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성탄 인사
어제는 성탄 전야였지만, 대단할 것도 없었습니다.
3일 전에 산 5천 원짜리 와인 한 병, 지난여름에 산 작은 과자 한 봉지, 마른 귤 몇 개 그리고 잠든 고양이와 도마뱀.
실은 한 달 전부터, 무슨 일을 해야 성탄 전야를 화려하게 보낼 수 있을까 궁리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은 많았는데, 마땅히 실현 가능한 일이 없었습니다. 슈톨렌은커녕, 돈이 없어서 케이크 한 조각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막상 기대했던 날이 되니 자작하게 술에 취해 창문 너머로 깜깜한 밤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았습니다.
올해는 뭔가 풀릴 줄 알았어
그런데 홀랑 망했다고요
성탄 아침부터, 1월 출간될 책에 들어갈 '작가의 말'을 썼습니다.
내일 출판사에 보내주기로 한 터라, 더 미룰 수도 없어서, 놀아달라고 칭얼거리는 고양이를 어르고 달래며 서두를 뗐습니다.
평범한 에세이집에 들어가기에는 영 무거운 단어들이 흘러나왔습니다. 오래간만에 글을 쓰는 거니까 예상은 했으나, 글을 쓰지 않았던 지난 두 달간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흠칫 놀랐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두 달간의 문제는 아니고, 올해 내도록 시달린 오래된 병이었습니다.
특히 올봄, 당시에는 양극성 장애 중에서도 조증 상태였는데(지금 생각한다면), 스스로 감당하기 힘든 일을 많이 저질렀습니다. 어리석게도, 드디어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더 투자하면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완전히 오판임을 깨달은 건 여름이 끝나갈 무렵이었습니다. 늦가을쯤 들어서는 만들어 놓은 일들을 정리하지 못해서 모든 것을 제 손으로 무너뜨렸습니다.
겨울이 되어서는, 세상의 가장 바닥까지 왔다 싶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발밑에 더한 지하실들이 켜켜이 깔린 걸 보고 투정 부리기를 포기했습니다. 바닥으로 더 떨어지기 무서웠습니다. 자신이 지극히 나약한 사람이라는 현실을 솔직하게 받아들이는 한편, 생에 주어진 것들을 아끼고 보듬고 한 줌이나마 지켜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취직하고, 하찮은 연봉이나마 받기로 약속을 하고, 다시 브런치 앞에 앉았습니다.
그날이 오늘입니다.
현실성 없는 위로를 스스로 삼키며
애써 자리를 버티는 겨울
항상 실패뿐입니다.
폐허 위에 어차피 또 무너질 집을 짓는데, 이제는 많이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오늘 '작가의 말'을 쓰는 책은, 실로 그런 기록의 모음입니다.
작년 1월부터 쓰기 시작한 책에는, 실로 단 한 번의 성공도 담겨 있지 않습니다.
기고만장해서 한 걸음 나아가면, 세상에 맞아 두 걸음 물러서야 했습니다.
어떻게든 버텨보기 위해 자신을 달래며 애써 한 걸음 더 나아가 자리를 유지했습니다.
언제나 현상 유지입니다. 그저 떠내려가지 않으려고 기를 씁니다.
“괜찮아.”
“잘될 거야.”
“내일은 좋은 일이 있을 거야.”
이런 근거도 없고 자신도 없는 허무맹랑한 혼잣말로 자신을 위로합니다. 적당히라도 괜찮지 않으면 오늘을 견뎌 내일을 살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 기쁨과 슬픔이 1:1이 비율로만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세상에는 슬프고 아픈 일들이 더 많고, 사소한 기쁨들은 모래에서 발견할 수 있는 진주 조각만큼이나 작고 부족합니다. 그래서 혼잣말로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며, 추스르며, 억지로라도 괜찮은 자신을 만들어 나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먹고사는 일에 재능이 없는 사람,
결국 찾아낸 나다운 꼴
저는 돈을 버는 일에 절망적으로 재능이 없습니다.
인내력도 없고, 실력도 없고, 패기도 없습니다. 슬프지만 인정해야 할 사실입니다. 2025년은 저에게 이런 사실들을 가르쳐 주었고, 이제는 직업이 아닌 다른 곳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 속삭였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에서 삶을 버티는 의미를 찾아야 할까요?
제 친구들은 어여쁜 아이를 키우거나, 주식이나 코인을 하거나, 색다른 취미를 하거나, 제각각 재미있는 모임에서 신기한 것을 찾아냅니다. 그런 취미로 다시 돈을 버는 걸 보며, 먹고사는 일을 능숙하게 해내는, 소위 '삶에 재능 있는 사람'의 저력을 느끼곤 합니다.
반면, 삶에 재능 없는 사람인 저는, 쓸데없는 일을 많이 해 왔습니다.
그중에 가장 쓸모없는 짓이 글쓰기입니다.
이는 한 푼 돈이 되어 본 적이 없고, 명예나 영광으로 직결된 적도 없습니다.
시원하게 못할 말을 털어놓아 본 적도 없고, 눈부시게 아름다운 문장을 써 본 적도 없습니다. 그저 오늘과 내일을 건너는 징검다리처럼 드문드문 문장을 내려놓는 일에서 나는 무슨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걸까요? 무엇을 독자에게 말하고 싶고, 무엇을 자신에게 말하고 싶고, 그래서 무엇을 해내고 싶은 걸까요?
세상에 따듯함이라도 주려는 걸까요?
세상에 대단한 질문이라도 던지려는 걸까요?
세상에 기가 막힌 비결이라도 알려줄 요량일까요?
아닙니다. 무엇도 아닙니다.
정말 이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저는 때로 글쓰기가 썩은 동아줄만도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글을 읽고 써 왔으니, 이제 와서 버릴 수도 없고, 계속 써가자니 도움 되는 일도 없습니다. 이것에서 어떤 가치나 의미를 발굴하기도 힘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붙잡고 있을 일이 글쓰기 밖에 없다는 것, 내가 해 온 일중 가장 나다운 일이라는 게 고작 글쓰기라는 사실은 무척이나 실망스럽습니다. 그러므로 이 고난한 작업에 내가 기대하는 건 많지 않습니다.
두 달 만에 다시 브런치에 글을 씁니다.
희망과 다짐보다는, 약간의 체념과 그리고 외로움을 느낍니다.
다시 글을 쓰는 마음은, 이토록 시덥잖습니다.
오늘은 성탄입니다.
마구간에서 태어나 세상에서 외로움을 겪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어느 이스라엘 청년보다 내가 더 나은 삶을 살길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의 고운 어머니가 겪은 가엾은 일들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그이와 그이의 어머니가 두고 간 평화가 이 성탄에 고요히 사람들의 마음을 적시듯, 내가 엮어 놓은 단어 몇 조각이 누군가의 마음을 여며주길 바랍니다.
특히나 마찬가지로 글을 쓰고 있는 동지들인 브런치의 독자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길 바랍니다.
작가이자 독자인 모든 분들이, 나의 실패에서 평화를 발견할 수 있기를.
나의 모든 고독이 누군가에게 온기가 되기를.
그리고 세상의 온갖 억압에서 하루를 삼켜낼 힘을 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박지아.
편집자. 에세이스트.
caki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