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짝놀라 TV를 켜니 아직 어디에서도 속보는 올라오지 않았다. 이럴때 속보 자막 띄우는게 방송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지만, 그러려니 하고 말았다. 속보가 뜨고, 정식 뉴스가 올라오면서 밤에 인터넷 서점에 불이 나기 시작해, 오늘 아침부터 오프라인 서점에서도 책이 불나게 팔리기 시작했다는 말을 들으니 그냥 기분이 좋아졌다. 일찌감치 한강 작가 책은 다 읽었다는 뿌듯함은 덤이었다.
'노벨문학상 작품을 원서로 읽는 날이 오다니!!!!'
어제 밤 12시가 다되어 집에 들어온 딸 아이가 집에 한강 책 없어? 하는 말을 듣고 찾아보니 시집 한권 밖에 남은게 없었다. 몇년전 책장 정리 한다고 다 갖다 팔았기 때문이었다. 이후에는 왠만한 책들은 도서관에서 빌려읽는게 많아졌다. 그러니 밤 12시가 넘어 딸아이와 아내에게 책망을 들었다. '책을 그렇게 갖다 팔더니, 남은게 없다는'
서설이 길었다.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탔다는 소식을 듣고 이런 저런 뉴스를 보다가 연세대 교정에 붙었다는 현수막을 소개한 뉴스까지 흘러가게 되었다. 백양로에 노벨문학상이 어쩌구저쩌구.
뜬금없지만, 그걸 보다가 친구가 생각났다.연세대를 나온 김동수(가명)라는 친구이다. 김동수에 대한 에피소드는 많지만 오늘 쓸 내용은 짧다.
김동수는 나의 고등학교 친구로, 재수끝에 연세대학교에 입학했다. 시골 출신에 덩치가 크고 하는 짓이 싱거워 똥수똥수 이런 식으로 많이 불렀는데 공부를 잘했다. 성격이 모난데가 없어 친구들과 두루 친했는데, 그 친구들 범위가 공부 잘하는 모범생부터 싸움만 하는 싸움꾼들까지 폭넓었다. 성격만 모난데가 없을 뿐이지, 고등학교때 이미 술과 담배를 즐겨했고, 학교에서 졸기를 잘했는데 성적이 잘나왔기 때문에 머리가 좋은 친구라고 생각했다. 선생님들도 그의 성격과 스타일을 알아서인지 갈구기는 했지만 심하게 하지는 않았다. 김동수의 머리와 성적을 아는 선생님들은 김동수가 맘먹고 공부를 했다면 훨씬 좋은 성적으로 서울대를 갈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열심히 계도를 했지만, 학교앞 비디오방에서 음란비디오를 즐겨보고, 야간 자습 땡땡이를 즐겨치더니 결국 가고 싶은 대학에 못가고 재수를 하더니 연세대학교에 입학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김동수를 처음 만난 건 신촌 지하철역에서였는데, 그날 그는 술에 조금 취해 있었다. 스타일은 고등학교 다닐때보다는 나아졌지만 '저거 촌놈이네'하는 말이 나올만한 헤어스타일과 옷, 폼, 말투는 예전 그대로였다. '엇!'하며 이름을 부르는 김동수와 전철역에서 잠시 떠들다가 헤어졌다. 그가 했던 말 중에 기억에 남는 건 '별로 재미가 없어'라는 것이었다.
김동수를 다시 만난 건 대학을 졸업한지 5년 정도가 지난 후로, 이제 다들 직장에서 서서히 자리를 잡아갈 때였다. 시골 고등학교 동문회가 뭐 대단할까 싶다만, 우리는 횟집을 빌리고 방 한쪽 벽에 플랭카드도 걸었다. 재미있었다.
그날 취업을 안하고 여전히 공부하고 있는 친구 두명이 참석했는데, 그중 한명이 김동수였다. 김동수는 행정고시를 준비중이라고 했다. 솔직히 난 그때도 지금도 김동수가 마음만 제대로 먹었다면 행정고시쯤은 진작에 패스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김동수는 그런 마음을 잘 먹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미 고등학교때 당구에 심취했고, 술을 좋아했고, 담배를 많이 피웠다. 그리고 대학에 입학하면서 자기가 이뤄야할 성취는 충분히 이뤘으니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대학생활도 재미가 없었을 것이다.
김동수는 담배를 뻐끔뻐끔 피우며 술을 마시다가 무슨 말이 나오면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뭐 그렇지'하는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고시 준비는 어때?라고 묻는 말에도 '뭐 그렇지'라고 답하다가 간혹 담배 연기를 길게 뿜으며 'X나 힘들어'하고 말하곤 했다.
