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가끔은 "신포도" 하며 사는 거야

(11) 서울 관악산

by 박지아

독자님들은, 부럽거나 질투하는 사람이 있으신가요?


저는 늘 누군가를 질투하며 살아왔어요. 그리고, 그 사실을 꽤 오랫동안 부끄럽게 여겼습니다.


글로나 쓸 수 있는 씁쓸하고 솔직한 고백입니다만, 사실 저는 이런 사람이에요.


상대를 보면 나도 모르게 급을 나누고, 나도 모르게 상대가 나보다 잘난 점을 찾고, 내가 상대보다 잘난 점을 찾고, 점수를 매기고, 내 점수가 낮다 싶으면 쭈그러들죠. 내가 상대보다 조금 낫다 싶으면 여유가 생겼어요.


그렇다 보니, 제가 버린 인연들이 참 많아요.


30대 중반쯤 들어서는, 나보다 잘난 친구는 다 잘라버렸어요. "너는 나보다 직업이 안정되잖아." "너는 나보다 연봉이 많잖아." "어머, 남편 잘생긴 거 봐. 좋겠다." "아파트를 샀다고?" 이렇게 하나하나 버리다 보니, 그러니까 거의 남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정신 차리니까 나 혼자 남았어요.


그런데 또, 이 외로움이 나쁘진 않더라고요. 마치 이 우주에 나만 있는 것처럼. 남의 일을 듣지도 않고, 남의 일을 말하지도 않고. 눈에 거슬리는 사람도 없고, 시기할 일도 없고, 열등감 느낄 일도 없고, 남의 위치를 보면서 발 동동 구를 일도 없더군요.


가지치기하듯 다 자르다 보니, 이상하게도 그때부터 내 삶을 살게 되었어요.


오늘은 관악산을 올랐던 그날을 떠올려 봅니다.


늘 남들과 나를 비교하던 제가, 겨우 제 발로 걸어본 날이었거든요.



KakaoTalk_20250630_083007623_01.jpg ▲ 관악산공원 입구. 언제나 등산객들로 북적인다.


나도 힘들었는데,
왜 너는 높이 올라가고, 나는 바닥일까


오래간만에 그녀의 사진을 본 날이었어요.


언제 딸아이를 낳았나 봅니다.


병풍 앞에 다소곳이 한복을 차려입은 한 쌍의 부부가 있었습니다. 여자는 아담하고, 남자는 키가 훤칠하게 크고 잘생겼지요. 둘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아이를 안고 있습니다. 빛 속에 가득히 웃고 있는 둘을 보며, 저는 무심코 생각했습니다.


저 여자의 행복을 내 것으로 가져오고 싶어.


대학 동기인데, 엄청 예쁜 친구였죠. 성격도 활기차고 밝아서 누구에게나 사랑을 받는 타입이었지요. 외모나 성격으로만 봐서는 저와는 별로 접점이 없을 사람인데 우연히 친구가 됐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이에는 미묘한 갈등이 있었어요. 그 감정은 전적으로 저에게 있었지요.


깊은 열등감. 시기심.


저는 ‘그 예쁜 애 옆에 있는 걔’로 불렸습니다.


학과 내에서 제 위치는 그냥 그 친구 옆에 붙어 있는 ‘학점 잘 받는 애’였죠. 그래서일까, 4년 내내 그 친구를 부러워하는 데 마음을 다 쏟았어요.


KakaoTalk_20250630_083007623_07.jpg ▲ 산의 초입은 잘 닦인 편이다. 그러나 중반 이후부터는 '악산'의 위엄을 보여준다.
타인의 하이라이트를
나의 비하인드와 비교하지 말라


열등감은 대학 졸업 이후에도 계속되었습니다.


졸업 이후 저는 출판사를 옮겨 다니며 사경을 헤맸습니다. 파주 출판단지의 안개와 물에 젖은 남포동의 샛길과 깡통이 굴러다니 홍대 뒷골목……. 거듭되는 실패로 목표 없이 떠돌아다녔죠.


그러는 동안 그녀는 판교의 좋은 IT 회사에서 승승장구했습니다. 유명한 게임회사에 들어가더니, 곧이어 야구단을 가진 대기업에 입사하고, 제가 닿을 수 없는 곳까지 가버리더군요.


