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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나를 두고 떠나네

(7) 서울 성북구 길상사(吉祥寺 )

by 박지아

한때 기생으로 북적였던 절이 있습니다. 워낙에 유명한 곳이죠. 서울 성북구에 있는 길상사(吉祥寺)입니다. 대규모 요정이었던 대원각(大苑閣)이 사찰이 된 특이한 경우이지요. 군사정권 시절, 은밀한 대화가 오가던 밀실은, 이제 참선의 공간이 되었고, 가야금 소리가 울리던 바람결에는 이제 목탁소리가 담겨 있습니다.


한때 진향(眞香)이라고 불리던 공덕주 김영한(1916~1999)님을 떠올립니다. 사람은 없고, 시절도 가고, 대웅전 앞마당에 빼곡한 꽃무릇만 남았습니다. 돌연 허망하고 쓸쓸해지는데, 하얀 관음상의 미소가 가슴에 와닿습니다. 흐르고, 변하고, 쌓이고, 지워지고, 또 다시 세워지고. 이게, 세상사인가 봅니다.


4월이었다. 산이 살아 있었다.
그리운 사람들은 떠나고
가끔씩 시간에서 빗나간 느낌


왜일까요. 길상사에 가겠다고 마음을 먹은 이유가.


전날에 오랜 친구에게 연락이 왔어요. 중학교 시절 사진을 가득 보내주더군요. 기억 나는 얼굴도 있고, 가물가물한 사람도 있고. 이맛살을 모으며 기억의 숲을 헤매는데, 친구가 이야기하더군요.


"너는 결혼 안 하니? 영영 혼자 살 거니?"


저야 뭐, 결혼은 기대하지도 않았으니까요. 연애도 일생에 한 번도 하지 않았고, 남자사람 친구는 있었는데 애인이 될 인연은 늘 없더군요. 저도 색욕은 딱히 없어서 노력도 않고 38년을 혼자 살았습니다. 도시에 사는 비구니. 딱 그게 저였습니다.


"동창들이 다 애가 있어. 우리 나이대엔 육아 주제 아니면 대화도 힘들단다, 남들 할 때 하는 게 좋은 거야. 신혼대출로 아파트도 사고, 남편이랑 지지고 볶고 싸우면서도 노후 준비하고. 얘, 이러고 사는 거야."


그런가, 싶다가도 아니다 싶기도 하고. 웃으면서 연락을 마무리했습니다.


세상이 나를 두고 떠나는 느낌이었어요. 나는 7살 때부터 지금까지 어린아이 상태로 도무지 성장한 게 없는 듯한데, 주위 친구들은 성큼성큼 어른의 계단을 잘도 올라가더군요.


비단 결혼뿐만이 아닙니다.


경제력, 사회적 지위. 일상의 모습, 삶의 중심.


가끔은 이 격차가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커보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숨쉬듯 짝을 짓고, 오손도손 살아가는데 난 왜 뜻대로 안 될까. 왜 저 사람들의 삶이 내 손에는 잡히지 않을까. 왜 철이 안 들었을까.


나를 여기에 남겨두고, 세상은 훌쩍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다리를 건너면 번뇌도 떨쳐낼 수 있을 것만 같다.
길상사 7층 석탑. 하나씩 정갈하게 쌓아올린 돌.
시절에 따라 변화하는 일
잠시 머무르는 일


길상사를 걷다 보면 참 의자가 많아요. 어디서든 잠시 걸음을 멈추고 쉬었다 갈 수 있지요. 나무그늘 아래에 앉아 졸졸 흐르는 물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세상에서 보따리처럼 짊어지고 온 고민들이 다 대단치 않은 것 같고, 아무래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한참을 앉아 있었어요.


가끔은 멈춰 서는 것도 삶의 일부일지 몰라요. 다들 저만치 나아가고 있을 때, 나는 이렇게 한 걸음도 못 떼고 앉아 있었지만, 그게 꼭 뒤처짐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속도가 다른 것뿐이지, 멈춘 것이 아니라 머무는 거라고요.


길상사의 의자들은 그런 저를 다그치지 않았습니다.


조용히 기다려주었고, 그늘을 내주었고, 아무 말 없이 곁을 내어주었습니다.


저는 그저 그 안에서 아주 조금 숨을 고를 수 있었습니다.


세상이 나를 두고 떠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정해진 질서를 따라가지 못한 저는 어쩌면 한참이나 낡은 기차역에 혼자 남겨진 사람처럼 보일 테지요.


하지만, 생각해보면 꼭 나쁜 일만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5월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연등으로 단장한 절
쉬어갈 곳 많은 숲길을 걸으며
세상이 떠나고 나서야
들리는 소리도 있다


세상이 떠나고 나서야 들리는 소리도 있습니다.


졸졸 흐르는 물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의 숨결, 나를 향해 웃고 있는 관음상의 미소.


다 지나가고 나서야 비로소 또렷해지는 것들이 있어요.


가끔은, 그런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눈에 보이는 높은 자리를 차지하지 않아도, 누구의 엄마라는 이름으로 불리지 않아도, 나는 이렇게 살아 있고, 여전히 느끼고, 나만의 걸음으로 걷고 있다고.게 어쩌면 나라는 사람의 방식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세상은 저만치 가버렸지만, 저는 이곳에 남아 있었고,

그리고 그건 생각보다 괜찮은 일이었습니다.


저는 길상사의 의자에 앉아, 아주 오래 흘러가는 세상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조금은, 미련 없이 웃을 수 있었습니다.


세상이 나를 두고 떠나도,

나는 이 자리에서 나를 지켜볼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요정이 사찰로 바뀌는 인간세상의 변화는 당연한 순리겠지요.


그저 옛 시절과 변함없는 새소리와 물소리가, 나그네의 의자가 되어주는 거친 바위가 저의 모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박지아.

편집자. 에세이스트.

caki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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