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묻는다. "엄마, 커피가 맛있어~?"
"인생의 쓴 맛을 아는 사람만이 진정한 커피맛을 즐길 수 있지.
어서 커서 엄마랑 같이 커피 한 잔 하면서, 인생을 논해보자~~"
커피는 인생의 맛이다.
검은빛 도는 갈색, 뜨거운 한 모금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간다. 두 눈은 자연스럽게 감기고 머릿속은 고요해진다. 내면에 정적이 오고 위로가 찾아든다.
쓴맛의 커피로 인생을 만나고 느낀다.
평탄한 인생이 아니어서 그럴까?
인생의 쓴맛을 처음 깨달은 것은 취업할 때이다.
간호사 취업은 보통 국가고시를 치기 전부터 시작한다.
벌써 2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졸업반 7~8월 때이다.
서울의 내로라하는 대형병원의 '신규간호사 모집 공고'가 나왔다.
서울 대형병원 두 군데에 서류, 면접시험을 다 통과했다.
마지막으로 신체검사이다.
모태감염으로 인한 B형 간염 보균으로 취업에 제한이 생겼다.
두 병원 모두 정밀검사를 위해 다시 검사하러 오라 한다.
서울까지 오고 가는 버스비가 만만치 않다.
이미 면접이며, 신체검사로 4번을 왔다 갔다 했었다.
원서 쓴 병원에 먼저 전화를 했다.
자총지종을 설명하고, 알고 있는 정밀검사 결과를 설명하니 취업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당시까지만 해도, 기업에서 B형 간염보균자 취업제한 관행이 여전했다.
뜨거운 눈물과 함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억울함을 주체할 수 없었다.
취업이 어렵겠다는 담당자의 말에, 우유배달로 힘들게 일하시는 엄마에게 버스비가 필요하다고 말할 엄두가 더 이상은 나지 않아서,
그만 포기해 버렸다.
일하는 데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음을 밝히고 싶었지만, 어느새 힘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나보다 훨씬 학점이 낮은 친구들이 대학병원에 취업되는 것을 보고 얼마나 속이 상하던지..
나보다 성적 좋은 동기 한 명도 나와 똑같은 이유로 개인의원에 취업하였다.
담당교수님은 애처로워하면서도 손을 쓸 수 없어하셨다.
대학병원 등 큰 병원은 엄두도 못 하고,
지역의 작은 정형외과병원에 취업하여 1년, 개인의원 혈액투석실에서 7년, 이후 요양병원, 현재의 고혈압과 당뇨병 대상자들을 교육 상담하는 센터에 오게 되었다.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고 했던가.
내 뜻대로 안 될 때, 내 생각대로 안 될 때 인생의 쓴맛을 느낀다.
'In 서울'을 하지 못해 아쉬움이 많았다.
고향을 한 번쯤은 벗어나고 싶었는데 말이다.
교수님을 찾아가서 버스비를 빌려달라고 부탁해서 재검을 받으러 갔어야 했냐는 아쉬움도 들었다.
시간이 흘러 그때의 일을 생각해 보았다.
취업이라는 인생의 첫 번째 관문에서 쓰라림을 맛본 것이 그리 나쁘지도 않다고 깨달았다.
서울에 갔으면 내가 힘들어서 적응을 못했을 거야, 어디 아프던지 했을 거야 하며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했다.
우리 예쁜 세 아이들도 이 세상에는 없겠지~, 보고 싶은 엄마 아빠도 1년에 한 번은 볼 수 있겠어~? 하며 말이다.
현재의 삶과 가족, 나의 일, 직장은 달콤함이다.
아침에 눈을 뜰 수 있음에, 든든한 밥을 먹고 출근할 곳이 있음에, 부모님을 가까이서 볼 수 있음에, 좋아하는 간호사일을 할 수 있음에 살 맛이 난다.
인생사 '새옹지마'라 했던가.
쓴맛과 달콤함이 주거니 받거니 온다.
성경에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는 구절이 있다.
좋은 날도 힘든 날도 필요하기에, 이겨내고 지나가기에 오는 거라 믿는다.
굴곡진 인생에도 주름 펴지는 달콤함이 존재하여, 이 한 날을 살아간다.
*새옹지마: 인생의 길흉화복은 변화가 많아서 예측하기가 어렵다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