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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취와 옥 이야기

(12) 젠궈휴일옥시장에서 옥팔찌 사던 한량의 썰

by 박지아

개완으로 보이차를 우리는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습니다.


2021년 포랑산 숙차용주.


개완에 동그랗게 뭉친 차를 넣고, 첫물은 버리고, 그다음 찻물부터 모아 얼렁뚱땅 한 잔을 만들어 마십니다.


비 오는 날, 개완으로 우린 보이차라니 한량이 따로 없지요.


보이차는 중국 현지에서 가격이 급락했다던가, 하던데, 그런 것은 상관없고, 그저 이 여유가 좋기만 합니다.


전에 대만 아메이차루에 대한 글을 썼는데, 오늘은 옥 이야기나 할까 싶습니다.


비 오는 날, 옥이 습기를 먹어서 반들거리는 게 또 멋이 있거든요.




KakaoTalk_20250928_105904299.jpg ▲ 그해 여행에서 강매(?)로 사게 된 나의 첫 번째 옥팔째


옥의 아름다움에
홀딱 빠져버리다


트위터에서였나, '이소'라는 닉네임을 가진 분께서 시작하신 열풍입니다.


보통 보석을 좋아하는 분들이 '원석계'라는 걸 운영하는데, 주로 유색보석이었지요. 여기에 비취와 옥의 세계가 이식된 겁니다.


반응은 뜨거웠어요. 섬세하게 세공된 반짝이는 보석과 달리 은은하고 깊은 멋을 풍기는 옥은 금세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지요. 희고 뽀얀 옥의 가련한 듯하면서도 우아한 자태에 다들 홀랑 넘어가버린 거지요.


그런데, 그 당시만 하더라도 국내에서 양질의 비취나 옥을 구하기는 쉽지 않았어요.


한국에 춘천옥이 유명하긴 하지만, 초록색을 띠는 비취는 양질의 것을 여간해서 구하기 어려웠지요. 여기저기 발품을 팔아 봤지만, 내키는 물건이 없었어요.


하지만 이미 생긴 물욕을 어쩌겠습니까. 사서 풀어야죠.


그래서 저는 원정을 갑니다.


어디로?


대만 젠궈휴일옥시장(建國假日玉市)으로.


KakaoTalk_20250928_105806662_03.jpg ▲ 젠궈휴일옥시장. 이렇게 보여도 제법 길다.


젠궈휴일옥시장으로!


광물의 종류를 헤아리기에 앞서, 쉽게 설명하면 녹색을 띤 것은 비취(백색 비취도 있습니다), 흰색은 옥이라고 부릅니다(물론 청옥, 녹옥도 있습니다).


둘은 엄연히 다른 돌이지만, 쉽게 색으로만 구분하는 식이지요. 옥으로는 우리나라에서 나는 춘천옥, 그리고 중국 신장의 화전옥(和田玉)이 유명하지요. 비취는 녹색부터 보라색까지 색이 다양한데, 나종(糯種), 빙나종(冰糯種), 빙종(冰種) 등으로 다양하게 나뉩니다.


저는 춘천옥에도 관심이 많았지만, 당시에는 우선 제대로 된 비취 팔찌 하나를 갖고 싶었지요.


그러다가 대만에서 옥시장이 있다는 정보를 접하게 되고, 망설임 없이 비행기를 타고 날아간 겁니다.


타이베이역에서 MRT 단수이 신이선을 타고 Daan Park 역에 내립니다. 그러면 시장이라고는 없을 것 같은 도시 풍경이 펼쳐지지요.


북쪽으로 10분 정도 걸으면 커다란 고가도로가 나옵니다. 그 다리 밑에 대형 상점가가 있는데, 바로 옥시장에 들어가기 전에 있는 젠궈휴일꽃시장입니다.


10분 거리 정도의 통로에 수없이 많은 꽃 판매 부스가 들어서 있지요. 이국적인 꽃과 난초, 다육식물, 분재, 원예용품이나 가끔은 열대어나 거북이 파는 부스도 구경할 수 있습니다. 검역문제로 식물을 살 수는 없지만, 눈요기로는 참 좋은 곳이죠.


