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나쁜 샷은 그만 잊어라"

멘탈을 잡아라_J

by JMJ

'골프, 멘탈 게임의 예술'이라는 책을 몇 년 전에 읽었다. 골프에 전혀 관심 없을 때였다. 골프가 아니라 멘탈을 키우고 싶어서 읽었다. ‘인생은 심리전’이란 생각은 갈수록 뚜렷해졌고, 멘탈은 노력하는 만큼 더 강하게 연마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인지 골프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었지만 책이 무척 와닿았다. 매 챕터마다 감명 깊은 구절들이 넘쳐났다. 나도 모르게 '골프'를 '인생'으로 치환해 읽었던 것이다. '그린에서 만난 최고의 멘토들의 조언 100가지'라는 부제가 달려 있는데, 그중에서도 "나쁜 샷은 그만 잊어라"는 조언은 무척 힘이 되는 만트라다. 골프볼을 한 번 칠 때마다 굿 샷이니 미스 샷이니 하지만, 사실 돌아보면 인생이야말로 좋은 샷들과 나쁜 샷들이 경계 없이 어울려 점철돼 있지 않던가. 멘탈이 약한 사람은 보통 좋은 샷보다 나쁜 샷에 집착한다.


타이거 우즈는 나쁜 샷을 빨리 잊는다고 했다. 10야드 법칙이라 했다. "샷이 잘못되어 화가 나더라도 다음 샷 장소를 향해 10야드 정도 걸어간 뒤에는 방금 한 샷을 잊고 이제부터 할 샷에만 집중하는 것". 설령 골퍼가 아니어도 '좋은 삶의 법칙'쯤으로 응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후회되고 화가 난다면 그냥 잊기로. 이미 지났으니 잊어버리고 지금에 집중하기로. "나쁜 샷은 그만 잊어라"는 주문은 마음을 새로 다잡는데 분명 힘이 된다.



잊기로 결심해서 잊을 수 있다면 멘탈이 강한 것이다. 후회나 분노, 좌절로 얼룩진 감정을 재빨리 털어버릴 수 있을 만큼 스스로를 컨트롤할 수 있다는 얘기다. 센 멘탈을 원한다면 결국 감정 컨트롤에 능해야 한다. 예컨대 타이거 우즈는 심호흡을 하면서 숨을 내쉴 때 부정적 감정이 함께 빠져나간다고 생각한다. 내게도 심호흡은 언제나 도움이 된다. 방송기자로 일하면서 현장 중계를 할 때 긴장을 덜기 위해 종종 쓰던 방법이기도 했다. 어쩌다 부정적 생각에 사로잡히면 일단 큰 숨을 쉬어 본다. 그럼 괜한 자책감이나 두려움이 잦아드는 효과가 있다. 심호흡 후 머릿속에 '리셋' 단어를 떠올리는 것 까지가 내가 일종의 ‘나쁜 샷’을 떨쳐버리려고 노력하는 방식이다. 평정을 되찾고 현재에 집중하는 데 도움이 된다. 매 순간 새롭게 임하게 만드는 나만의 루틴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연습장에서도 유독 볼이 잘 안 맞는 날이 있다. 아무리 쳐도 거리도 안 나가고 타격감도 안 좋은 날이면 나중에 필드에선 지금보다 더 잘 안 될 텐데 싶어서 혼자서도 멘탈이 흔들린다. 하지만 집중하지 못하고 흔들린다는 사실을 일단 자각하면 나는 잠시 멈춰 서서 호흡을 고른다. 마음을 재정비해야 할 순간이다. 잘 안 될 수도 있지, 그래도 나아질 거야……다소 흥분한 자아를 잠재우고 차분하고 너그러운 자아를 불러 낸다. 정말이지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다! 다시 어드레스, 다시 샷을 한다. 아주 조금이라도 분명 더 나아진다. 언제나 제 상태를 알아차리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의식적으로 컨트롤할 수 있다.



