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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히 마주친 May 14. 2024

인생은 홍상수 김민희처럼

불륜 옹호 X, 오해 X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안산에 살면서 스무 번도 더 넘게 돌려본 영화다. 정신을 차려보면 주인공들처럼 밖에 나가 소주에 회를 먹거나 산책하고 있었다. 홍상수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계절감을 잘 담아낸다는 것이다. 겨울이면 김이 올라오는 커피를, 벌벌 떨면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목도리를 걸림 없이 하기 위해 올려 묶은 여자의 머리를 포착해 냈다. 겨울해는 16시가 넘어가면 보통 오렌지빛을 띠게 되는데, 정면으로 맞으며 걸었다. 내일이면 또 나올 수 있지만, 아쉬워서 못 들어가고 같은 코스를 뱅글뱅글 돌았다. 광덕시장 맞은편 깔세 가게에서 팔던 제철 딸기를 꼭 한 박스씩 사 왔다. 여자에게 돈을 내면 항상 "감사합니다" 소리를 들었다. 뭐가 감사하다는 건지. 단돈 이천 원에 얻었으니 필자가 더 이득본 거 아닌가. 계좌이체 따위는 없었다. 꼬깃꼬깃한 지폐를 펴서 냈다. '카드만 들고 다니기' 과도기였다. 땀이 난 것 같이 찝찝해지면 일몰 후였다.

사실 가로등이 고장 난 구간을 반드시 거쳐야만 해서 밤 귀가를 되도록 안 하려고 했던 것이었다. 되려 광덕산 옆길보다 더 어두컴컴했고, 밤눈이 남들보다 어두운 편이다. 한 손에는 스마트폰으로 켠 손전등들고 발을 비추었다. 설령 안 넘어지더라도 불안해서였다. 다른 한 손에는 딸기박스를 들어 옆구리에 끼웠다. 비틀거리며 드는 생각은 '인생 조졌다'였다. 모든 친구와 싸워서 연락이 다 끊긴 상태였다. 인터넷에서야 다들 "나 친구 없어요" 하지만, 현실에서는 파티룸이며 대형펜션이 주말이면 만실이다. 생일이면 기프티콘을 수십 개씩 받는 사람도 봤다. 집 앞 가로등불이 세모 모양으로 방사되고 있는 것이 멀리서 보였다. 빛과 빛 사이 어두운 부분에서 길고양이들이 그림자처럼 일렁였다. 원룸에 들어와 세수부터 하고, 스킨로션을 바르고, 안 지워지도록 목티를 힘겹게 벗고, 앉아서 그 분 남짓한 롱테이크 부분을 반복 재생했다. 횟집에서 "저 사실 친구가 없어요" 고백하는 부분.

그러던 2017년 3월의 어느 날, 영화 시사회에서 그들은 '무슨 사이냐'는 질문을 받게 되었고, 가감 없이 '사랑하는 사이'라고 답변했다. 팬으로서 충격이 아닐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화가 훼손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 이후로도 몇 번이고 다시 봤고, 심지어 촬영지인 수원에도 가봤으니까! (수원 여행일지는 나중에 따로 쓰겠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하고 산다. 연예인 폭로, 유명인 인성 논란 터지는 것 보면 사실 우습다. 폭로나 미투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기 때문이다. 그레이건을 포함하면 더더욱. 그런데 공인이면 모든 걸 멈추고 활동 중단을 해야 된다고? 잘못을 저질렀을 때 가장 욕을 덜 먹는 방법은 홍상수, 김민희처럼 하는 것이다. 솔직함보다 강력한 것은 없다. 내 잘못에 대해 욕을 하면 그냥 꿀꺽하면 된다. 상관없는 부분도 덤으로 살 붙여서 욕하면 실없이 웃으면 된다. 그 영화시사회 역시도 풀 버전을 몇 번이고 돌려보았다. 인생 사는 노하우를 알고 있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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