목을 꺾어야만 볼 수 있는 자리.


이 시기심은 정말 뼈아픈 것이었습니다.


저는 마치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아 죽어가는 잡초인데, 그 친구는 햇살 아래 환하게 핀 작약꽃송이 같더군요.


물론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녀의 인생이 행복으로 가득 찼던 것은 아니고, 한때 IT 회사의 박한 근무환경 속에서 ‘창밖으로 뛰어내리고 싶었다’라고 할 정도로 고통을 겪었다는 사실 말이지요.


저는 친구는 그 모든 고통을 견뎌낸 보답으로, 멋진 남편과 귀여운 아이를 획득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스스로를 달랬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저라고 행복했을까요? 저도 똑같이 힘든 건 마찬가지였는데, 왜 저는 이렇게 살고 있고, 친구는 예쁜 딸아이를 안고 백일 사진을 찍고 있을까요?


제 뭐가 그리 부족했던 걸까요?


“타인의 하이라이트와 나의 비하인드를 비교하지 말라.”


SNS로 남을 염탐하고 비교에 빠지는 사람들에게 주는, 인터넷에서는 유명한 충고입니다. SNS에는 어차피 행복한 것, 잘된 것, 자랑할 일만 올리니까 그걸 보고 나 자신의 일상이나 어려움을 비교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 말뜻을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만, 이미 한 번 형성된 마음의 강물을 끊기는 어려웠습니다.


KakaoTalk_20250630_083007623_10.jpg ▲ 관악산을 오르다 보면 왼쪽에 펼쳐지는 계곡 모습.
무거운 마음을 안고
무작정 관악산으로


무작정 관악산으로 올랐어요.


저는 사실 등산을 싫어합니다. 몸이 힘든 걸 워낙 기피하기도 하거니와, 도중에 포기하는 것도 내키지 않고, 숨이 턱턱 막히는 것도, 벌레들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요.


그런데도 제가 가끔 산에 오르는 일이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몰아세우고 싶은 날. 힘들게 하고 싶은 날. 몸을 흠씬 괴롭혀서 생각조차 못하게 하고 싶은 날.


몸이 지치면 잡념도 멈추지 않을까요.


숲에 들어가면 마음이 맑아지기라도 할까요.


세상의 모든 초록 속에서 걸으며, 햇살 속에서 마음을 고이고이 펼쳐 놓으면 보송보송해질까.


하늘 아래에 똑바로 서서 바람을 맞으면 마음에 낀 곰팡이 같은 미움도 시기심도 날아가지 않을까. 그런 생각.


KakaoTalk_20250630_083007623_08.jpg ▲ 계곡 옆에 앉아 쉬는 사람들. 이래도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번잡한 도시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산길을 따라


관악산은 넓은 지역에 걸쳐 있어서, 등산로도 많습니다.


저는 서울대입구역에 살았기 때문에 여기서 가는 방법만 알아요.


보통은 3번 출구로 나와서 버스를 타고 올라갑니다. 주말에 3번 출구로 나오면 주욱 늘어선 등산객들을 볼 수 있지요.


서울대까지 올라가는 버스를 타고 오르면, 산의 거의 3분의 2는 덜 올라도 됩니다. 정상인 연주대만 빨리 가고 싶다면, 이렇게 하는 것도 좋습니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3번 출구나 2번 출구로 나와서 오르막길을 죽 걸을 수 있어요. 이러면, 관악산 공원으로 들어갑니다. 높게 자란 나무들 사이로 곧게 난 길을 따라가는 것도 속이 탁 풀리는 느낌이 들지요. 한참 걷다 보면 연못이 나오고, 정자도 보입니다. 거기서 좀 더 오르면 산길로 접어들어요.


왼쪽에는 계곡이 흐릅니다. 관악산은 곳곳에 있는 계곡을 보며 오르는 맛이 있어요. 5~6월쯤에 올라가면 바위에 앉아 물 구경하는 사람들도 보이고, 물놀이를 하는 아이들도 보이고, 발을 담그는 사람들도 볼 수 있지요. 저래도 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려니 하고 지나칩니다.


