 주문했습니다.


이 비용이 4~5만원 정도 들었습니다.


공짜라고 이게 마냥 공짜는 아니었던 겁니다.


(그래도 애들이 전동차 타고 신나하던 모습을 떠올리면 입가에 미소가 떠오릅니다.)



그랬던 기억이 있어서 더더욱 더러운 매트를 그냥 드릴 수 없었습니다.


매트 앞면은 그나마 나았습니다. 바닥에 맞닿아 있던 뒷면은 먼지와 이물질로 더 꼬질꼬질했습니다.


걸레로 털어내고, 닦아서 벗겨지는 때는 벗기고, 털어내 모아진 이물질은 청소기로 흡입하고,


퍼즐매트가 36장이니까, 한 장 한 장 청소하다 보면 금방 할 것 같았습니다.


처음에는 약간 쾌감도 들었습니다. 닦아낼수록 깨끗해지는 매트를 보면서...


살면서 이렇게 깨끗이 하고 살지, 남 주면서 이러나 싶기도 했고요.


그런데 닦아낸 매트가 한 장 한 장 쌓일수록 손이 피곤해지기 시작하고,


한가지 걱정이 생겼습니다.


나눔 신청하신 이웃분이 답변이 없는 겁니다.


제가 답변을 드리고 삼십분이 지났는데도...


아이 등교시간이라 바빠서 그런 게 아닐까? 싶기도 했는데


나눔 받겠다고 해놓고 맘이 바뀌어서 그냥 잠수 타신 거면 어쩌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제만 해도 아이세탁기를 구매하겠다고 사흘 전에 예약하신 분이,


오전 중에 올게요 하신 분이 감감무소식으로 잠수를 타셨습니다.


열받더라고요. 나는 딴 데 나갈 스케줄도 못 잡고 기다렸는데 말입니다.


암튼 그분처럼 혹시 이분도?



마누라가 옆에서 한마디 보탭니다.


"남편이 나눔 신청했다가 마누라한테 뭐 그런 걸 가져오냐고 한 소리 들은 거 아냐?"



진짜 그런 거면 어떡하죠?


열심히 닦아서 쓰레기봉투에 버려야 하나?


나는 무얼 하고 있나? 쓰레기를 깨끗이 버리려고 닦고 있는 건가?


오래 쓴 물건에는 영이 깃들어서 도깨비가 되기도 하고 그런다던데 이 매트들에도 기분 같은 게 있을까.


깨끗이 닦아주니 좋니 매트들아? 아니면 버려지는 게 싫어서 기분 나쁘니?



36장 매트 앞뒷면을 닦고 깨끗이 하는데 거의 1시간이 걸렸습니다.


최저시급 1만원인 시대입니다. 사회가 시간에 적어도 1만원이라는 가치를 부여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만원이면 새 거를 사도 되는 거 아닙니까?


(다이소 검색해 보니 만원이면 퍼즐매트 20장을 살 수 있습니다.)


고개를 갸웃하게 됩니다.


물건을 안 버리고 오래 쓰는 건 좋은 일일 텐데.




하여튼 다행스럽게도 청소가 끝나갈 무렵 당근 알림이 왔습니다.


잘 받아가시겠다는 당근 채팅 알림이었습니다.


다행입니다.


열심히 닦아서 버리지는 않게 되어서.


떨어져 모인 이물질, 먼지, 부스러기들을 다시 한번 시원하게 청소기로 빨아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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