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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는 고프고, 살날은 남아 있잖아요

(13) 춘천 소양강댐

by 박지아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저 진짜 죽을 것 같아요."


금요일 밤이었습니다. 사무실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혼자 앉아 있는 여자는 휴대폰을 귀에 대고 울고 있었어요. 건물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적막한 사무실에서 살려달라고 소리치는 이는 누구였을까요.


저였습니다.


[근처에 끈이 있나요? 멀리 치워둘 수 있을까요? 혼자 사무실에 있나요?]


휴대폰 너머의 상담사가 침착하게 말했습니다. 자살예방상담전화의 남자 상담사였어요. 그는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저를 진정시켰습니다.


"근처에 끈은 없어요. 아아, 정말 싫어요. 정말 싫어."


그렇게 대답하고, 저는 넌더리를 쳤습니다.


유독 힘들었던 주간이었습니다. 아니, 그런 한 주가 몇 주째 이어졌던가요.


입사 두 달 만에 중요한 업무를 맡게 되었고, 인수인계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허둥댔습니다. 타 부서에 자주 질문을 하다 보니, 불편한 눈치를 받기 시작했죠.


남의 부서 회의실에 불려 들어가 '일을 왜 그 따위로 하느냐'는 질책을 받았고, 그 이야기는 곧바로 제가 속한 부서로 넘어갔습니다. 또 불려 가 혼이 났죠. 일이 아니라 제 태도가 문제라고 했습니다. 어떤 날은 질책을 받으며 말없이 울고 있는데, "연차값 좀 해요!"라며 소리쳤습니다.


다른 일도 있었습니다. 회의에서 지나치게 솔직하게 제 생각을 말했던 거지요. 그게 또 편집부 거물인 과장님 속을 긁었나 봅니다. 평소엔 성격 좋은 사람이던 그가, 회의에서 대번 소리치며 저에게 면박을 줬죠. 그날 이후로, 누구도 먼저 저에게 말을 걸지 않았습니다. 안 그래도 편집부에서 붕 떠 있던 저는 완전히 사내 왕따의 길을 걷게 됐습니다.


그날 밤, 야근을 자처한 것도, 정말 일이 있어서라기보단 어딘가에 있어야 할 것 같아서였습니다. 빈 사무실이 더 적막했고, 그래서 더 무서웠지만, 집에 돌아갈 힘이 없었어요. 직장인이 퇴근할 기력도 없다니, 정말 웃길 노릇이었죠.


[이제 좀 진정되었나요? 참 힘드셨겠어요. 새 회사에 적응하는 일이 쉽지 않지요.]


휴대폰 너머 상담사의 목소리를 들으며 생각했습니다.


아, 춘천으로 가고 싶다.


소양강댐으로.


지상의 구덩이에 가득 찬 물에 내 몸도 마음도 던져버리고 오고 싶구나.





KakaoTalk_20250626_065415520_03.jpg ▲ 소양강댐에서 만난 우는 처녀. 인생이 다 그렇다 하기엔, 너무 모진 날도 있지 않나.


횡액을 만나다


3년 전이었을까.


어느 해의 겨울이었습니다.


그때도 일이 안 풀리던 시절이었습니다.


마치 횡액((橫厄)을 만난 것 같았어요.


어째서, 인생에 요행은 가뭄에 콩 나듯 하면서 불행은 떼를 지어 오는 걸까요?


저는 불운이라는 놈이 혼자서 오는 경우를 본 적이 없습니다. 한 놈이 나타났다 싶으면 또 한 놈을 데려오고, 대충 한숨 돌렸다 싶으면 또 악운이 덮쳐오더군요. 마치 비 쏟아지는 계곡에 물 불어나듯이, 정신없이 허우적거리죠. 이런 시기에는 그저 조용히 숨을 고르며 몸을 낮추고 눈알만 도르륵 굴려야 합니다. 강변에 자란 연약한 나뭇가지나마 꽉 붙잡아야 합니다.


덮어놓고 도망치는 건, 이 시기를 버티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왜 하필 춘천이었는지는 모릅니다.


가 본 적이 없는 곳이라서 간 걸지도요. 서울을 벗어나고 싶었고, 사람을 보기 싫었고, 누군가와 말조차 나누기 싫었습니다.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싫은 건 나 자신이었는데, 나약하고 예민하고 지긋지긋한 나 자신을 버리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죠. 춘천은 호반의 도시라고 하니, 자신을 물안개 속에 묻어버리고, 백색으로 지워지길 바랐던 것인지도요.


자박자박, 낯선 소도시의 버스 정류장을 향해 걸으며.


그런데, 처음부터 소양강댐에 가려던 건 아니었어요.


저는 그저 감자빵을 먹으러 가던 길이었거든요.