인생을 심리전으로 생각하면 때론 도박사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결국은 내가 가진 걸로 승부를 겨루는 게임에 참여했다는 느낌. 이기고 지는 내기의 상대는 바로 나 자신이다.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말은 결코 클리셰가 아니다.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고 부담을 극복할 수 있어야 삶이 나아진다는 걸 갈수록 깨닫는다. 나는 도박을 하진 않지만 도박에 관한 글 한 편을 아주 인상 깊게 읽었다. 도박에 심취했던 프랑수아즈 사강의 에세이집('고통과 환희의 순간들')에 실려 있다. 사강은 "도박장에서는 그 어느 곳보다 감정을 숨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썼다. 감정을 숨길 수 있다는 건 곧 감정을 컨트롤할 수 있다는 의미다. 불신, 실망, 분노, 격정, 안도, 환희 등 시시각각 변하는 감정에 휩쓸리면 냉정하게 판단할 수 없다. 사강은 살면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미소 짓겠다는 결심을 잃지 않았다. 도박장에서의 학습 효과였다. 나는 탁월한 도박사가 되고 싶다. 물론 은유적 의미에서다. 감정을 다스리고 나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수준을 지금보다 높이고 싶다. 사강의 에세이에서 결정적으로 매혹된 대목은 따로 있다. 역시 경험에서 얻은 통찰은 남다른 것일까. "진정한 도박사는 마음속에 너그러움을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을 책에서 읽지 않았다면 나는 미처 짐작할 수 없었을 거다. 진정한 도박사에게는 가진 것을 잃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고, 모든 소유를 일시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모든 패배와 승리를 각각 우연과 하늘의 선물로 여기는 너그러움이 있다고 했다, 사강은.


'조민진의 꿈꾸기 좋은 날' 8화 '수용의 기술' 2024년 8월 17일(한겨레신문 토요판)


너그러움은 수용의 결과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가능해진다. 잃고 얻는 소유의 문제도, 이기고 지는 승패의 문제도 의연하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수용의 기술’에 관한 칼럼을 쓴 적이 있다. 나름대로 세 가지 방법을 꼽았었다. ‘오히려 좋아’ 자세로 밝은 면에 집중하면서 할 일 하기, ‘문제를 푼다’는 마음가짐으로 용기 있게 대처하기, ‘연출자는 나’라는 생각으로 멋진 답을 구해보기. 쓰고 보니 결국 멘탈을 키우는 방법론과 다름없었다. 그게 뭐든,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감정에 휩싸일 뿐 해법을 찾지 못한다. 마음이 부정적 감정들로 들끓을 땐 너그러움은커녕 바늘 하나 꽂을 자리도 찾을 수 없을 만큼 여유가 없다. 때문에 수용한다는 건 부정적 감정을 다스린다는 뜻이기도 하다. 두려움을 받아들이고 컨트롤해야 한다. 비로소 너그러워질 수 있게 된다.


무엇보다, 너그러워질 대상에서 자신을 빼놓으면 안 된다. 아무래도 멘탈은 자신에게 너그러울 때 강해지는 것 같다. 실수하고 실패해도 괜찮다고 생각할 때,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믿을 때, 실패한 경험에서도 배움을 얻으면 된다고 스스로를 안아줄 수 있을 때 멘탈이 강해진다. 1998년 US 오픈 당시 박세리의 '맨발 투혼' 장면은 아무리 봐도 멋지다. 18번 홀에서 티 샷한 공이 연못으로 향하는 내리막 급경사에 떨어졌고 그는 양말을 벗고 물속에 발을 넣고 다음 샷을 했다. 샷은 성공했다. 은퇴 후 출연한 한 방송에서 박세리는 그때를 회상하며 "실수를 했어도 후회는 안 했을 거다. 실수에 대한 경험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명예로운 선수의 멘탈이 이렇다. 나쁜 샷을 잊고 새 마음으로 도전할 수 있을 만큼 자신에게 너그럽기. 멋진 한판 승부를 위해 삶을 이렇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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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친애하는 독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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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어쩌다 골프' 1화부터 보기)

https://brunch.co.kr/@waytogominjin/1


이번 글 속에 나오는 책과 관련 내용이 담긴 유튜브 영상 링크도 함께 남길게요.

*유튜브 ('조민진의 웨이투고'_심기일전 전략 7)

https://www.youtube.com/watch?v=sbR3eDqt5L4


멋진 날 보내세요!!


From 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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