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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히 마주친 May 14. 2024

지하철에서 교수님을 봤다.

인사 안 함

4호선은 서울에 주로 다니는 2호선, 5호선과는 달리 열차가 이십 년도 더 되었다. 의자는 주로 파란 천으로 만든 벨벳 재질이었고, 쿠션감이 있었다. 여름에 앉으면 땀띠가 날 것 같았다. 심지어는 부분적으로 갈변해 있어서 더더욱 더럽게 느껴졌다. 고압으로 스팀을 가해 소독하지 않으면 유럽처럼 베드버그가 들끓을 것 같았다. 심지어 금요일 밤에 막차를 타 보면 알겠지만, 그 위에 토하는 취객도 보인다. 유일한 장점은 바깥이 보이는 것. 반월역의 논두렁 밭두렁과 한양대 에리카 앞의 건물이 살짝 보였다.

그런데, 그 구경을 하다가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다. 긴가민가했다. 칠 년 만이었으니까. 교수님이었다! 토요일 오전 여덟 시여서 수업이 없을 터였다. 앞머리 없는 똑 단발인 것만큼은 여전했다. 뿌리염색을 안 해서 생선 가시를 닮은 새치가 2cm 정도 자라 있었다. 얼굴의 잔주름은 조금 더 생긴 것도 같았고, 아닌 것도 같았다. 시선을 느꼈는지, 다이어리형 폰케이스를 똑딱똑딱 여닫았다. 눈치 못 채게 하려고 힐끔힐끔 변태처럼 훔쳐봤다. 서로 사적으로는 모르는 사이나 다름없어서 인사를 하는 순간 불편해질 것 같았다. 심지어 동선도 비슷할 텐데 계속 같이 갈 자신이 없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순간 잊고 있었던 수업의 내용이 전부 떠올랐다. 쓰고 있는 이 순간도 몇 개가 더 떠오른다. 우리의 뇌는 와인저장창고와 같아서 꺼내는 능력만 있으면 거뜬히 다 꺼낼 수 있다고 들었는데, 그게 정말이다. 중앙역에서 내릴 때 은근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교수님도 내렸다. 어떤 여자가 여행가방을 들고 계단을 내려가려고 하고 있기에, 오지랖 넓게 엘리베이터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 바람에 인파에 섞인 교수님의 뒷모습을 놓쳤다. 아마도 그 수업을 좋아하진 못했던 것 같다. 끝까지 인사 못했으니. 안산은 필자가 가장 나 다울 수 있는 곳이다. 아무도 날 모를 것 같고, 혼자만의 추억만 가득한데, 동네 사우나에서 누군가를 만난 것처럼 어색했다. 성포동에 있는 롯데리아로 향하는 버스에 탔다. 예대 방면과는 반대로 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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