행정고시를 준비하던 김동수를 다시 만난 건 그로부터 10년이 좀더 지난 후였는데, 그때 김동수는 결혼한 상태였고 선배와 함께 일을 하고 있었다. 그저 몇몇 친구들끼리의 모임이었는데 김동수에게도 연락이 닿아 술자리에 함께 했었다. 늘 청바지에 낡은 셔츠같은걸 입고 다니던 김동수가 양복을 입은 걸 처음 봤다.
김동수는 역시 예의 담배연기를 길게 뿜으며 '아, X나 힘들어'하는 말을 했는데, 함께 있던 우리는 '야, 넌 안힘든때가 언제냐'하며 놀렸다. '언제나 힘든' 김동수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던 순간은 자기 얘기가 아니라, 자기 아내와 아이의 이야기를 할 때였는데, 아내가 고등학교 때 엄청난 수재여서 카이스트를 나왔으며 지금은 대기업에서 임원으로 가는 코스를 착착 밟고 있는 중이고, 딸아이 머리가 비상해 조금 있으면 자기가 가르치기 힘들 수준이 될거라는 등의 이야기들이었다. 그렇게 눈이 반짝이는 얘기를 하다가도 일얘기가 나오면 또 담배연기를 뿜으며 '힘들어 죽겠어'라고 말했다. 돌이켜보니 그게 벌써 10년도 훨씬 전 일이다.
김동수는 행정고시를 접은 후 대학 선배의 소개로 모 회사에 들어갔다가 몇 년 후 그만두었다. 내 생각에 김동수의 헐렁한 성격은 회사의 재무와 회계를 맡기기에는 회사로서는 쉽지 않은 결정이고, 김동수로서는 머리가 아픈 일일 것이다. 김동수가 설령 관련 전공을 했다고 해도 그걸 직업으로 선택하려면 성격이 먼저 맞아야 하는데 말이다. 회사를 그만두고 선배와 함께 회사를 대상으로 물품을 공급하는 일을 한다면서 복사지나 사무용품 필요하면 연락하라는 말을 하다가, 어느 날은 홍삼을 제조하게 되었다며 좀 사라는 연락을 하기도 했다.
어느날 친구들과 함께 모임을 하기로 했는데, 그날 마침 김동수에게서 연락이 왔다.
-어 잘지내?
-아..힘들어.
-뭐가 맨날 힘들어. 잘 살면서 그래.
-아냐, 힘들어.
-다음주에 애들 만나기로 했는데, 나올래?
-그래, 시간봐서 나갈께.
김동수와 전화를 끊고, 모임을 주도한 친구와 연락을 할 일이 있어 전화를 하다가 김동수를 얘기를 꺼냈다.
-아까 김동수랑 통화했는데, 다음주에 시간되면 나오라고 했어.
-그래? 잘 지낸대?
-아니. 요새 힘든가봐.
-하하하하. 야, 걔가 안힘든때가 있었냐.
-하, 그렇긴 하네.
얼마전 몇년만에 김동수와 전화통화를 하게 됐다. 김동수는 여전히 힘들다고 말한다.
그런 와중에 아내는 임원이 됐고, 딸아이는 좋은 대학에 입학했다. 김동수는 여전히 선배와 함께 뭘 하는지는 잘 모르지만 돈이 안되는 뭔가를 하고 있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그집에서 힘든 사람은 김동수뿐이다. 그게 힘든건지 어쩐건지는 모르지만.
내 친구 누군가는 한번도 힘들지 않은 적이 없었던 김동수가 자기 앞에서 또 힘들다고 하면 '힘들긴 뭐가 힘들어, 새끼야'라고 하면서 죽탱이를 날리고 싶다고 했는데, 실은 자기가 정말 힘들고 죽고 싶을때가 많은데 김동수가 매번 그러는 것이 짜증난다는 것이다. 김동수는 친구들과 만날 때마다 힘들어, 피곤해, 죽겠어 라고 내뱉었다. 그러다보니 그의 힘듦과 피곤함과 죽겠다는 심정토로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농담의 소재가 되어버렸고 말의 무게를 잃어버렸다. 전화통화 할때마다, 만날 때마다 힘들어, 죽겠어를 반복하는 김동수를 만나면 나도 힘들고 피곤해질 거같아서 나는 이제 그와 만나기를 꺼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