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마라톤_J
40년 넘게 살고 보니 어렴풋이 알 것 같은 두 가지가 있다. 삶은 자세에 관한 문제라는 것과, 더불어 한정 자원을 잘 다뤄야 하는 문제라는 것. 한정된 자원은 쓰면 언젠가는 바닥이 난다. 돈은 물론이고 시간이나 의지력 따위도 결국 여기 해당된다. 기왕이면 이 사실을 빨리 깨달으면 좋다. 능력을 키워가는 노력과 별개로, 사는 동안 내가 가진 자원을 잘 나눠 쓰겠다는 결심을 빨리 할수록 더 지혜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연습장에서 알게 됐다. 초반에 마음이 앞서 무작정 열심히 볼을 치는 데만 열중하면 나중엔 연습 시간이 남았어도 힘이 달려 멈추게 되는 것이다. 침착하고 끈기 있게 스윙을 다듬어야 하는데, 의욕만 앞서면 마치 유산소 운동하듯 힘만 쓰게 되는 것 같다. 땀은 날지 모르겠지만 실력을 향상하는 데는 큰 도움이 안 된다. 골프라는 게 신기하게도 사색을 유도한다. 일단 치고 보자는 심정으로 마구 클럽을 휘두르다 에너지가 바닥났던 날, 연습장 타석 위에서 맥 빠진 채 생각했다. 설령 하늘이 날 기특하게 여겨 삶을 길게 준다 해도 나의 에너지가 바닥나면 의미가 없겠구나. 연습장을 나서면서 가장 기분 좋을 때는 마지막 1분까지 크게 지치지 않고 일관되게 연습에 몰두했을 때다. 인생을 마칠 때도 그런 기분이면 좋겠다.
골프 라운드는 통상 전반 9홀과 후반 9홀, 모두 18홀을 돈다. 그럼 보통 4시간~4시간 30분쯤 긴 시간이 걸린다. 전반 9홀과 후반 9홀 사이에 휴게소가 있는데 '그늘집'이라 부른다. 게임 중간에 여기서 목을 축이며 이런저런 담소를 나눈다는 K얘기가 어쩐지 낭만적으로 느껴져서 나는 진작부터 기대하고 있다. 첫 라운드 때 아마도 경험하겠지? 흔히들 골프를 인생에 비유한다. 노련한 골퍼는 골프가 인생을 얼마나 많이 닮았는지 체감한다고 한다. 나는 아직 초심자에 불과하지만 연습하는 동안에도 왠지 자꾸 인생을 반추하게 된다. 라운드 전반과 후반 사이에 그늘집 휴식이 있다면, 내 인생에서 아마도 지금 같은 시간일 것이다. 40대 초반까지 했던 기자일을 관두고 새 진로를 탐색하며 보낸 최근 3년이 내게는 경기와 경기 사이의 쉼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연극으로 치면 막과 막 사이 인터미션쯤 될까. 삶을 무대로, 인간을 잠시 출연했다 사라지는 배우로 여겼던 셰익스피어의 세계관을 따른다면 말이다. 전반전에서는 가는 길을 특별히 의심하지 않고 그저 열심히 살았던 것 같다. 마치 후반전은 없을 것처럼 스스로 채찍질했던 순간들도 많았지 싶다. 그러나 생의 그늘집에 선 듯한 지금 나는 다가올 후반전이 보다 천천히 오래가길 희망한다. 그늘집에 머무는 동안 더 오래가는 연료를 얻고 있다고 믿으면서. 본격 게임이 재개되면 키운 에너지를 잘 소분해서 삶 끝까지 지치지 말고 완주하고 싶다.
고대 그리스의 음유시인 호메로스가 기원전 8세기경 썼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일리아스는 트로이 전쟁을, 오디세이아는 오디세우스의 귀향을 그린다. 신과 인간이 함께 등장하는 서사시에서 인간은 신에 비해 한없이 무력하다. 불멸의 존재를 필멸의 존재가 능가할 수는 없다. 트로이나 그리스의 승패는 신들의 뜻이다. 트로이의 용장 헥토르도, 그리스 연합군의 영웅 아킬레우스도 결국 죽는다. 지략가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목마'를 꾸며 그리스 군의 승리를 이끌었지만 전쟁이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가기까지 10년 더 바다를 떠돌며 고난의 세월을 보낸다. 인간이라면 누구든, 사는 동안 고난을 겪어야 하는 운명이다. 그럼에도 호메로스는 삶이 죽음보다 영광스럽다고 노래했다. 고향 이타카 섬으로 돌아가는 방법을 알기 위해 저승까지 찾아간 오디세우스는 우연히 앞서 죽은 아킬레우스의 영혼을 만난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영웅적인 아킬레우스를 칭송하며 삶의 고통을 호소하는 오디세우스에게 아킬레우스의 영혼이 말하길, "들에서 품팔이를 하는 소작인으로서 남에게 고용을 당할 망정, 나는 지상 세계로 가고 싶네. 그것이 버젓한 내 밭을 갖지 못한 자로, 생활이 넉넉지 못한 자의 집이라 하더라도......" 죽음은 삶을 능가할 수 없다.
*그림 : '오디세우스'(앵그르, 19세기)
아마도 생의 전반전이 끝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즈음이면 문득 삶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필멸이니까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인간은 죽는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된다. 주어진 시간은 유한 자원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시간이 무한하지 않다고 느끼는 만큼 무한한 에너지를 갈망하게 된다는 것. 끝까지 신나게 삶을 누릴 수 있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예상치 못한 연장전이 주어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셰익스피어가 말했듯, “끝이 좋으면 다 좋다.” 좋은 인생이라면 끝이 좋아야 한다. 끝까지 힘이 필요하다. 긴 인생이 충만하려면 끈기 있게 가야 한다.
고난을 헤치고 오디세우스는 마침내 고향에 도착했다. 참을성 많고 지혜로운 인간이어서 숱한 난관을 극복했다. 호메로스는 아마도 짧고도 긴 삶을 사는 두 가지 큰 덕목으로 인내와 지혜를 꼽았던 것 같다. 이상적 인간, 오디세우스에게 감명받은 후대 사람은 시를 썼다. 앨프리드 테니슨이 쓴 ‘율리시스’(오디세우스의 라틴어 이름). 테니슨이 그린 오디세우스는 고향에 도착하고도 다시 방랑을 계획한다. 고난이 끝나니 모든 게 무의미했던 오디세우스는 다시 길을 떠난다. “비록 잃은 것이 많지만, 아직 남은 것도 많다……한결같이 영웅적인 기백이, 시간과 운명으로 쇠약해지긴 했어도, 애쓰고, 추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버텨 낼 강한 의지력이 아직도 있다.” 오디세우스는 여전히 삶을 느끼고 싶어 한다. 마지막까지 생의 의지를 불태운다. 이 시에서 가장 유명한 문장은, “나는 내가 경험한 모든 것의 일부다.” 긴 삶은 축복이다. 우리는 삶을 경험한다. 우리는 삶의 일부다. 고난은 그저 추억이 될 뿐이다……골프를 오래 즐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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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어쩌다 골프' 1편부터 보기)
https://brunch.co.kr/@waytogominjin/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