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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것에서 새로운 나를 찾다

(1) 이태원엔틱페스티벌

by 박지아
KakaoTalk_20250608_094447798_02.jpg ▲ 엔티크, 가슴이 설레는 단어다.


2025년 6월 5~8일, 이태원 엔틱거리에서 '이태원엔틱페스티벌'이 진행되었습니다. 할일이 없던 저는 또 부랴부랴 달려갔습니다. 엔틱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었지만, 마침 이사를 하기도 했고, 혹시나 좋은 물건을 건질지도 모르겠다는 기대감에 부풀었지요.


이태원 엔틱 가구거리는 이태원역 4번출구에서 나와 주욱 내려가면 됩니다. 그러면 고풍스러운 가구와 접시, 찻잔, 포슬린 인형을 파는 상점들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내려가는 길에는 카페도 있고, 베이커리나 레스토랑도 있습니다. 한참 내려가다가 오른쪽으로 꺾으면 다시 엔틱 가구거리가 이어집니다. 건물 하나하나 예쁘기 때문에 구경하는 것도 즐거운 일입니다.


이날은 엔틱페스티벌을 맞이해서 각 상점 앞에 부스가 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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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득템을 꿈꾸며.


❚ 언덕을 따라 펼쳐진 오래된 물건들의 낙원

엔틱이라는 말의 뜻은 "골동품", "고대 유물", "고풍의"와 같은 의미로, 된 오래된 물건을 지칭한다고 합니다. 가구, 의자, 전등, 접시, 항아리, 장식장, 책상 등 많은 물건들이 이태원 가구거리에 있습니다. 오래된 물건들로 가득 찬 완만한 내리막길을 걷다 보면, 이 많은 물건들이 어디서 왔는지 사연이 궁금하기도 하고, 괜스레 어렸을 적 집에 있던 물건들 생각이 나기도 합니다.


저희 집에는 엔틱이라고 할 만한 오래된 재봉틀이 있었습니다. 할머니께서 쓰신 재봉틀이라고 하던데, 골동품점에 팔기도 어려워서 집 한구석에 놓여 있습니다. 제가 가지고 오려고도 해봤지만, 마땅히 놓을 공간이 없어서 관리도 못하고, 팔지도 못하는 물건이 됐습니다. 애물단지라고 부르기엔 너무 귀하고, 유산이라고 하기에는 사용하지 못할 만큼 낡았지요. 아마, 독자분들도 떠오르는 물건들이 있을 겁니다. 지금 그 물건들은 어디에 있는지요?


엔틱 상점에 있는 물건들 중 사연 없는 물건은 없을 테지요. 어떤 사람이 어떤 용도로 구입해서 어떻게 사용했는지, 그동안 어떤 추억이 있었을지, 어떤 피치 못할 사정으로 물건을 내놓게 되었는지 등을 골똘히 생각하며 걷다 보면, 칠이 벗겨진 책상이 아름다워 보이기도 하고, 끄트머리가 조금 깨진 잔이 애틋해 보이기도 하고, 먼지가 뽀얗게 앉은 전등갓도 한결 따뜻해 보입니다.


누군가의 추억이 깃든 물건은 나름의 생명이 있는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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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상점 풍경을 보는 것도 재밌다.


모두가 함께하는 '득템'의 축제

물건 중에는 가격표가 있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습니다. 제각기 상태나 가치에 따라서 가격이 매겨집니다. 찻잔은 보통 2~10만 원대(잔받침 포함 세트 가격), 가구는 10만 원 이상으로 다양합니다. 이 중에서도 파격적인 할인을 하는 물건들이 있어서 1만 원대로도 좋은 물건을 야무지게 살 수 있습니다.


상점 주인과 흥정을 하는 것도 재미입니다. "이것이것 살게요. 깎아주세요." 정도는 아직까지 통하는 모양입니다. 많은 물건을 사면 가격을 빼주기도 하고, 세트로 사면 물건을 끼워주기도 합니다. 살까 말까 망설이면, 은근히 가격을 낮춰주시기도 하지요. 인터넷 쇼핑과는 다른,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사람'과 거래하는 일의 매력이 이런 데에서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걷다 보면 참 다양한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외국인들도 있고, 나이 지긋한 노인분들도 계시고, 젊은 아가씨들도 있습니다. 제각기 눈을 반짝이며 물건을 고릅니다. 혹시나 내가 주운 이 물건이 붙어 있는 가격표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은 아닐까, 혹은 그토록 내가 바라던 꿈의 물건을 여기서 발견하는 것은 아닐까, 다들 동심으로 돌아간 것 같기도 하고 꿈에 부푼 것 같기도 하고, 그 표정들이 재밌습니다.


이렇게 걸으면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것도, 참 좋은 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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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구에 갑옷, 터키산 와인도 있었다. 평소에는 구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나만의 독특한 취향, 나만의 유일무이한 감성, 내가 어떤 사람인지 확인하는 시간

이유없이 끌리는 물건이 있지 않나요?


우리는 쓸데없다는 걸 알면서도 종종 어떤 물건을 사곤 합니다. 가격이 비싸기도 하고, 실용성도 없는데 나도 모르게 눈길이 가고, 갖고 싶은 그런 물건들이요. 저는 가끔 이런 물건들이야 말로 자기 자신을 가장 잘 표현하는 물건이 아닌가 싶습니다. 말하자면 내 정체성이 물건으로 나타나는 거라고나 할까요?


"나도 몰랐는데 이런 걸 좋아하나 봐."


사람은 한평생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나는 나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일부일 경우가 많지요. 사실 나 자신은 더 무궁무진한 사람이고, 내 안에는 알지 못하는 자기 자신이 더 많습니다. 세련된 물건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뜬금없이 꽃무늬가 화사한 접시를 살 수도 있고, 장신구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반지 하나를 사서 돌아갈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래서 이런 공간이 더 소중합니다.


나만의 찻잔, 나만의 접시, 나만의 꽃병.


오래된 물건과의 우연한 만남이 나를 다른 세계로 이끌어 줄지도 모릅니다.

그런 설렘이, 이태원엔틱페스티벌에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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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득템. 14만 원에 산 올드셀린느 마차백과 영국산 찻잔, 그리고 터키 와인.




오래된 것에서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미지의 여행

행사는 어제까지였습니다.


행여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에게 시간이 있다면, 다음번에 이태원에 가보시길 바랍니다.


봄/가을마다 행사가 진행되는데, 이태원 가구거리 홈페이지(https://www.itaewonantique.com/)를 참조하면 행사 일정이 올라옵니다.


이곳 상점들은 보통 11시에 오픈합니다. 10시쯤 도착해서 커피 한 잔에 소금빵 하나를 먹고 골목을 걸으면 딱 좋지요. 어느 한가한 휴일이 있다면, 그리고 운이 좋게 이 축제 현장을 만난다면, 완만한 이태원 내리막길을 걸으며, 아주 오래된 물건들 속에서 새로운 자신을 찾아보길 바랍니다.



막지아.

편집자.에세이스트.

caki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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