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본 것 중 최악의 결혼식

십오 년 가까이 되었는데도 안 잊혀

by 문장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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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때 엄마 따라갔던 결혼식이었다. 엄마는 평소 사용할 줄 모르는 휴대폰 기능이 있더라도, 창피해서 친구에게 물어보지 못하는 편이다. 집에 와서 묻곤 했다. 카드 잔액이 없어서 옷가게에서 결제를 못했다는 말을 하자, "창피했겠다"라고 대답하는 편이었다. 오히려 필자가 "없을 수도 있지 뭐"라고 말했다. (현금이 있어서 그걸로 결제했다)

서울에서 열린 결혼식이었고 지하철을 타고 갔다. 3호선 라인이었던 것 같다. (한번 갈아타서 기억된다) 평소 도보로 십 분 거리도 차를 타고 가려는 엄마가 왜 대중교통을 이용하자 했을까? 아마 주차 공간이 없던 것이 아니었을까 추측된다. 12월의 바람은 방금 전 얼굴에 바른 로션을 순식간에 증발시킬 정도로 차가웠다. 멋을 내려고 신은 갈색 스웨이드 부츠 속 발가락이 얼어붙었다. 벗어볼 수 없어서 답답했는데 아린 느낌이 왠지 동상에 걸리기 직전인 듯했다.

축의금을 직접 내지 않아서 얼마를 냈는지는 모르겠다. 동생까지 셋이 간 거라서 아마 최소 십만 원 이상은 냈으리라. 당시 네다섯 명 앉아 있는 소기업 직장인 초봉은 보통 백만 원 초반대였다. 밥을 먹으러 갔는데, 웬걸, 식당이 지하에 있었고 학교 급식실에 있는 것처럼 각지고 딱딱한 검은 의자들이 있었다. 화려한 레이스 장식의 테이블보 같은 것도, 삼단 케이크 같은 것도 없었다. 한상차림이었다. 기본 배추김치, 오백 원 동전 사이즈의 떡갈비 구이, 절편 두어 개가 나왔다. 찬 개수가 다섯 개에서 여덟 개 사이였던 것 같았고, 그걸 여러 사람이 같이 먹어야 했다. 국은 식어빠져 있었다. 그릇은 신령님께 치성을 드릴 때나 사용할 것 같은 도기재질이었다. 맛은 주말 오후에 어제 먹다가 남은 반찬을 전자레인지에 데워먹는 것 같았다. 후식도 없었다. 보통 결혼식은 뷔페나 코스요리가 아닌가. 그것도 아니라면 최소 스테이크나 고급 우유로 만들었다는 아이스크림 정도는 나온다. 식대가 얼마였는지 모르겠지만, 서울시에서 할 수 있는 곳 중에 가장 싼 곳이지 않았을까. 지금 생각해 보니 축의금 받은 것의 절반 이상은 남겨먹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여담인데, 한 조선족의 집에 갔던 적이 있었다. 손님이 먹다가 남길 정도로 양껏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는 것이 중국 문화다. 김치며, 고기며, 각종 밑반찬까지도 단 하나도 맛없는 게 없었으며, 텃밭에서 직접 키운 쌈채소까지 씻어서 내주었다. 다이어트고 뭐고 그날만큼은 잊어버리고 두 그릇은 먹었다. "한식당에서 파는 것보다 더 양 많고 맛있다"는 인사를 남기고 왔을 정도다. 손님 대접은 저렇게 해야 하는 거구나, 생각했다.

게다가 종교식이었다. 주례 역시도 그것과 연관된 이야기였고,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서 하품이 나올 지경이었다. 축가 역시도 예상대로다. 저고리의 두 배 넓이의 소매가 달린 옷을 입은 합창단원들이 나왔다. 한마디로 정리해서, 그 종교인만의 잔치였고 나머지는 자리만 채우고 앉아있는 병정들이었다. 아마 종교 이야기를 하다가 눈이 맞은 것으로 알고 있다.

더 못 말리는 것은 우리 엄마다. 식이 끝나고도 한 시간 동안 귀가할 생각을 안 하고 사람들과 인사하고, 신랑 신부를 챙기며 이야기해 댔다. 언제 갈 거냐고 몇 번을 물었다. 들은 체도 안 했다. 발가락은 더 탱탱 불어서 터질 것만 같은 작열감이 들었다. 결국 신랑 신부가 신혼여행을 떠나는 뒷모습까지 보고 왔다. 스프레이 범벅인 신부의 올림머리에 꽂은 실핀 열 개는 그대로였다. 핑크색 코트와 구두차림으로 바뀌었을 뿐. 홀은 사람이 없어 썰렁했다. 우리가 문 닫고 나온 것 같았다. 한참을 볼멘소리 해댔다.

아마 눈이 내렸던 것 같다. 습기 가득한 찬 공기 냄새가 아직도 느껴지는 듯하다. 앞으로 이 기록을 경신할 결혼식은 없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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