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와 쉼이 있는 삶_J
일상에서 누리는 비일상적 즐거움이 있다면 미술관에 그림을 보러 가는 것이다. 모처럼 설레는 만남의 장소로 기왕이면 미술관이나 갤러리를 택할 때도 종종 있지만, 일단 전시가 열리면 혼자 보는 시간을 갖는 편이다. 동행이 있으면 아무래도 그림에 오롯이 집중하거나 몰입하기가 어렵다. 예컨대 공연과 달리 그림 앞에서는 얼마나 머물지를 전적으로 내가 정할 수 있는 만큼, 다른 사람 신경 쓰지 않고 충분히 감상할 여유를 갖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림 앞에 서 있으면 일상 속에 배어 있던 긴장이 녹아내리는 것 같다.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실레의 그림들을 보러 갔다.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레오폴트미술관 소장품인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했다. 마치 혼자 책을 읽듯이 혼자 그림을 보면서 나는 재미와 쉼을 찾는다. 런던 연수 시절에는 거의 매일 혼자서 미술관을 들락거렸었다. 그리고 첫 책(‘모네는 런던의 겨울을 좋아했다는데’)을 썼다. 만약 그 시절 내가 늘 누군가와 함께 그림을 보러 다녔더라면 아마도 책을 쓰지는 못했을 것 같다. 혼자가 아니었다면 글을 쓸 만큼 깊이 감상하고 사색하지 못했을 테니까. 골프 연습장에 다니면서 골프를 소재로 글을 써볼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혼자서 볼을 치면서 사색하게 됐다. 이런 걸 보면 나는 전형적인 I형 인간인가 보다. 칼 구스타프 융의 분류대로 외부 요인에 반응하기보다는 자기 내면이나 주관에 초점을 맞추는 내향형 특성이 큰 것이다. 은은한 오렌지색 조명을 받는 사각 프레임, 그 안에 든 그림이 세기를 건너 내 앞에 당도했다. 그림 앞에 선 나는 무한한 시공과 막대한 우주 속 먼지 한 톨이 된 듯 가벼워진다.
관람하며 가장 마음에 남는 작품 한두 점을 꼽아보는 습관이 있다. 애정하는 그림들을 차곡차곡 쌓아가면서 마음의 재산을 늘려가는 방법이다. 이번엔 클림트가 비엔나 국립극장 벽화 장식을 위해 습작했던 ‘디오니소스 제단’과 실레의 ‘꽈리 열매가 있는 자화상’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먼저 클림트 그림. 그리스 신화를 표현한 그림을 좋아하는데 특히 ‘술과 축제의 신’ 디오니소스를 떠올리면 왠지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포도재배법과 포도주 만드는 법을 발견한 디오니소스는 기본적으로 문명을 촉진하고 평화를 애호한 너그러운 신이었다. 한 잔 술로 건조했던 마음이 한결 고양되고 너그러워질 때면 마치 디오니소스의 은혜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림에는 디오니소스 흉상 양쪽에 그를 숭배하는 마이나드들이 있다. 디오니소스 연회에서 열정적으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추종자들. 디오니소스를 동경하지만 마이나드가 되기엔 역부족이라는 게 나의 모순이다. 니체는 고대 그리스 비극을 분석하면서 인간 정신을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으로 나눴다. 어쩐지 나는 이성과 논리에 갇힌 아폴론적 인간으로서 감각과 본능에 충실한 디오니소스적 경지를 갈망하는 듯하다. “예술의 발전은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이중성과 결부돼 있다”(‘비극의 탄생’)는 니체의 말 대로, 아폴론적인 산문을 쓰는 탓에 디오니소스가 만든 와인이 당기는 거였나? 나의 글도, 나의 일상도 이성과 감성이 너그러이 공존하면 좋겠다.
* '꽈리 열매가 있는 자화상'(에곤 실레, 1912년)
아, 실레의 자화상은 꽤 유명한 그림이다. 실제로 본 건 처음이었는데 관람자를 아래로 내려다보는 눈길이 맘에 든다. 자신감과 두려움이 함께 묻어나는 시선인데 역시 그 이중성이 매력적이다. 주장하면서 번민하는 인간의 모순이 아닐는지.
이렇게 미술관에서 시간을 보내고 오면 나름 묵은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 해소되는데, 요즘은 연습장에서 볼을 치면서도 필적하는 기분을 느낀다. 물론 잘 못해서 겪는 좌절감도 있지만 새로운 걸 하는 데서 얻는 호기심과 성취감이 일상적 고단함이나 지루함 따위를 잊게 만든다. 클럽을 휘둘러 볼을 날리는 일은 나의 메인 영역인 쓰는 일과 무척 다르다는 사실이 주효하다. 본업과 성격적 차이가 많은 일을 할수록 기분전환에 확실한 효과가 있다. 연습장에서 에너지를 왕창 쓰지만 나올 때는 새로운 에너지로 충만하다. 과학적으로도 뇌를 쉬게 하려면 물리적 휴식보다는 작업 변경, 그러니까 하던 일과 전혀 다른 일을 하는 게 도움이 된다더니 정말 실감한다. 연습장에 부지런히 출석하는 내게 언젠가 매니저가 환한 얼굴로 물었다. “재미있으세요?” 왕초보의 스윙 실력을 오며 가며 봤을 걸 알기에 왠지 쑥스러워서 멋쩍게 웃으며 짧게 답했다. “네~” 집으로 오는 길에 ‘재미’라는 단어가 계속 맴돌았다. 떠올릴수록 흐뭇했다. 맞아, 나 지금 좀 재밌는데? 재미라는 말, 그저 그렇게 반복되는 일상에서 이 얼마나 싱그러운 말인가 말이다.
골프를 잘하려면 ‘힘을 빼야 한다’고들 한다. 이해해 보건대, 경직된 상태에서 팔 힘만으로 볼을 치려 하지 말라는 뜻이다. 코어에 집중해 하체와 몸통을 회전하고 클럽 헤드 무게를 함께 이용해 볼을 쳐야 보다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스윙을 할 수 있다. 물론 숙지하고 구현하는 게 쉽진 않지만 연습 때마다 이 조언을 떠올린다. K가 연습장에서 내 스윙을 본 날이면 꼭 같은 주의를 준다. “그렇게 오버 스윙한다고 볼이 멀리 나가는 게 아니야. 헤드 무게를 이용해 임팩트해” 볼을 멀리 보내려는 욕심에 찬 나는 유연함보다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다. 힘을 쓰는 것보다 힘을 빼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절감한다. 내게 힘 빼고 치라고 조언하는 K가 날린 볼은 엄청난 파워를 싣고 멀리멀리 날아간다. 스윙 후에도 K는 가뿐해 보인다. 힘을 빼야 힘이 생기는 모순을 지금 나는 아폴론과 디오니소스의 공존만큼이나 동경한다.
꼭 골프가 아니더라도, 삶에서 ‘힘 빼기의 기술’은 중요하다. 기본적으로 열심히 하는 걸 좋아하지만 하루 24시간, 1년 365일 내내 열심히 일만 할 수는 없다. 에너지를 쏟기 위해선 에너지를 모으는 시간도 필요하다. 순수한 재미를 느끼며 모드를 전환할 수 있는 시간이면 된다. 이때 나도 모르게 쌓인 스트레스가 해소된다. 힘을 빼는 건 결국 힘을 쓰기 위함이다. 그림을 보고 골프를 하다 보면 다시 앉아서 글 쓸 힘이 차오른다. 디오니소스적 풍요와 기쁨을 느끼다 보면 아폴론적 지혜와 평정이 찾아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