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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히 마주친 May 16. 2024

글의 주제나 의도에도 유행이 있다.

월피동 이솝도서대여점

필자는 2024년 SPA 브랜드 회사에서 생산조차 하지 않는 디자인의 부츠컷 청바지를 옷장에 간직하고 있다. 마라탕 한번을 안 먹어봤고, 삼성페이 기능도 안 써봤다. 이어폰을 무선으로 쓰는 게 다행일 정도다. 글에도 명확한 주제(의도)의 유행이 있다. 따라가기가 후달린다. 요즘에는 해외살이, 대기업 현직 근무 일지, 음식 만들기가 자주 보인다.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한다. 책(글)도 상품이라는 거. 심지어는 추가적인 수입 창출이 어려운. (개인당 한 권 사서 본다. 심지어 넷플릭스 계정 공유하듯이 윤독하는 경우도, 중고거래 하는 경우도...)

광덕산에서 삼일초등학교 가는 쪽으로 쭉 내려오다 보면 '이솝도서대여점'이라는 곳이 있다. 예대생일 때는 때가 탄 노란 간판 위에 궁서체로 된 글씨가 쓰여 있었는데, 지금은 교체를 해서 파랗고 반짝거린다. 아침에 돌아다니다 보면 셔터가 내려가 있는 것도 볼 수 있는데, 구멍을 직사각형으로 뚫어놓아서 반납도 할 수 있게 해 놓았다. 마치 헌 옷수거함에 옷 던져 넣듯이.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한 권 당 오백 원에서 천이백 원 선인 것 같았다. 하루 가격인지는 모르겠다. 만화책, 무협소설을 빌려주는 것 같았다. 중학생 때까지는 저런 대여점이 동네마다 한두 개 있었다. 비디오도 같이 빌려줬었다.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주면 꽉 껴서 사각형으로 모양이 삐져나왔다. 과자 몇 개도 사서 담아서 대롱대롱 집에 오곤 했다. 그때만 해도 끝물이었다. 고등학생이 되자 전부 문을 닫았던 것 같다. 비디오는커녕 스마트폰이 나오기 시작할 때였다.

요즘에는 만화방이라는 것도 있다. 원목으로 된 한 평짜리 칸막이 안에 들어가 좌식으로 이용할 수 있다. 주문만 하면 음식도 해주고 커피도 내려준다. 패드도 무료로 빌려줘서 넷플릭스를 볼 수도 있다. 이솝은 음식을 안 파는 것 같고, 앉아서 읽을 수 있는 자리는 있는지 궁금했다. 과연 경쟁이 될까? 되니까 문을 열어 놓은 것일 텐데. 통유리 창문에 딱 붙어서 기웃거려 본 적도 있었으나, 주인의 뒤통수가 보여서 눈치가 보였다. 포기하고 돌아섰다.

유행에 크게 흔들리지 않으려면 어떡해야 할까? 크게 방법은 없는 것 같다. 그저 끝까지 아등바등 버티는 것밖에는. 이솝이 여전히 간판 불빛을 밝히고 있듯이, 필자도 모니터 화면을 밝히고 있다. 한동안 질려버려서 "글 다신 안 써!" 말했지만, 인생에 '절대 다시, 두 번 다시 안 해'라는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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