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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대협 May 23. 2024

평행우주로 이끄는 베네치아 골목

DAY 8 베네치아 도착

오늘은 오전에 바쁘게 산타마리아노벨라 성당을 둘러보고 베네치아로 이동하기로 한다.

어제 이탈리아 성당은 다 공짜라고 '혜자'라고 했었는데, 이제 이 말은 취소해야 한다. 이 작은 성당에 입장료가 5유로이다. 산타마리아노벨라는 성당보다 약국으로 유명하다. 외국인들도 잘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한국인들에게는 '장미수'로 유명해서 너무 많은 한국인이 다녀간 나머지, 아예 한국어 설명서를 배치해 두고 한국인이 가능한 직원이 응대해 준단다. 아마 한국 현지시장에도 진출했을 것이다.

산타마리아노벨라 성당은 1278년 도미니코회의 본산으로 착공되어 1350년 완공되었는데, 당시 도미니코회 교회 중 최대 규모였다고 한다. 미켈란젤로는 이 성당을 두고 '나의 신부'라고 일컬었단다. 미켈란젤로에게 어떤 매력으로 다가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화려함이나 장식적인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다. 산타크로체 성당과 비슷하게 검박하고 조용하되 단아하고 참한 모습이 신비한 매력을 풍기기는 하다. 두꺼운 벽으로 둘러 쳐진 내부도 어두컴컴하되 간간히 작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이 만드는 십자가의 실루엣이 성스러움 그 자체이다. 내부에는 도메니코 기를란다요의 <성모자>와 <세례자 요한>이 남아 있다. 스페인 예배당에는 안드레아 디 피렌체의 <교회의 승리>, 스트로치 예배당에는 나르도 디 치오네의 <천국>과 <지옥>, 안드레아 오르카냐의 제단화, 필리피노 리피의 <마르스 신전을 지키는 악마>, 키오스토로 벨데에는 우첼로의 <홍수> 벽화가 있다. 

원근법으로 착시를 일으켜 유명하다는 마사초의 <삼위일체>를 찾았다. 거대한 제단 위의 벽화 속에는, 아치 복도 아래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와 그 아래에서 떠받치고 있는 제자들, 그리고 아치 복도 밑에 기도를 드리는 코시모 1세가 각각 단을 달리하여 위치한 것처럼 입체적이다. '충분히 입체적이긴 하나 이 정도로 착시는 오버다.'라고 평가하려는 순간, 아뿔싸 그 아래 제단이 튀어나와 있지 않다. 차단선이 쳐진 곳까지 가까이 가보니 완벽한 착시 벽화다. 알고도 보니 신기하다. 현대의 내가 이럴진대 그 먼 과거의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마술이라고 했을만하다. 




피렌체에서 출발한 고속열차는 약 2시간 후 베네치아에 도착한다. 베네치아 메스트레역에서 베네치아 산타루치아역에 가는 철로는 바다 위를 달린다. 바닷물과 아주 근접하게 달려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바다로 달리는 기찻길과 꼭 비슷하다. 이 열차 타는 것만으로도 미지의 세계로 모험을 떠나는 느낌이다. 베네치아 산타루치아역에 도착하니 정오이다. 역사 정문을 나서니 직사로 내리쬐는 햇빛에 세로토닌이 대량합성되는 느낌이다. 역전 광장과 수로, 그 너머의 산 시모네 피콜로 성당은 여정의 중간쯤 지친 여행자에게 새로운 기대를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로마에서 피렌체에 처음 도착했을 때와 같이 피렌체에서 베네치아로 오니 전혀 다른 나라에 온 것 같은 분위기다. 붉은 지붕은 온 데 간 데 없고 파란 돔 지붕 또는 고딕양식의 조각 같은 정면으로 이루어진 건물들이 빼곡하다. 캐리어가 돌돌돌 굴러가는 돌바닥 대신 어디서든 물소리가 찰방찰방 귀를 간질인다. 좋게 말하면 점잖고 나쁘게 말하면 우중충했던 피렌체 사람들과도 정반대다. 이곳 사람들은 장사꾼 그 자체다. 약간 상기되어 있는 얼굴, 언제라도 재잘거릴 준비로 들썩들썩하는 입, 얼굴에 흥미가 가득하다. 이곳은 새로운 나라다.

