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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봉사 하러 오셨군요?”

-늦게 뛰는 남자의 아주 긴 마라톤

by 플레이런너



어머니가 2004년 10월 30일, 아산병원에 다시 입원하셨다.

그날 이후, 나의 취미였던 마라톤도 멈춰 섰다.

어머니가 입원했던 그날이 다름 아닌 서울 울트라마라톤 대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친구에게 같이 뛰자고 울트라 신청을 강권한 것이 몇 달 전의 일이었다. 그러나 난 어머니 간호라는 핑계 아닌 핑계로 신청을 미루었다. 결국은 서울마라톤을 클릭하지 못했다. 함께 신청했던 친구가 100km에 나갔다. 나는 친구의 완주를 보기 위해 양재천으로 갔다.

100km를 달리는 친구의 마지막 7km를 함께 뛰었다.

그때의 기분은 내 인생 첫 완주보다 뜨거웠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 아산병원 병실의 어머니가 떠오르며 마음 한켠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래서 나는 다짐했다.

“언젠가 다시 뛰자. 어머니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그로부터 몇 달 뒤, 11월 19일 새벽 3시 30분. 다시 서울 울트라마라톤의 날이 찾아왔다.

“자원봉사 하러 오셨군요?”

올림픽공원에 도착하자 마라톤 동료가 내게 던진 첫마디였다. 키 180cm, 몸무게 86kg. 마라토너 치고는 배가 제법 풍만하다.

외형만 봐선 자원봉사자가 더 어울렸다.

게다가 풀코스도 아닌 ‘울트라(63km)’라니, 누가 믿겠는가?

솔직히 나 자신조차 그런 시선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마라톤 대회가 끝나면 기록 문자를 지우지 않는다.

술자리에서는 늘 나를 두고 내기가 붙는다. 그때 써먹으려고 기록 문자를 지우지 않았다.

“김영진이 마라톤을 한다”에 만원 걸겠다.

“김영진과 마라톤은 절대 아니다”에 술값 걸겠다.

그럴 때면 나는 휴대폰을 꺼내 든다.

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늘 비슷했다.

“그 문자, 네가 보낸 거지? 몸이 아닌데, 안 속지!”

그랬다.

내 마라톤은 늘 인정 못 받는 마라토너이었다.

늘 남들보다 늦었고, 완주조차 늘 힘겨웠다.

동호회 명함을 내밀 자신도 없었다.

내가 골인할 때쯤이면 대회는 이미 끝나 있었다.


새벽 다섯 시, 올림픽공원 평화의 문에서 출발했다.

그 시각엔 대회 관계자 말고는 사람 그림자도 드물었다.

이 시간에 뛴다는 것만으로도 절반의 성공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아산병원이 보이자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날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나는 다시 울트라에 도전했다.


아내는 말렸다.

“당신 몸으로는 무리야.”

나는 설득했다.

“술 줄일게, 준비 철저히 할게. 그럼 살도 빠지고 좋잖아.”


30km 표지판 앞에서 한숨이 터졌다.

“아직 반도 안 왔구나… 완주는 정말 힘들겠어. 주변 말이 맞는 것 같아. 난 달리기는 아니야.”

머리는 ‘뛰라’고 명령했지만 몸은 듣지 않았다.

머리가 내 몸의 주인이 아님을, 그날 절실히 배웠다.

동호대교 즈음에서 한 주자가 내 옆에 붙어 달리기 시작했다.

함께 뛰며 묵묵히 보조를 맞췄다.

영동대교가 보일 무렵, 그가 말했다.

“저, 하프코스 주자예요. 2시간 30분 페이스 맞춰서 왔는데, 선생님은 울트라시죠? 와, 대단하세요. 꼭 완주하세요!”

그 한마디에 나는 이상하게 힘이 났다.

마라토너로서 늘 인정받지 못하던 내가, 그 순간 처음으로 받아들여지는 느낌이었다.

런너는 단순하다.

그저 한 마디 응원에, 다시 발이 움직인다.

그것은 힘이 아니라 혼이었다.

정신 나간 혼이 몸을 끌고 가는 듯한 묘한 리듬이었다.


다시 아산병원이 보인다.

2005년 4월 1일, 어머니가 그곳에서 긴 병상 끝에 떠나셨다.

어머니가 계셨던 동관 9층 병실 창이 눈에 들어온다.

“어머니, 완주하겠습니다.”

숨이 막히고 다리가 무거워질 때마다

그 한마디를 되뇌었다.

3km 남은 지점에서 아내와 선우, 선경이가 달려왔다.

“아빠!”

그 부름 한마디에 눈물이 핑 돌았다.

그 순간, 모든 고통이 사라졌다.

주로 밖에서 함께 달리는 가족의 모습이 마치 빨간 카펫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드디어 골인 지점.

양팔을 번쩍 들며 들어섰다.

한 걸음도 옮길 수 없어 주저앉은 내게 아들 선우가 종이봉투를 내민다.

삐뚤빼뚤한 글씨 —

“완주증 — 잘했음. 도장!”

나는 웃었다.

내 여덟 시간 레이스 끝에 찾아온 최고의 순간이었다.

포기하지 않은 나는 마라토너다.

끝까지 완주한 나는 마라토너다.


2006. 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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