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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히 마주친 May 13. 2024

안산 다문화거리

이미 대한민국은 글로벌화

원래 사람은 자기 자신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자기 주변 사람들을 나침반으로 삼는다. 좁은 식견을 가졌다고 할 수 있지만, 원래 열에 한둘을 제외하고는 우물 안에서 죽는다, 누구든.

안산에 수십 번을 오갔지만, 안산역(원곡동)에 간 것은 처음이었다.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느꼈던 것은 여기는 중앙동보다 건물이 훨씬 오래되었구나, 였다. 화장실도 좌식변기였고 비누도 변변치 않았다. 지하철 출입구 맞은편에 50인치로 추정되는 TV가 서있었다.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화면에선 정장을 입은 중국인 아저씨가 뭐라 뭐라 떠들고 있었다. 얼핏 붉은 깃발이 보였던 것 같다. 월피동에도 중국식품을 파는 슈퍼마켓이 있어서 많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건 '코너 하나'에 불과했다. 여기서 보니 세 잎클로버 군락을 보는 느낌이었다.

'다문화거리'라고 나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들어서니 재래시장 같은 느낌이었다. 이름 모를 외국 음식과 과일을 팔고 있었고, (필자가 알아볼 수 있는 것은 두리안과 중국식 왕 큰 꽈배기 정도였다) 미얀마어, 태국어로 된 슈퍼마켓이 즐비했다. 두리번대다가 외국어 안내소도 찾아볼 수 있었고, 러시아어와 베트남어가 가능하다는 휴대폰 가게도 있었다. 길거리에 침을 뱉는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한국인의 비율은 10~20% 내외였다. "쟤는 한국인인데 여기 있네?" 하는 눈빛들이 얼굴에 부딪혔다. 백인, 흑인, 동남아인, 아랍인 등등 인종은 다 섞여 있어서 유럽의 한 거리를 연상케 했다. 세 걸음이면 건널 수 있는 횡단보도를 건너니 얼굴에 피가 나는 남자가 보였다. 깜짝 놀라 자세히 보니 공사장 작업복을 입고 있었다. 아마 산업재해일 것이었다. 옆에서 "형, 괜찮아? 이리 와." 하며 챙겨주는 사람이 있어서 그냥 지나왔다. 말 안 통하는 사람들만 있는 곳에서 다치면 챙김을 받지 못할 확률이 큰데, 다행이었다.

거기를 지나면 '뗏골'이라고 하는 곳으로 가는 길이 나오는데, 다리가 무척 아팠지만, 지금이 아니면 못 가볼 것 같아서 꾸역꾸역 걸었다. 소련 해체 이후 여전히 러시아어를 통용하는 나라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었다. 일명 '스탄' 국가들. 페르시아어로 '나라'라는 뜻이다. 우즈베키스탄 유치원, 러시아 빵집이 있었고, 메가커피나 파리바게트 같은 것이 간간이 섞여 있는 수준이었다. 고개를 돌리면 금발벽안의 사람들이 편의점 앞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있었다. 다문화거리에 비하면 쇼핑스팟이 없지만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조용한 동네였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바로 서울로 가야 해서 음식을 하나도 포장해 가지 못했다는 것. 다음에 햇빛 좋은 날 마리나 베이커리를 포장해서 공원에 들고 가서 먹으리라 생각했다.

요즘엔 서울에서도 길거리를 걸으면 열에 한둘은 외국인이다. 저출산 시대에 외국 인력의 유입은 자연스러운 일이겠지만, 급속도로 빨라지는 유입에 댐이 터진 것을 목격하는 것 같다. 아니, 이미 안산을 보면 알겠지만 외국 인력 없이는 산업이 돌아가지 않을 것 같다. 좁은 동네에서 살다 보니 모르고 있었을 뿐, 이미 대한민국은 글로벌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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