숙소는 한인민박을 예약해 놓았었다. 주소는 미리 적어놓았고 구글지도로 확인했을 때 작은 수로에 면한 건물이었다. 출발해 보자. 여기로 갔다가, 저기로 갔다가, 여긴 아까 왔던 것도 같은데, 다시 저기로 가보니 완전히 새로운 곳이고. 숙소를 찾아 땡볕에 돌길에 이 다리를 건넜다 저 다리를 건넜다 1시간 반여를 헤맸다. 작은 길로 들어서면 분명 길을 잃어버리겠다는 위기감에 큰 길로만 다녔는데 길은 더 미궁으로 빠져들었다. 기차역에 처음 도착했을 때의 행복감은 어느새 없어져 버렸다. 분노 게이지는 맥스를 향해 올라가고 있다. 미로라는 악명에 걸맞은 도시에서, 분명히 지도에 있어야 하는데 없는 길을 걸을 때는 캐리어고 가방이고 모두 다 팽개치고 그냥 주저앉고 싶었다. 노천 카페테리아에서 식사를 하며 여유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 모두 나를 흘끔흘끔 보며 비웃는 것 같다. 쳇, 자기들도 며칠 전 분명히 똑같은 경험을 했을 거면서.

도저히 찾을 수 없는 목적지를 참을 수 없어서 아무 호텔이나 들어가서 다짜고짜 내가 이 주소로 가야 하는데 어떻게 가느냐고 물었다. 컨시어지에서는 큰 지도 한 장 줄 테니 찾아보라며, 자기들은 모르는 골목이라고 했다. 아뿔싸. 순간 내가 사기당한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홈페이지며 전화번호며 모두 실체는 없는 것들이다. 어차피 알음알음 예약한 민박집이다. 인터넷에만 띄워 놓았을 뿐 사실은 없는 장소라고 해도 이상할 것 없다. 분노와 절망에 찬 망상을 하며 호텔을 나와 뒤로 돌아 딱 5분 정도 걸어가는 순간, 주소에 써진 골목이 보였다. 분명히 없던 골목인데. 아까 여기를 와봤던 것 같은데. 호텔에 들어갔다 나온 순간 다른 세계, 평행우주로 나온 것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파란만장한 여정 끝에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에 짐을 풀고 산마르코 광장으로 나섰다. 베네치아 사람들 모두 그리고 여행자 모두 이곳에 집결해 있다. 골목골목마다 사람들이 붐비긴 했었는데, 이곳 광장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말 그대로 광장이 사람들로 가득 차서 발 디딜 틈이 없다. 나폴레옹이 말하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홀'이라던데, 내가 보기에는 세상에서 가장 붐비는 도떼기시장, 인간박물관 같다. 남자, 여자, 젊은 사람, 늙은 사람, 아시아인, 유럽인 등등 온갖 종류의 인간을 다 볼 수 있다. 베네치아 일 년 방문객이 몇 천만명이라던데, 그럼 하루에 최소 몇 만 명은 온다는 것이고 그 몇 만 명을 한 곳에서 구경하자니 여간 재밌는 일이 아니다.




광장은 중앙에 베네치아의 상징 날개 달린 사자상과 엠마누엘레 2세 오벨리스크가 있다. 동쪽에는 산마르코대성당, 두칼레 궁전이 있다. 나머지 3면을 둘러싼 궁전은 '알라 나폴레오니카(나폴레옹의 날개, Alla Napoleonica)'라고 불리며 16세기 정부청사로 건립되었다가 현재는 박물관으로 활용 중이다. 광장 한편에서 금빛으로 빛나는 산마르코 성당은 일부 복구공사 중이었다. 로마나 피렌체와는 완전히 다르게 황금을 양껏 활용한 비잔틴 양식이다. 도시만 바꾸어 다녔을 뿐인데, 나라가 바뀌듯이 예술양식이 전혀 다르게 휙휙 바뀐다. 과거에는 이탈리아가 세계의 전부였을 것 같다. 르네상스 시기 그리스도와 성인의 얼굴은 레오나르도의 대표적인 스푸마토 기법처럼 은은하게 명암으로 윤곽을 구분하는데, 이곳 베네치아에서는 명확하게 선으로 경계를 지어놨다. 웹툰 같은 느낌이다. 구조 자체는 궁륭이며 아치며 다른 성당과 비슷했지만, 분위기는 이슬람 모스크 같았다. 

