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달려라 하니'를 기억하나요...

넘어져도 일어나라_J

by JMJ

‘혹시 나는 지금 넘어진 걸까.’ 머릿속에서 반갑지 않은 자문이 이뤄진다. 보통 연습 타석에 올라선 후 초반 십여 분은 샷들이 유독 엉망인데, 그러다 보면 괜히 울고 싶어 진다. 이깟(?) 골프까지 나를 서럽게 하나 싶어서. 서글픈 생각이 덥석 꼬리를 문다. 혹시 나는 지금 넘어진 걸까,라는. 그냥 좀 느리게 길을 가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아무래도 넘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덜컥 겁이 난다. 어떻게 다시 일어나지…?


앞날이 안갯속 같은 요즘 연습장에서 볼을 치는 일과는 애써 태연한 척해보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과도한 걱정에 사로잡히고 싶지 않아서 스스로 강구하는 구제책이기도 하고, 뭔가를 새로 배우고 연습하는 데 몰두하면서 큰 시름(?)에 무심해지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러니 골프는 지금 내게는 목적이라기보다는 수단이다. 나름대로 좌절의 시기를 건너는 방식 중 하나로 우연히 택한 ‘초심의 세계’이자 몸을 움직여 배우고 익히는 ‘동심의 세계’다.


