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자신감에 관한 2가지 생각

무엇보다 중요한 자신감_J

by JMJ

K와 함께 골프 박람회에 갔다. 아직 내 클럽을 구매하기 전이어서 다양한 골프 브랜드를 탐색하며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유명 업체들이 저마다 시타 체험 행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부스마다 긴 줄로 늘어선 사람들이 자기 차례를 기다리며 앞사람의 시타를 지켜보고 있었다. 볼을 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은 대부분 꽤나 노련한 골퍼들로 보였다. 적어도 주말골퍼로서의 구력이 몇 년쯤은 되지 않을까, 내 눈에는 다들 적어도 평균 이상의 실력자들인 것 같았다. 붐비는 인파 속에 골프를 시작한 지 2개월 남짓 되는 초짜는 왠지 나 밖에 없을 것 같은 느낌. 그나마 함께 간 짝꿍인 K가 싱글 골퍼의 실력을 갖고 있으니 믿고 따라다녔다.


행사장 몇 군데서 시타에 나선 K는 정말이지 자랑이라도 하듯 특유의 장타 실력을 뽐냈다. 드라이버로 친 볼이 스크린상 300미터를 거뜬히 넘어 날아갔다. K의 스윙을 본 사람들이 일제히 놀라운 시선을 던졌다. K는 마치 쾌거를 거둔 무사가 된 듯 내 앞에서 으스대는 기색이었다. 나는 새삼 K가 한때 '무림고수'들을 찾아다닌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멋진 스윙을 하려면 일단 몸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더니, 나보다 근력이 몇 배쯤 뛰어날 K와 나는 애초에 출발선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골프 역시 기본 체력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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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가 내게도 시타를 권했다. 잡아본 클럽이라고는 7번 아이언과 드라이버뿐이고, 아직 피니시 자세도 안 배웠으며, 엊그제서야 볼을 바닥에 내려놓고 아이언으로 치기 시작했는데, 이 많은 사람들이 보는 데서 나 더러 스윙을 하라고? 물론 줄 선 사람들은 그저 차례를 기다리는 것일 뿐 내가 잘 치든 못 치든 아무 관심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나는 마치 무슨 경기에 출전하는 선수라도 된 것 마냥 두려웠다.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K는 거의 강요하다시피 등 떠밀었다. 엉겁결에 시타석에 선 나. 아무리 K가 부추겼더라도 충분히 피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이것도 못하면 나중에 필드에서 게임을 어떻게 하겠나는 생각이 들었다. 나조차 이해하기 어려운 내 특성 중 하나라면, 두렵게 느껴질수록 가급적 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다소 의무적으로 스스로를 조련하는 편이다. 때문에 내가 나를 피곤하게 만들 때가 많다. 이런 태도에는 장단점이 있지만, 나는 내가 뭔가를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더 두려워하는 것 같다. 그래서 때때로 대담한 결정을 내린다. 자신감이 있든 없든 그냥 하기로 하는 거다.