춘천으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저는 따끈따끈한 감자빵 생각만 했습니다.


죽고 싶다는 생각도 안 들고, 힘들다는 생각도 안 들고.


그저, 춘천 감자빵!


스크린샷 2025-07-09 080925.png ▲ 춘천 감자빵. 이게 아주 요물이다. 출처: https://gamzabatt.com/?idx=1. 춘천 카페 감자밭 홈페이지에서.


감자빵을 사러 가는 길,
우연히 소양강댐으로


이 춘천 감자빵은 말입니다, 아주 요물입니다. 쫀득한 타피오카 껍질 속에 포슬포슬하고 달콤한 으깬 감자가 가득 들어 있습니다. 전자레인지에 돌려먹으면 아주 맛있죠. 비싸긴 한데, 한 알만 먹어도 든든하고 값어치를 합니다.


감자빵 본점이 춘천에 있거든요. 춘천에 온 김에 갓 나온 감자빵을 곧 죽어도 먹어야겠다, 오직 그 생각뿐이었습니다. 아니면, 어차피 죽지도 못할 거 감자빵으로 배나 채워야겠다 싶었던 걸지도요.


춘천역에 내리자마자 감자빵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감자빵집 가는 버스는 덜컹덜컹, 굽이굽이 도로를 따라 어디론가 올라갔습니다. 저는 행여 소중한 감자빵집을 놓칠까 봐, 휴대폰으로 경로를 살폈어요.


그러다가 발견한 겁니다.


지금 타고 있는 버스의 종점이 소양강댐이라는 걸요.


소양강댐!


애초에 생각도 없었는데, 그냥 종점이 소양강댐이라고 하니 가볼까 싶었어요. 어쩌면 버스에서 내리기 귀찮았던 걸 수도 있어요. 겨울날, 오후의 햇살이 따뜻했고, 굳이 버스 밖으로 나가 추위 속을 걷기도 싫었죠. 힘이 쭉 빠진 채, 버스에 몸을 맡기고, 그저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습니다.


머릿속에는 감자빵, 그리고 서울 풍경, 홍대의 골목길, 출판사들, 소양강댐, 미운 사람들, 다시 감자빵, 숨도 못 쉴 정도로 나를 덮쳤던 악재들, 다시 소양강댐. 감자빵...... 아, 차갑게 얼어 있는 산등성이의 나무들!


흔들리는 버스 창밖에는 음식집들이 줄줄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고깃집, 맥줏집, 삼계탕집, 오리고깃집. 한산한 풍경 속을 걷는 사람들. 시린 겨울 풍경. 창으로 반사되는 제 얼굴은 초췌하기 짝이 없더군요. 꼴딱 밤을 새우고 첫차를 타고 춘천으로 온 사람, 그게 저였어요. 한 손에는 이마트 로고가 새겨진 노란 장바구니가 들려 있었습니다. 가방이랍시고 이걸 들고 왔다니.


정신이, 완전히 혼이 나갔던 게죠.


KakaoTalk_20250626_065415520_01.jpg ▲ 소양강 댐. 참 추운 날이었다.


가사 모르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버스가 멈추자 사람들이 우르르 내렸습니다. 저도 얼레벌레 그들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습한 물냄새가 나더군요.


조금 더 올라가자 회색 하늘 아래 거대한 호수 하나가 나타났어요.


소양강댐이었습니다.


듬성듬성 낮게 솟은 언덕 사이에 가득 차 있는 회색 물! 엄청난 양의 물이 수평선을 긋고 있었습니다. 그 위로 옅은 물안개가 떠서 세상이 희뿌옇게 보였습니다.


약간 현실감이 떨어지는 풍경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새벽녘 꿈속에 들어온 것 같았어요. 이렇게 많은 물이 한 곳에 고여 있다는 게 이상하게 느껴졌죠. 찰랑찰랑거려서, 곧 넘칠 것만 같은 물이 눈앞을 가득 채웠습니다.

수면 위는 잔잔해서, 그 위에 발을 올리면 걸어갈 수 있을 것만 같았어요.


저 멀리 언덕에, '한국수자원공사 소양강다목적댐'이라는 흰 글씨가 보였습니다.


틀림없는 현실의 풍경이었죠.


바람이 불면, 물에도 껍질이 있듯 잔잔한 물결이 일고, 담배 연기처럼 뿌연 안개가 산을 드러냈다 감췄다...... 강변에는 배가 한 척 있고, 수상구조대가 쓰는 건물이 하나 있고, 모래 위로는 발자국 하나 없고.


새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고요함.


숨을 들이마시며 천천히 걸었습니다. 오슬오슬 추웠고, 그러나 공기는 맑고 깨끗해서 발걸음은 한결 가벼웠지요.


