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을 씹을 때마다 이가 아팠다. 상악이라는 것만 알겠고 어느 치아인지도 못 찾았다. 밥 먹기가 무서워질 정도였다. 바나나나 우유로 식사를 때웠고, 하루에 1kg씩 빠졌다. '월피동 치과'를 검색했다. 삼십 대 여자 원장이 하는 치과에서는 금이 간 것 같다며 얼음을 들고 와서 대보며 찾아주려고 했다. 못 찾았다. 세반상가에 있는 한 치과를 찾아냈다. 인터넷에는 93년에 개업을 했다고 나와 있었다. 실제로 가보니 마모된 얼룩무늬의 계단이 있었고, 1층에는 방앗간집과 수납이 제대로 되지 않아 박스가 쌓여 있는 약국이 있었다. 2층으로 올라가니 색이 바랜 간판이 있는 치과가 나왔다. 강남에 있는 치과들은 대리석을 깔아놓고, 클래식 음악이 나오고, 대표원장은 프로필 사진을 찍어 이력을 기재해 놓곤 한다. 여긴 그런 거 없었다. 시트 가장자리가 찢어진 베드와 희끗희끗 해진 조명이 있을 뿐이다. 입소문으로만 영업을 한다는 추측이 들었다. 필자는 포름크레졸 냄새를 아주 싫어해서 치과에 가는 것을 싫어한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맡으면 긴장이 되고 기분이 나쁘다.
육십 대 의사가 칫솔만 한 미러 꽁지를 이용해 상악의 치아를 전부 꽝꽝꽝 때렸다. 아무 반응을 안 하자 이렇게 말했다. "어딘지 모르면 치료 못해요. 사랑니 내려오고 있으니 뽑아야 돼요." 28번을 말하는 것 같았다. 고3 때 38번 주변 잇몸이 자꾸 부어서 (치아에도 번호가 있다. 예전에 '치과'를 주제로 한 희곡을 써서 알고 있다.) 발치한 적이 있었다. 중력의 힘을 받아 28번이 내려오고 있던 것이었다.
생각 좀 해보겠다고 하고 베드에서 일어났다. 다행히 통증은 서서히 사라졌다. 방학 때 예약을 하고 다시 갔다. 아침 해의 존재가 미미할 만큼의 폭우가 쏟아지던 날이었다. 바지는 다 젖었다. 마취 후 방치 시간이 10여 분, 발치는 1초가 걸렸다. 어차피 절개도 안 했고, 상악은 안 붓는다. 포름크레졸 냄새는 잘 느껴지지 않았다. 분명 그럴 리가 없었는데 말이다. 이틀 뒤에 소독을 하러 오라고 했다.
비는 그쳐 있었다. 상가를 자꾸 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왜 이러지? 이상한 기시감이 느껴졌다. 뒤늦게 떠올랐다. 초등학생 때 집 근처에 있던 농심가라는 상가를 닮아 있었다. 건축 연도도 비슷할 것이었다. 2층에 똑같이 치과가 있었다. 육십 대 남자 의사인 것 역시 동일했다. 2000년대 초반에는 그 낡은 상가 안에서 옷 세탁, 반찬 쇼핑, 책 쇼핑, 학원, 미용실 등등 거의 모든 생활의 전반을 해결해 왔다. 지은 지 오 년이 안 된 잠실 근방의 상가들을 말하는 게 아니다. 부모님 얼굴엔 주름이 없었고, 동생은 나보다 손 한 뼘은 더 작았고, 골프 치는 사람들은 자기들끼리만 조용히 칠 뿐 어딘가에 자랑하지 않았고, 동네를 돌아다니면 외제차를 한 달에 한 번 볼까 말까 했다. 재건축으로 인해 이젠 기억 속에만 남아 있다.
소설 '오발탄' 속의 주인공처럼 피를 삼키며 집으로 향했다. 치즈케이크를 샀다. 교정기를 낀 지 얼마 안 된 친구가 먹는 것을 보고 힌트를 얻었다.
안산 어디를 가도 다 삼 층 이상의 건물이 잘 없고, 건축 연도가 삼십 년 이상인 건물이 열 개 중에 다섯 개 이상은 된다.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초등학생으로 돌아간 것도 같고, 변기 레버를 누르는 게 아니라 '손으로 내려야 해서' 짜증 나기도 하고, 영원하진 않겠구나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