아무튼 나는 거의 떨면서 클럽을 쥐었다. 물론 겉으로는 최대한 태연해 보이려 애썼다. 어드레스를 취하면서 마음을 가다듬었다. 마침내 샷. 첫 아이언 샷은 그래도 예상보다 타구감이 좋았다. 볼을 바닥에 두고 쳤는데도 연습장에서 나왔던 평균 비거리 보다 더 멀리 날아갔다. 70~80미터쯤 보낸 것도 나로선 잘한 거였다. 그런데 드라이버로 클럽을 바꿔 쥐자 두 차례나 헛스윙이 이어졌다. 내심 드라이버로는 아이언보다 더 멀리 쳐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던 것 같다. 창피한 마음에 백스윙을 서둘렀더니 이번엔 뒤땅이 났다. 지켜보던 K가 "그렇게 팔 힘만으로 급하게 내려치지 말고!"라고 한마디 했다. 볼캡을 눌러쓰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나마 모자챙이 나의 상기된 얼굴을 조금이라도 가려줬겠지. 자, 다시, 평정심을 갖자…… 할 수 있어…… 의식적으로 마인드 컨트롤을 하고서야 드라이버 샷으로 겨우 70여 미터쯤 볼을 보냈다. 이 정도면 배운 만큼은 했으니 됐다 싶어서 후다닥 타석을 비켰다. 최초의 경험이었다. 연습장이 아닌 곳에서 낯선 이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볼을 친 것 말이다! 그래도 두려움과 창피함을 무릅쓰고 나름대로 도전했다는 사실이 스스로 기특했다. K에게 칭찬을 구했다. “내 수준에선 잘하지 않았어?” K는 대충 부응해 줬다. “그래, 볼이 뜬 게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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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첫 라운드 때 첫 홀 티샷이 얼마나 두려울지를 앞서 걱정하곤 했는데, 이날 이후 아주 작은 자신감이 생겼다. 해낼 수 있다는 자신에 대한 믿음은 결국 해본 경험이 쌓여야 얻을 수 있음을 또 한 번 체감했다. 드라이버 샷 비거리를 두 배쯤 향상해야 하는 수준이지만, 결과나 시선을 의식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실행한 것만으로도 뿌듯함이 샘솟았다. 자신감 쌓기에 관한 내 지론은 두 가지다. 속으로 떨더라도 겉으로는 태연해 보일 것, 타인의 시선에 신경 끌 것. 이 두 가지를 끊임없이 연습해야 한다. 물론 어떤 일을 해내는 능력 자체를 키우기 위한 실질적 노력이 전제돼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키운 자기 실력을 펼쳐 보여야 할 때 필요한 부가적 태도로 나는 저 둘을 꼽는다. 외면과 내면을 스스로 컨트롤하는 것이다. 그래야 진정 자신을 신뢰하고 의지할 수 있게 된다. 실력을 발휘해야 할 중요한 순간이면 누구나 긴장하지만 프로는 그런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감정을 제어하는 능력에서 자신감이 비롯된다. 최선을 다할 뿐 결과와 시선에 무심해질 수도 있어야 한다. 자신을 믿으려면 제 손을 떠난 일에 연연하거나 타인의 눈으로 자신을 보는 습관을 버려야 한다. 고작 행사장에서 시타 한번 한 걸로 뿌듯함을 느꼈던 건 내가 자신감을 키우는 데 필요한 노력을 했다는 자부심 때문이었다. 엄청 떨렸지만 태연한 척, 남을 의식하지 않기 위해 최대한 나에게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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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도 골프는 내게 아직 자신감 있는 영역이 아니다. 기본기를 갖추기까지도 가야 할 길이 멀다. 그런 골프에 비해서 예컨대 글쓰기는 조금 더 자신 있는 분야다. 스윙 연습을 한 시간보다 글을 쓰고 고치고 완성하는 데 들인 노력과 시간이 몇 만 배는 많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노력한 경험치가 훨씬 많다. 그럼에도 새 글을 시작할 때는 늘 막막한 기분을 느낀다. 빈 종이를 까만 활자로 채워가는 일은 언제나 조금은 두렵다. 하지만 그때마다 헤밍웨이의 말을 떠올리며 힘을 얻는다. 새로 시작한 글이 전혀 진척되지 않을 때 그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한다고 했다. ‘걱정하지 마, 넌 전에도 늘 잘 썼으니, 이번에도 잘 쓸 수 있을 거야.’ 노력해서 완성했던 무수한 경험이 자신을 믿게 한다. 쓰는 자신감을 위해 또 하나의 경험을 쌓는다는 마음으로 또 한 편의 글을 완성한다. ‘이번에도 뭐라도 쓰겠지, 어떻게든 마무리하겠지’라는 생각이 곧 자신감이다.


어드레스 하는 K를 보면서 그가 ‘이번에도 잘 칠 수 있다’고 스스로 믿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속으로 얼마나 긴장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무척 태연해 보였다. 어쩌면 타인의 시선을 오히려 즐기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K는 내가 알기로, 300미터 넘게 가는 볼을 숱하게 날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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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골프' 1화부터 보기! : https://brunch.co.kr/@waytogominjin/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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