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중요한 연습_J
레슨 10회 차부터 7번 아이언으로 칠 때 볼을 바닥에 두기 시작했다. 그동안은 30센티미터 높이의 티 위에 볼을 올려두고 쳤었다. 그러니까 지금껏 아이언으로 70~80 미터를 쳤네 어쨌네 했던 건 레슨 9회 차까지로, 모두 티 위에서의 일이었다. 필드에서 아이언 샷이라면 무조건 잔디 위에 바로 볼을 올려놓고 쳐야 한다. 레슨 초반 티 위에서 아이언 샷을 하게 하는 건 초보자를 배려해 일단 난이도를 낮춰주는 조치다. 볼을 매트에 직접 놓고 칠 때보다 볼이 클럽 페이스에 정확히 맞을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볼을 바닥에 직접 놓고 치는 연습에 들어가자마자 볼보다 땅을 먼저 치는 ‘뒤땅’이나 볼 윗부분을 때리는 ‘탑볼’ 실수가 무진장 늘어났다. 바닥과 볼을 한꺼번에 같이 쳐야 공이 뜬다고 하는데 생각만큼 쉽지 않다.
레슨 횟수와 연습 날 수가 늘어났지만 수업 진도에 따라 난이도도 함께 높아지다 보니 자신감이 급감한다. 이번 연습에선 7번 아이언으로 최소 70~80미터쯤은 날려야 볼이 스크린상 페어웨이에 안착하는데 티를 없애니 평균 비거리가 고작 40~50미터 수준이다. 타깃 안착률 0%. 영영 필드에 못 나갈 것만 같아서 울고 싶은 심정이 된다.
주말 오후, K와 함께 연습장에 갔다. K는 정말이지 장타다. 스크린 기록상 드라이버로는 300미터 넘게 치는 걸 목격했고, 아이언으로 쳐도 200미터를 거뜬히 넘는 수준이다. 보면 늘 ‘롱기스트 챌린지’를 즐기고 있다. K 바로 뒤 타석에서 나는 아무리 쳐도 볼이 40미터 앞에 떨어진다. 흑, 괜히 자존심이 상한다. K가 흘끗 흘끗 내 기록을 보는 눈치다. 속으로 비웃을 게 뻔해서 선수 쳐서 말을 걸었다. "평균 비거리가 41미터야. 이게 정상이야?" K가 답했다. "비정상이지." 나는 절망스러웠다. "볼이 떨어져도 페어웨이가 보이지도 않아." K가 얄밉게 응수했다. "그렇게 치면 한 10번은 쳐야 그린에 올리겠다." 맘이 상했지만 나는 도움을 청했다. "어떻게 해야 돼?" K가 고수처럼, 간결하게 말했다. "채를 부드럽게 쥐고 클럽 헤드 무게로 볼을 쳐. 스웨이 하지 말고." 나는 시도했다. 팔 힘을 빼고 클럽을 부드럽게 쥐자, 헤드 무게를 느껴야 돼...... 진심으로 주의를 기울이며 간절하게 스윙, 임팩트. 타격감이 아까 보다는 쬐금 더 좋은 것 같은데…… 오, 그나마 볼이 64미터 날아갔다. 그렇구나, 클럽 헤드 무게로 볼을 치는 감을 익혀야겠구나. 문득 '10번 쳐야 볼을 그린으로 올리겠다'는 K의 말이 끔찍하게 느껴졌다. 그 정도로 못 치고 싶진 않다. 너무 울적해져서 사탕 한 알을 까먹었다. 연습장에서 당충전용으로 쌓아둔 디저트 캔디. 사과맛이 어쩐지 달콤쌉쌀했다.
골프는 사실상 연습장을 거치지 않고 바로 필드에 나갈 수 없다. 마치 무대와 같은 필드에 비로소 서기 위해 어느 정도 연습 기간이 필요하다. 물론 사람에 따라 첫 라운드까지 걸리는 시간은 천차만별이란다. 어차피 첫 라운드 전까지는 연습생 신분에 불과하다. “일단 빨리 필드에 나가봐야 된다”고 부추기는 지인들도 있지만 다소 완벽주의적 ‘I’ 성향의 나로서는 기본적 스윙이 만들어져야 필드에 나갈 최소한의 자신감이 생길 것 같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들이 동반자가 되어준다 해도 말이다. 그러니 생애 첫 라운드가 언제일지를 나는 아직 확신할 수 없다. 일단 연습량을 확보해야 한다. 다만 생계가 걸린 직업이 아닌, 취미에 있어서 나는 기본적으로 스트레스를 최소화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그래야 순수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골프 연습 또한 과하게 하진 않는다. 그저 호기심과 좋아하는 마음을 충족시킬 수 있을 정도로 연습 중이다. 대체로 주 5일 정도 연습장에 나가서 1시간쯤 연습하고, 매주 한 두 차례씩 레슨을 받는다. 컨디션이 좋고 의욕이 상승하면 가끔씩 연습 시간을 더 달라고 요청해 30분이나 1시간쯤 더 쳐 보기도 한다. 물론 골프 책과 영상도 틈틈이 찾아본다.