그렇게 한바탕 꽃밭을 지나고 나면, 이제 옥밭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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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kaoTalk_20250928_105806662_06.jpg ▲ 젠궈휴일옥시장으로 들어가기 전 꽃시장 풍경.
오직 옥팔찌를 찾아서


온갖 종류의 옥석들을 비롯해, 청색 라피스라즐리, 붉은 산호를 비롯해 고풍스러운 돌이 모두 여기 모여 있지요. 부스마다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옥구슬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훌쩍 갑니다.


저는 의미를 다 모르지만, 옥으로 만들어진 재밌는 것들이 많아요.


달마인지, 뭔지, 부처도 있고. 고사리를 닮은 여의 장식도 있고, 중간에 구멍이 뻥 뚫린 도넛 모양의 평안구, 나비나 곤충 모양 옥패도 흔합니다. 대부분 목걸이로 걸 수 있도록 위에 구멍을 뚫어놓은 것들이지요.


옥으로 된 염주도 있고, 옥 차주전자, 찻잔, 도장, 그 외에 두꺼비나 용 조각, 커다란 구형 구슬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게 됩니다.


이 많은 물건들 중에서 제 관심은 오로지 비취팔찌.


손목에서 잘그락거리는 팔찌뿐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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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kaoTalk_20250928_105806662_15.jpg ▲ 눈이 호사를 누릴 수 있는 곳.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구경했다.
인연이 되어야 만날 수 있다는
나만의 옥팔찌


외국인이니 바가지 쓸 것은 어느 정도 각오하고 물어봅니다.


"또우샤오치엔(多少钱)?"


제가 유일하게 아는 중국어입니다. 얼마예요,라는 뜻이지요. 옥의 질에 따라 가격대가 다양한데, 그래도 한화로 계산하면 영 못 살 정도는 아닙니다. 가격을 듣고 곤란한 표정으로 물러나면 약간 깎아주기도 하고, 뭔가 덤을 더 얹어주겠다고 하는 맛도 있습니다.


그런데, 팔찌 사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선은 모양과 색이 마음에 들어야 합니다. 다 똑같은 원형 팔찌로 보이지만, 약간 세로로 길쭉한 타원형을 귀비탁(贵妃镯)이라고 합니다. 끼우기 좀 더 쉬운 것 같아요. 평안탁(平安镯)은 흔히 아는 동그란 옥팔찌입니다. 안쪽은 평평하고 바깥은 둥글지요. 또 복탁(福镯)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안과 밖이 모두 둥급니다.


자, 이렇게 형태를 봤으면, 이제 투명도를 봐야 합니다.


비취는 투명도로 값을 매깁니다. 더 맑고 투명할수록 가격이 올라가지요.


흔히 탁하고 콩처럼 보이는 투박한 모양을 두종이라고 합니다. 그다음에는 찹쌀무늬가 자잘한 나종이라고 합니다. 여기에 조금 더 투명감이 더해지면 빙나종, 그다음에 완전히 투명한 것을 빙종이라고 하지요. 그 사이에 많은 것들이 있긴 합니다만, 우선 크게는 이렇게 구분하는 편입니다.


자, 이렇게 탁함도 구분했으면, 색을 봐야 합니다.


비취야 당연히 임페리얼 제이드라고 불리는 짙은 초록색 투명한 것이 가장 상급이지요. 그러나 이 고급 비취를 만질 일은 거의 없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대신에 투명도가 감도는 사과색, 하늘색, 물색 정도면 어떻게 우리 주머니 사정으로도 비빌만 하지요.


그다음에는 또 무늬를 봅니다.


반쯤 초록색이 들어간 반산수, 표면에 초록색이 섞인 것이 표화종, 그 밖에도 다양한 무늬가 있지요.


자, 이렇게 색도 무늬도 좋은 걸로 골랐다면, 이제 문제는 사이즈입니다.


아무리 마음에 들고 가격대가 좋은 걸 찾았다 하더라도, 손목에 들어가지 않으면 말짱 꽝입니다.


이래서 옥뱅글은 인연이라고들 하지요.


연이 닿지 않으면, 살 수가 없어요.


KakaoTalk_20250928_105806662_11.jpg ▲ 이 많은 팔찌 중에 나의 인연은 어디에!
ㅋㅋ.png ▲ 각양각색의 옥팔찌들


아름다운 걸 좋아하는 게
뭐 어때서요!


이날 저는 하염없이 또우샤오치엔을 외치다가 포기해 버렸습니다.