이름에 '악'이 들어간 산답게 가파르고 험한 돌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진짜 걷다 보면 악 소리가 나요. 초입 부분은 그래도 잘 정돈된 돌길인데 점점 오르면 오를수록 거칠어집니다. 거의 바위를 훌쩍훌쩍 뛰어넘듯 걸으면, 새소리도 들리고 바람에 나뭇잎을 흔드는 소리도 들리고 계곡 물소리도 들립니다.


관악산의 매력이 있다면, 뜻밖에 바로 옆에 번화가가 있다는 걸 거예요. 한 걸음 한 걸음 산을 향해 올라가면, 점점 도시의 소리는 사라지고 자연의 소리가 들립니다.


번잡한 세상으로부터 벗어나는 느낌이 들어요.


그럴 때면 어떤 시 한 수가 떠오릅니다.


저는 최치원의 제가야산독서당(題伽倻山讀書堂)이라는 시를 좋아합니다.


狂奔疊石吼重巒 (돌 사이를 마구 흘러 겹친 봉우리 사이 골에 마주 울리니)

人語難分咫尺間 (남의 말하는 소리 지척인데도 알아듣기 어렵네.)

常恐是非聲到耳 (옳으니 그르니 시비하는 소리 귀에 들릴까 늘 두려워하여)

故敎流水盡籠山. (짐짓 흐르는 물로 산을 둘러싸게 했다네.)


여기가 가야산은 아닐진대, 오르다 보면 이 시가 홀연히 생각납니다.


세상 사람들은 말도 많고 탈도 많지요.


사람의 급을 나누고 떠드는 게, 비단 저뿐이겠습니까?


다들 내가 낫니, 네가 낫니 따지고, 점수를 매기고, 순위를 매기고, 이기고 지고를 나누고. 사람의 세계는 원래 그렇게 번잡할진대. 나도 그 탁류 속에 있으면 내가 진흙 범벅인지도 모르고, 내 얼굴이 못나지는 건지도 모르고, 그저 휩쓸려서 똑같이 되는 모양입니다.


KakaoTalk_20250702_080907737_03.jpg ▲ 관악산 공원에서 올라갈 수 있는 작은 절 성주함. 표지판을 잘 보고 가지 않으면, 샛길에서 놓치기 일쑤다.


완등은 못하고 성주암으로


저는 이날 끝까지 오르지는 못했어요. 원체 끈기가 없기도 하거니와, 그다지 봉우리에 의미를 두지 않는 편입니다.


대신에 하산길에 샛길로 빠져서 성주암에 들렀어요.


관악산 공원 쪽에서 올라갈 수 있는 작은 절입니다. 절에 오르는 길이 가파르긴 한데, 고즈넉하고 참 좋아요. 제가 오를 당시에는 의미 깊은 글귀들이 나무 사이사이에 있었는데, 아직도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적혀 있는 글을 읽으며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올라가다 보면, 생각할 거리도 늘어납니다. 그런데, 이제 맑은 마음으로 생각하게 되니 무엇이건 긍정적이 되지요.


사람 없고 한적한 절이라, 이날은 법회도 없고 해서 절 마당에 앉아 있다가 왔습니다.


못된 마음이 땀으로 흘러나가 빠지기라도 한 걸까요.


나뭇잎들이, 그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들이, 나무의 굳센 줄기들이, 그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들이 마음결을 빗어주었나 봅니다. 결마다 낀 돌멩이들을 빼내주었나 봅니다.


가슴속 깊이 박혀서 나를 찌르기만 하던 날카로운 돌들이 관악산의 돌 하나가 되고, 바위 하나가 되고, 그렇게 저는 자신을 지르밟으며 산을 올랐나 봅니다.


KakaoTalk_20250702_080907737.jpg ▲ 4~5월, 부처님 오신 날 근방이었던 것 같다. 환한 연등이 곱다.


살다 보면,
'신포도'해야 할 때도 있는 거야


앉아 있는 동자상들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어요.


저도 알고는 있습니다.


어쩌면, 저도 세상 사람들 속에서 '위너'가 되고 싶었을, 그저 이기고 싶었던 것뿐이라는 걸요.


그녀를 이기고 싶었고, 그녀보다 잘 살고 싶었고, 그녀보다 행복하고 싶었던 것뿐.


그러나 세상에는 내가 이길 수 없는 사람이 있고, 내가 도달하지 못할 삶이 있다는 걸 그제야 조금 받아들일 것 같더군요.