<소양강처녀>를 흥얼거렸어요.


가사도 잘 모르겠어서 '해 저문 소양강에 황혼이 지면'만 여러 번 반복했지요.


댐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다리에는 몇몇 사람들이 둘이나 셋씩 짝을 지어 걷고 있었습니다. 혼자 온 사람은 저뿐인 것 같았어요. 그래도 외롭지는 않고, 이상하게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풍경 사진도 찍고 제 사진도 찍었죠. 걷다 보니 전혀 춥지도 않고, 기분도 훨씬 좋아졌습니다.


KakaoTalk_20250626_065415520_13.jpg ▲ 댐정상길 가는 길. 개방시간이 있다.


죽기 싫으면 살아야지
별수가 없어요


내친김에 댐정상길까지 올랐습니다.


제법 경사가 있는 산길이었는데, 팔각정 전망대까지 가는 산책길이라고 하더군요. 왕복 2.5km에 40분이 걸린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4시 20분 정도였고, 개방 마감시간인 오후 5시까지 아슬아슬하길래 속도를 내어 걸었습니다.


언덕을 따라 한참 올라가니 작은 공원이 보였습니다. 그 가운데에 팔각 정자가 하나 있더군요.


팔각정에 서서 풍경을 빤히 바라보았습니다.


무거워진 머리를 저 넓고 깊은 물에 퐁당 담가서 씻어내고 싶었습니다. 그러면 머리카락 엉기듯 엮여 있던 좀 풀릴까요. 뇌주름 구석구석에 달라붙어 있던 우울들도 녹아 사라질까요.


문득, 저 물에 몸을 던진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생각했습니다.


자진해서 몸을 던진 사람, 공사 중에 유명을 달리한 사람, 죽다가 살아난 사람, 그저 한숨만 쉬고 발길을 돌린 사람.


말 못 할 사연들은 깊은 물속에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그 많은 한을 누가 건져 올려줄까요?


저도 그중 하나가 될 수 있을까요?


그 순간, 저는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소양강댐에서 죽기 싫으니까요.


딱히 방법이 없었죠.


이 모든 고난도 나중에 의미가 있을 것'이라거나, '지나가면 잘될 것'이라거나, 그런 위로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괜찮다'거나 '있는 그대로의 너를 사랑해'라거나, 그런 허망한 말이 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입니까?


정작 눈앞에 닥친 고난을 돌파하는 데 따뜻한 위로는 6시간짜리 핫팩만큼도 도움이 되지 않죠.


KakaoTalk_20250626_065415520_07.jpg ▲ 댐정상길에서 정자에서 보는 풍경.


숨 죽이고 조용히,
횡액을 건너다


죽고 싶다는 건, 결국 이렇게는 살고 싶지 않다는 뜻이겠죠.


그런데 '이렇게 살고 있다'는 대체 뭘까요?


내가 원하지 않던 연이은 악재. 이런 현실에서 뭘 어째야 할까요?


그 또한 모르겠더군요.


그저 하루하루 마취한 듯 살아나가는 것, 눈 감고, 귀 막고, 입 닫고, 하루하루 걷는 것. 그것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어요.


마음에 깊은 구덩이를 파서 그 안에 눈물을 고이 모으며.


맞습니다.


댐이 물을 안고 있듯이. 나 역시 자기 몫의 슬픔을 고이 품에 안아야겠더군요.


언젠가 수문이 열려, 가슴속에 꾹꾹 눌러 담은 한이 터져나갈 그날을 기다리며, 조용히, 조용히 견뎌내야 했습니다.


그날까지 제 마음의 물은 겨울 호수처럼 시리게 찰랑거리겠지요.


넘칠 듯, 넘치지 않으며.


그 안에 사연을 쌓고 쌓으며.


내 마음을 나조차 모르게, 그렇게 시린 물아래 감춰 둘 것입니다.


가끔은 술이나 조금 눈물에 섞으며. 물아래 막대기를 넣어 휘휘 젓다가 또 슬퍼져서 한숨을 토해내면서. 물안개 같은 담배연기를 뱉으며.


숨 죽이고, 고요히. 고요히.


이게 횡액을 건너는 방법이겠죠.


사실, 저는 다른 기막힌 방법은 잘 몰라요. 우둔해서인가. 그냥 그런 거죠.


KakaoTalk_20250626_065415520_14.jpg ▲ 근처 카페에서 먹은 커피. 댐 모양의 얼음에 우유를 부어서 먹는다. 꼭 먹어보길 권함.


어쩌겠어, 배는 고프고.
좌우간 살날은 남았잖아


정상에서 내려오니, 해가 뉘엿뉘엿 기울고 있었습니다. 다시 버스를 타고 춘천 시내로 돌아가는 길, 비로소 감자빵을 떠올렸습니다.