요 몇 달 사이에 유독 오른손 엄지와 검지가 황폐해졌다. TMI를 드리자면, 골프 할 때 빼고는 설거지하면서도 장갑을 끼지 않는 나는 핸드크림에 에센스까지 달고 산다. 그렇지 않으면 나이를 먹을수록 집안일(?) 흔적이 배는 손을 보며 왠지 마음이 처량해지기 때문이다. 특히 많이 쓰는 오른손은 갈수록 굵어지고 있다. 아무튼 어느새 바닥면에 거칠거칠 각질이 일어난 손가락을 보면서 이젠 보습에 좋은 영양제도 필수로 챙겨 먹어야 할 때인가 싶어 K에게 하소연했더니 K 왈, “골프 치면 그렇게 돼. 왼손은 안 그렇지?" 그러고 보니 장갑을 끼는 왼손가락들은 멀쩡했다. 골프 연습 때 왼손에만 장갑을 끼다 보니 맨손인 오른쪽 엄지와 검지는 고무 재질로 된 그립에 직접 닿는다. 어느덧 ‘이게 과연 내 손인가’ 싶을 만큼 손가락 끝이 다 까진 것이다. 그제야 인터넷을 뒤져봤다. 그립이 잘못되거나 연습량이 많을 경우 반복적 마찰과 압력으로 손가락에 물집이 잡히거나 굳은살이 생길 수 있다고 나왔다. 안 하던 걸 하느라 손가락이 망가진 거면 그래도 다행이지만, 혹시라도 그립법이 잘못되어 그러면 안 되는데 싶어서 ‘벤 호건 골프의 기본’을 펼쳤다. K가 골프채를 부드럽게 쥐라고 조언했듯, 오른손 엄지와 검지에 너무 힘이 들어가면 안 된다고 했다. 호건은 아예 “오른손 엄지와 검지를 샤프트에서 완벽히 떨어뜨린 채 클럽을 쥐는 동작을 연습하라”고까지 써뒀다. 따라 시도해 봤지만 내게는 어려웠다. 어쨌거나 그립은 보다 부드럽게 쥐기로. 연습장 기록 만으로 웃고 울게 되는 초심자이지만 까진 손을 보며 내가 골프 연습에 한창이란 사실을 깨닫는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 영화 포스터
“이것은 숙녀의 손이 아니오.” 레트는 암녹색 벨벳 커튼을 찢어서 새 드레스를 만들어 입고 자신을 만나러 온 스칼렛의 거칠어진 손을 보고 그녀의 궁핍한 처지를 알아챈다. “당신은 그 손으로 노동을 하고 있었던 거요.” 스칼렛은 한껏 치장한 모습으로 자신의 빈곤한 형편을 숨긴 채 레트에게서 돈을 빌리려 했지만 직접 목화를 따며 노동한 흔적이 역력한 스칼렛의 손만큼은 레트를 속일 수 없었다. 마가렛 미첼의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내가 특히 애정을 느끼는 대목이다. 미국 남북 전쟁 후 남부 귀족 사회가 몰락하면서 조지아주 타라 농장을 가진 귀족이었던 스칼렛은 가족을 먹여 살리고 세금을 내기 위해 직접 일터로 나가 고군분투하는 세월을 보낸다. 그러면서 내면이 성장한다. 강인한 스칼렛을 좋아해서 노동으로 거칠어진 그녀의 손을 좋아하는 나는 골프 연습으로 거칠어진 내 손을 보면서 시간이 흘러 보다 강인해질 나를 그려본다. 연습한 흔적도, 일한 흔적도, 살아온 흔적도 모두 손에 남는다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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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어쩌다 골프' 1화부터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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