성 마르코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포교 중에 이교도들에게 잡혀 순교하였다. 베네치아의 수호성인이 된 것은 베네치아 상인들이 9세기경 알렉산드리아에서 성 마르코 유골을 반출하면서부터이다. 좋은 말로 반출이라고 하고, 실제로는 절도라고 읽지 않을까. 상인들은 가져온 유골을 보관하기 위해 830년 성당을 창건하였다. 10세기 경 내란시 화재로 파괴되었다가 복구하였고, 11세기에 현재 모습으로 재건되었다. 십자군 전쟁의 혜택을 가장 많이 본 도시답게 동방에서 노획해 온 전리품으로 하나둘씩 성당을 장식하였으며, 1204년 4차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플 마술경기장에서 훔쳐온 고대 그리스의 도금 말 청동상 4기를 꼭대기 테라스로 올려 장식하였다. 말 청동상을 4개씩이나 올리다니 지독한 놈들일세. 이 정도 광기이니 미켈란젤로가 <다비드>를 베키오 궁전 지붕에 설치하라고 졸랐나 보다. 지붕과 회랑 등 모자이크 벽면은 12세기부터 14세기까지 성령강림, 승천, 그리스도 임마누엘, 요한계시록, 성유체의 반입, 구약성서, 기적, 수난, 부활 등을 소재로 장식되었다. 둥그런 모스크 같은 지붕 위로 삐죽 첨탑이 솟은 모습은 근대까지 건물 마감장식에 영향을 미친 것 같다. 런던 세인트판크라스, 벨기에 안트베르펜 등 유럽 많은 기차역에 가보면 산마르코 성당의 파사드 같은 모습이 보인다.




성당 옆 두칼레 궁전을 비롯하여 산마르코 광장 사면의 궁전은 베네치아 박물관으로 활용된다. 통합티켓은 16유로이고 총 3일간 유효하나, 사실 두칼레 궁전을 빼면 고만고만한 지역 박물관 등이라 별로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두칼레 궁전의 황금계단을 올라가던 과거 베네치아 총독(doge)이 사용하던 집무실, 접견실 및 회의실이 나온다.

두칼레 궁전은 679년부터 1797년까지 베네치아를 다스린 120명 총독의 관저였으며, 현재의 궁전은 9세기경 최초로 건설되었다고 전해진다. 피렌체 베키오 궁전은 '돌돌돌'로 단단한 궁전이었는데, 베네치아 두칼레 궁전은 고딕양식의 연속된 장식 기둥이 죽 늘어선 발코니가 탄성을 자아내는 아름다운 궁전이었다. 최초에는 투박한 요새 같은 고딕양식 건물이었으나, 화재 이후 재건 및 수차례 보수, 증개축으로 현재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르네상스는 물론 비잔틴까지 다양한 건축 양식이 결합되어 '베네치아 고딕'이라는 별명을 얻었게 되었단다. 백색과 분홍색의 대리석으로 장식된 건물은 곧게 뻗은 직선의 남성성에 더해 수많은 아치로 정교하게 장식되어 여성성이 가미되었다. 두칼레 궁전 2개의 정문 중 산마르코 대성당 쪽의 문은 '문서의 문'이라 하여 과거 관보게시판의 역할을 하였다.

베네치아 총독이란 직업은 이상하다. 투표를 통해 선출되기는 쉽지 않은데, 정작 선출된 이후에는 사사건건 평의회 승인을 받아야 하고, 적어도 2명 이상의 의원과 동행해서만 베네치아 외부로 출장 갈 수 있으며, 두칼레 궁전에서의 모든 공식행사 비용을 사비로 감당해야 하는 극한직업이었다. 돈 많고 나이도 많은 거부가 죽기 전에 돈을 다 써버리고 싶을 때 지원했던 직업이었나 보다. 예나 지금이나 정부수반이 결코 권력만 누리는 직업은 아니다. 조선시대 왕들이 격무에 시달려 요절하고 과로사했던 일이나, 지금도 대통령이 눈에 띌 정도로 노화속도가 빠르고 그 비서실장은 치아가 다 빠져버리는 것은 권력의 정점을 누린다는 게 결국 목숨값이라는 이야기이다. 치기 어릴 때는 그저 높으신 분들의 위세가 대단하고 부러웠는데, 나이 들고 죽음이 가까워지면서 수명을 담보로 하는 권세는 노땡큐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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