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4, 바람맞는 책

창작, 이야기, 글쓰기

by 죽림헌 Jan 13. 2025
아래로

책이 바람을 쐬고 있다.

온몸에 퀴퀴한 냄새를 풍기고 있더니,

날 좋고 해바른 날 베란다에 누워 일광욕을 한다


봄바람 타고 꽃향기가 솔솔 불어 오니

따뜻한 햇볕과 꽃바람으로 묵은 때를 벗겨낸다 


벌거벗고 드러누워 일광욕을 한다.

부끄럼도 모르는 듯,


바람이 부니 온몸으로 교태를 부린다.

바람이 휘익 부니

휘리릭 하고 반대로 꼬아 눕고

또 바람이 휘익하니

휘리릭  돌아눕는다.

얼굴이 불그스레해지는구나

부끄럼을 알긴 하나보다.

확대경을 대고 가만히 들여다보니 하얗고 투명한 것이

보일 듯 말 듯 꼬물거린다.


하얀 벌레가 말한다

"왜 이러세요, 뜨거워요, 햇빛이 따가워요"

"참문 닫아 주세요. 추워요"


"무엇이라, 이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를~"

"왜 나의 소중한 책들에 붙어서 아이들을 괴롭히느냐"

"얼마나 소중한 성현의 말과 진실의 말들이 기록된 책인데"


"그럼 책을 좀 소중히 다루시든지요. 햇빛 안 드는 책장에 꽂아두었으니

우리가 세상 잘 만났다고 음지에서 잘 번식했잖아요"


"얼마나 좋아요. 우리에겐 천국이지요. 누르스름한 종이는 천연종이라

맛도 있고 유기농이라 저희들 몸에도 좋죠. 요즘 종이들과 완전 달라요"

"어디에서 꼬물대며 말대꾸하느냐, 너를 보는 내 몸이 다 가렵다."

"앗 뜨거 살려줘요, 책벌레 죽네"

주인은 못내 분한 마음에 벌거벗은 책들을 나무란다

"못된 것 같으니 누렇게 뜬 모습으로 

눈으로 보기도 힘든 하얗고  작은 벌레에게 몸을 내어 주다니.

정말, 부끄럼을 모르는 구나."


책들은 속살 내어 놓고 따뜻한 햇볕과 꽃향기에 몸을 맡긴다.

얼마나 기분 좋고 시원하였으면 넙데데한 얼굴이

불그스레하게 달아오르는구나

깜찍한 것 같으니 여름 장마철 되기 전에 몸을 뽀송뽀송하게 하려나 보다


안 되겠다.

햇볕에 너무 타면 곤란하다.

결국은 부끄럼 모르는 바람난 책들을 위해

베란다에 그늘 막을 쳐 둔다.

2024. 여름날 죽림헌

사진은 피트레스트에서 가져왔습니다

#바람난 책 #교태부리 책 #책벌레 #일광욕  














이전 03화 #3, 양, 목양견 그리고 늑대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