아마도 제가 산에 오르고, 절 마당에서 한참 앉아 있었던 건, 제 안에 쌓인 시기와 질투, ‘나보다 잘난 사람들’에 대한 적대감을 조금이라도 흘려보내고 싶었기 때문이었겠죠.


그 친구는 여전히 저보다 ‘낫게’ 살고 있을까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요.


그건 사실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 들키고 싶지 않은 부분이 있잖아요.


제가 제 힘든 부분을 포장하고 감춰왔듯이, 아마 그녀도 어딘가엔 그런 부분이 있을 거예요.


그걸 생각하니, 이상하게도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습니다.


그러면서 문득, 이솝우화 속 ‘신포도’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저 포도는 틀림없이 시어서 먹지 못할 거야."


그런 말은 보통, 진짜 먹고 싶지만 먹을 수 없을 때, 진짜 갖고 싶지만 가질 수 없을 때,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며 내뱉는 말이잖아요.


KakaoTalk_20250702_080907737_04.jpg ▲ 성주암 가는 길에 볼 수 있는 좋은 글귀들. <아함경>의 한마디가 걸음을 멈추게 한다.


그저 네 씨앗이나 잘 돌보거라


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녀의 삶에도 고충은 있을 겁니다. '대기업'에 입사한다고 누구나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고, 결혼한다고 해서 누구나 다복하게 사는 것도 아니지요. 매일 야근도 할 거고, 육아에 회사일에 바쁘기도 할 거고, 가끔 돌부리에 발이 걸려 넘어지는, 그런 날도 있을 겁니다. 남 몰래 속 썩는 일도 있을 테지요.


이게, 신포도라면 신포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런 사고방식을 참 싫어했어요. 자기 합리화, 변명이라고 생각해서, '신포도'를 하는 건 비겁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말입니다.


가끔은, '신포도'라고 하며 사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


내가 갖지 못한 것을 시다고 말하며,


내가 도달하지 못한 지점의 어려운 점도 보면서.


내가 이기지 못한 사람들을 애써 외면하며.


가끔은, 그래, 난 저거 별로야, 시큼할 거야, 그렇게 스스로를 변명해도 괜찮지 않을까요?


이 세상엔 어차피 다 가질 수도 없고, 어차피 다 이길 수도 없으니까요.


그렇게 가끔은 신포도 하며 살고, 가끔은 내 자리를 지키며 살고, 가끔은 그냥 내 삶에 집중하며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요.


자그마한 성주암 부처들은, 어쩌면 이렇게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남의 포도밭을 기웃거리지 말고, 그저 네 씨앗이나 잘 돌보거라."


하산하는 길에 몸은 지치고, 배는 고프고, 다리는 아프고, 신발끈은 자꾸 풀어지고. 그런 와중에 저는 다짐했습니다.


그래, 나도 내 씨앗을 가꾸자.


나는 내 작은 텃밭이나 잘 키워야지.


남의 포도밭을 기웃거리지 말자.


내가 가진 것도, 내 삶도, 충분히 가치 있잖아.


언젠가는, 내 씨앗에서 달콤한 포도가 열릴지도 모를 노릇입니다.


KakaoTalk_20250702_080907737_01.jpg ▲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입을 막고 있는 동자승들.




그 여름, 관악산을 오른 이야기는 이렇게 끝납니다.


여전히 그녀는 잘살고 있고, 저는 몰래몰래 그녀의 소식을 들으면서도 인사를 건네지 않고 있어요. 아무리 '신포도'를 해도 그래도 어쩐지 '행복의 절대치'라는 게 있다면 저보다 그녀가 더 클 것 같거든요.


산을 백 번은 더 오르면 이 마음도 씻겨갈까요. 모를 노릇입니다.


그래도 이제는, 제가 가진 것을 조금 더 귀하게 여겨보려고 합니다. 제가 가진 작은 것들을 어루만지며, 내 자리에서 내 씨앗을 가꾸며, 조금씩 나를 돌보며 살아보려 합니다.


산을 오르는 걸음처럼 천천히, 그렇게요.



박지아.

편집자. 에세이스트.

cakio@hanmail.net


keyword
이전 10화덧없음을 쓰다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