그제야 배가 고팠습니다. 하루 종일 안 먹었다는 게 기억이 나더군요.


버스에서 내려오는 길에 있는 감자빵집은 아직도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습니다. 버스에서 내릴까 하다가 괜히 기다리기도 싫어서 무작정 춘천역까지 돌아왔습니다.


감자빵 먹으러 온 길이었는데, 못 먹는다는 게 좀 아쉽더군요.


근처에서 막국수라도 한 그릇 할까 싶었지만, 혼자 온 여자 손님을 어느 식당이 받아주겠나 싶어서 터덜터덜 역 옆에 있는 상점으로 갔습니다. 향토식품 판매점인가, 그랬던 것 같아요.


뜻밖에 그곳에서 감자빵을 발견했습니다.


개당 2,500원이었던가요. 남아 있는 감자빵이 몇 알 없다길래 있는 걸 다 샀습니다.


계산을 마치고 길가 벤치에 앉아 첫 입을 베어 물었습니다. 포슬포슬한 감자소가 입 안에 가득 찼습니다. 껍질이 아삭아삭 씹혔습니다.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으면 쫀득한데, 아쉽긴 했지만, 차가운 것도 나름 괜찮다 싶었어요.


주린 배를 채우며, 그 순간, 저는 정말 오래간만에 '잘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말 별것 아니었죠.


따끈한 감자빵 하나가, 이 계절의 찬 공기가, 회색 소양강댐의 평온함이, 저를 악재의 구렁텅이에서 끌어올려 준 듯했습니다.


죽고 싶다는 마음과 살아야겠다는 마음 사이에는 그리 거대한 간극이 없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동전 앞뒷면처럼, 그저 허공에 던졌다가 손바닥에 떨어지는 대로 내키는 기분일지도요.


매일 죽겠다고 노래를 하는 인간이라, 더 그 경계가 얄팍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죽고 싶어서 간 소양강댐에서 감자빵이라.


좌우간, 주린 배는 채워야 하니까요.


KakaoTalk_20250626_065415520_09.jpg ▲ 인생의 경사로가 아닐까. 올라가긴 힘든데 내려갈 때는 왜 끝이 없을까?


물안개 걷히듯
힘든 순간도 스르륵 걷히기 마련


그 이후로도 '별 거지 같은 사건들'은 비엔나소시지처럼 줄지어 일어났습니다. 저는 그 모든 일을 가슴속에 담으며 꾸역꾸역 안고 버텼어요.


가끔은 술도 마시면서.


가끔은 담배도 피우면서.


그러다가 사는 일이 벅차면, 다 먹자고 하는 일이라며 폭식도 했죠. 살이 아주 쪘지만, 그런 거야 어쩌겠습니까. 닥치는 대로 무엇이건 해야, 어떻게든 살지요.


그 겨울이 끝날 무렵이었던가요.


해가 뜨고 물안개가 걷히듯, 고난도 스르륵 걷혔습니다.


수도 없이 덮쳐오던 악재가 언제 그랬냐는 듯 뜸해지는 순간이 오더군요.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닌데, 사람이 숨은 쉬게 해 줘요. 하여튼 죽으라는 법은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한숨 돌릴 것 같은 어느 날, 저는 수문을 열었습니다.


이불을 둘러쓰고 베개를 끌어안고서, 그간의 설움을 폭풍같이 토해내며 꺼이꺼이 울었지요.


그렇게 또, 인생의 한 고비가 넘어갔다 싶었습니다.


KakaoTalk_20250626_065415520_05.jpg ▲ 이날 곧장 집으로 가진 않고, 춘천에서 하루를 묵었는데 또 그건 따로 쓸 일이 있을 것이다.


그날 자살예방상담전화를 끊고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살려주세요"라고 했지만, 누군가 나를 살려줄 수 있을 리가 만무하지요.


나는 내가 살려야 하는 거니까요.


그저 다시 춘천으로 가고 싶었습니다.


소양강댐을 보고 싶었습니다.


감자빵을 먹고 싶었습니다.


지상의 구덩이에 가득 찬 깊은 물에 횡액을 던져버리고 가벼운 걸음으로 돌아오고 싶었습니다.


기어이, 춘천으로 가지는 못했습니다. 딸랑 한 달에 하나 생기는 연차가 없었고, 있다 해도 춘천까지 갈 힘이 나지 않았거든요.


지금도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상황은 여전하고, 나는 여전히 슬픔을 마음에 꾹꾹 눌러 담고 있죠.


세상이 나를 괴롭혀도 묵묵하게.


흐린 눈으로 그러려니 하며.


그래도, 어쩌겠는가.


배는 고프고, 살날은 남아 있는데.



박지아.

편집자. 에세이스트.

caki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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