가격대가 원체 높기도 하거니와, 제가 마음에 드는 옥은 가격이 비싸고, 가격대가 맞는 것들은 제 눈에 차지 않고의 반복이었지요.


그러다가 어느 상점 주인에게 딱 걸린 겁니다.


나이가 듬직한 그 여자가 대뜸 제 손목을 잡더니 가만히 피부색을 들여다 보고, 대뜸 옥팔찌 하나를 꺼내는 겁니다.


강매라도 하는 줄 알고 식겁하여 거절했는데, 어떻게든 저를 붙잡아서 손목에 채워주더군요.


이 손목에 거는 일도 옥뱅글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비닐을 쓰거나 로션을 발라서 억지로 손에 밀어 넣어야 하지요. 손가락이 다 으스러지는 듯 보통 아픈 일이 아닙니다.


한바탕 고통의 시간이 끝나고, 제 손목을 딱 보니, 세상에.


비록 하급의 옥이었지만, 이보다 잘 어울릴 수가 없는 겁니다.


마치 수묵화처럼, 안개 가득한 숲 속에 몇 점 소나무가 어른거리는 듯한 우아한 표화종 팔찌였어요. 가늘고 가벼워서 어디든 잘 끼고 다닐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한화로 16만 원 정도였습니다. 이 어처구니없는 강매가, 제 첫 번째 옥팔찌가 되었지요.


지금도 종종 생각날 때면 손목에 고이 걸곤 합니다.


손목에 살이 너무 쪄버려서, 가끔은 안 들어갈 때도 있지만요.


이 옥팔찌는 그해 내내 저의 좋은 벗이 되어주었습니다.


팔목에 달그락거릴 때면 시원하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아름답지요.


암요, 옥은 아름다우니까요.


KakaoTalk_20250928_110008642.jpg ▲ 숙소에서 찍은 옥팔찌 사진
ㄹ.jpg ▲ 젠궈옥시장에서 산 옥패. 지금은 깨지고 없다.
ㅋㅋㅋ.jpg ▲ 내가 모은 삼색의 춘천옥. 위에서부터 녹옥, 백옥, 청옥.




차 한잔으로 시작해서 옥 이야기가 길었습니다.


이밖에도 옥 사는 이야기를 하자면 한도 끝도 없는데, 양이 너무 길어져서 여기서 마무리를 하려 합니다. 여기까지는 비취의 이야기고, 이후에 저는 또 춘천옥에 흠뻑 빠졌거든요.


종로에서 춘천옥석을 직접 사서 옥 장인에게 가공을 맡긴 적도 있습니다.


아주 단단하고 색이 좋은 춘천옥 팔찌와 가락지 여러 점을 가지고 있지요. 흥청망청 즐기기를 좋아하는 제 컬렉션입니다만, 인생에 이렇게 한 번쯤 흠뻑 빠지는 취미도 있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옥에 대한 제 관심은 그 이후로도 1년 정도 지속되었습니다. 지금은 많이 식었지만, 여전히 타오바오에서 좋은 옥만 보면 홀딱 정신이 나가서 저도 모르게 환율을 계산하고 있지요. 팔목은 단 두 개인데, 대체 몇 개나 끼려고 이러는지 모르겠습니다.


요즘은 한국에도 비취가 제법 들어와서 사기가 쉬워졌습니다. 대표적으로는 종로에 있는 예작, 옥시방 같은 곳이 있지요. 괜찮은 가격에 쉽게 옥팔찌를 구할 수 있는 곳들입니다.


지금도 가끔 생각나면 방문하곤 합니다. 이제 지갑에 돈은 없으니 구경만 하고.


요즘은 또 호박에 빠져서, 그 노란 가락지 하나만 가졌으면 하는 생각을 또 하곤 합니다.


하여튼 예쁜 걸 보면 물욕을 참지를 못하겠어요.


작가님들도 다들 흠뻑 빠지신 취미가 있겠지요.


그다지 경제적이지도 않고, 도움이 될 것도 없지만, 그저 아름다움 하나로 즐기는 것들.


차일 수도 있고, 수석일 수도 있고, 금이나 보석일 수도 있지요.


무엇이든 간에, 삶이 더 풍요로워지길 바랍니다.


세상에 태어난 이상, 아름다움을 충분히 즐기고 가는 것도, 삶의 즐거움이 아닐까 싶거든요.



박지아.

편집자. 에세이스트.

caki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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