작가로... 강사로... 오래 했던 기자일 말고 또 다른 일에 욕심을 내 발을 내디뎠지만 뜻대로 잘 풀리지만은 않아서 다소 마음이 지치는 순간이 잦아졌다. 볼을 보내야 할 곳으로 보내지 못했거나 해저드 같은 페널티 구역에 빠뜨렸을 때 느낄법한 망연자실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어떻게든 페어웨이로, 그린 위로 볼을 올려야 하는데 막막한 심정. 자, 이게 요즘 나의 어두운 자아 근황이다. 물론 동기부여 메시지를 담은 칼럼을 쓰고 영상을 만들 만큼 의욕에 찬 밝은 자아가 주로 나를 지배한다. 하지만 불현듯 찾아오는 좌절감과 패배감에 휩싸이면 이렇게 남모르게 풀이 죽는다. 하지만 뭐 별 수 있나. 그럴 때면 기쁨과 슬픔, 성공과 실패, 성취와 고통은 그저 한 세트일 뿐이니 심플하게 받아들이자고 마음먹는 수밖에. “즐거움과 고통이 너무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그중 하나를 가능한 많이 가지길 원하는 사람은 다른 하나 역시 가장 많이 가져야만 한다”(‘즐거운 학문’)고 했던 니체의 말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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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아모르파티’(Amor Fati), 운명을 긍정하고 사랑하라고 주문했다. 위기를 느낄 때 이만큼 강단 있는 메시지를 주는 말이 또 있을까.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그가 제시한 이상적 인간, ‘초인’(위버멘시)은 궁극적으로 새롭게 창조하기 위해 긍정할 줄 아는 ‘아이 정신’을 갖고 있다. 순진무구하고, 잘 잊고, 새롭게 출발할 줄 알고, 놀 줄 알고, 성스럽게 긍정할 줄 아는 것 등이 아이의 특성이라고 니체는 꼽았다. 넘어졌다는 생각이 엄습할 때면 그래서 나는 동심을 구한다. 무릎에 묻은 흙먼지를 훌훌 털어버리고 태연하게 일어나 다시 출발하는 아이 같은 마음을 되살려보는 것이다. ‘달려라 하니’와 ‘개구리 왕눈이’ 주제곡을 여전히 좋아한다. 세상 끝까지 달리고, 일곱 번 넘어져도 일어나라는 노랫말은 어쩜 아직까지도 희미해지지 않는 건지. 흥얼거리다가 알게 된다. 나이가 들어도 어떤 마음은 늙지 않는다는 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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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하니’를 봤다. 추억 소환은 동심 환기에 즉효 약이다. 요즘은 유튜브에서 수십 년 전 만화영화까지 다 찾아볼 수 있으니 정말이지 좋은 세상이다. ‘달려라 하니’는 1988년 TV 방영작이다. 그 시절 초등학생이던 내게 ‘빛나리 중학교’에 다니는 하니는 한동안 롤모델이었다. “입도 주먹도 몸도 작은 아이, 하니. 그래서 어딘지 모르게 쓸쓸해 보이는 여자아이. 그 아이는 자신에게 환하게 빛날 내일이 있다는 것을 아직 모른다.” 캬, 성우의 내레이션을 들으니 시간 여행이 따로 없다. ‘환하게 빛날 내일’이라는 말에 다시금 기운이 차오를 정도면 내 동심은 진정 살아있나 보다. 나도 나의 내일을 아직 모르는 건 마찬가지다! 1화부터 마지막 13화 끝까지, 어쩌다 보니 다 봤다. 몇 번 끊어 가긴 했지만 5시간 넘는 분량인데도 다 보게 되는 걸 보니 역시 중독성이 있다. 어쩌면 내 인생 최초의 동기부여 콘텐츠가 ‘달려라 하니’였던 게 아닐까. 하니는 달리다가 넘어진다.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더 이상 단거리 달리기 선수가 될 수 없다는 진단을 받는다. 그렇다고 달리는 일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하니는 장거리에 도전한다. 42.195km 마라톤을 꼴찌로 완주한다. 더 이상 하늘나라에 있는 엄마를 위해 뛰는 게 아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뛴다. 쓰러졌어도 다시 일어나는 하니. 마침내 결승점에 도착한다. 기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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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져도 일어나는 하니를 보다 보니 왠지 찌푸렸던 마음에 해가 드는 것 같다. 만화영화를 보면서 새 마음을 얻는다고 정색하고 말하기가 쑥스럽지만, 힘든 순간에 나를 버티게 하는 건 사실상 동심이다. 넘어졌을 때 일어설 수 있는 힘은 동심에서 비롯된다. 동심을 품는 일은 결국 초심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여기가 끝이라고 생각지 않고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하는 일이다. 단순하게 그냥 하는 일이다. 안 될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는 대신에 될 거라고 희망을 갖는 일이다. 쓰러질 때마다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오래 버틸 수 있다. 순위를 따지기 보다 완주하는 게 목표가 된다면 넘어져도 일어날 수 있다. 이미 늦어 보여도 지금이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고전 영화 ‘록키’에 이런 대사가 있다. “져도 별 상관이 없다. 내가 원하는 건 그래도 오래 버티는 거다.” 마라톤에서 꼴찌로 들어오는 하니를 보면서 문득 영화 속 무명 권투선수 록키의 말이 오버랩된다. 세계 챔피언에게 얻어터지면서 15라운드를 버티는 록키를 연기했던 미국 배우 실베스터 스탤론은 실제로 배역을 따내기 위해 직접 ‘록키’ 시나리오를 썼고, 무려 1500번을 거절당하고 1501번째 시도에서 기회를 얻었다고 한다. 잊어버리고 다시 해 보는 마음, 아이처럼 천진한 마음이 없었다면 과연 가능했을까.


혹시 나는 지금 넘어진 걸까, 자문 끝에 자답한다. 넘어진 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설령 넘어졌다 해도 괜찮다. 다시 일어나 완주하면 되니까. 내게는 기권하지 않는 동심이 있다. 초심을 위해 동심에 기대는 것, 그게 약해질 때마다 쓰는 나의 셀프 처방이다. 스윙을 완성하기 전에는 비거리를 보지 말라고 한다. 나는 지금 볼을 원하는 방향으로 보내기 위해 스윙하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연습 볼이 얼마나 멀리 가는지 노심초사하지 않기로 한다. 실망을 거두고 희망을 좇기로 한다. 맞든 틀리든 나는 단순하고 용감한 동심이 좋다. 내 볼은 언젠가 그린 위로 올라가고, 홀컵으로 들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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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골프' 1화부터 읽기! ^^ : https://brunch.co.kr/@waytogominjin/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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