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보는 눈과 폭력적인 사람
조성미(가명)는 30대 중반에 결혼해, 3년의 결혼 생활을 채우지 못하고 이혼했다. 그리고 지금은 혼자 살고 있다. 조성미는 결혼 당시 대기업 홍보팀에 다니고 있었는데, 친구와 놀러 간 스키장에서 전) 남편을 만났다. 키도 크고, 잘 생긴 남자는 무용을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처음 만났을 때는 즐겁게 놀자 정도였는데, 조성미의 직업을 알게 된 남자가 스키장 만남 이후 적극적으로 대시해 왔다.
조성미의 말로는 전) 남편은 말 그대로 조각 같은 몸매를 가진 사람이었는데, 결혼하기 전 공연연습을 하는 걸 보고 두번째로 반했다고 했다. 조성미의 말에 따르면 두 사람은 손도 잘 안 잡았다고 하는데, 그가 조성미를 대할 때는 잘못 손대면 깨지는 유리 다루듯 해서 '이 사람이 정말 나를 아끼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식당에 가면 의자를 빼주는 건 기본이고 모든 점에서 매너가 좋았다고 했다. 첫눈에 반해 만난 지 3개월이 조금 넘어 결혼하겠다고 해서 부모님을 놀라게 했지만, 워낙 어렸을 때부터 씩씩하고 똑똑한 딸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결혼을 승낙했다. 다만 아버지는 사위될 사람이 왠지 마음에 안 든다며 결혼식 전까지 아내와 딸에게 여러 차례 말했다고 한다.
결혼 후에 남편의 공연이 몇 차례 있었는데, 대기업에서 일하는 장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언론을 통해 공연 소식을 알리는 등 조성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내조를 충실히 했다. 주변 사람들이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을 의심의 여지없이 행복한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이혼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뒤이어 들려온 소식은 조성미와 소주 한잔 정도는 나누면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라면 경악을 넘어, 분노가 치밀게 만드는 것이었다. 조성미의 남편은 게이였고,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이었다.
조성미가 2년이 조금 넘는 결혼 생활을 하는 동안 전) 남편과 가진 잠자리는 딱 한 번이었는데, 그게 바로 신혼여행 때였다고 한다. 조성미는 신혼여행 둘째 날 잠자리를 가진 이후, 부부간 잠자리는 없었다고 했다. 남자는 이런저런 이유로 핑계를 만들었고, 늦게 들어오는 경우가 많아 다음날 일찍 출근을 해야 하는 조성미가 잠에 든 후 집에 들어왔다고 한다. 또, 좀 더 시간이 지난 후에는 밤새도록 연습을 한다며 연습실에서 밤을 새우거나, 다음 날 아침에 들어오는 경우가 많았는데 간혹 같이 밤을 새운 공연 멤버와 들어오는 때가 여러 차례였다고 했다.
조성미도 대기업 홍보팀에 있다 보니 늘 바빠서 새벽같이 출근해 저녁 늦게 퇴근하는 일이 많았지만, 소위 자유직이라고 할만한 남편이 아내와 눈도 마주치지 못할 정도로 라이프사이클이 어긋나고, 간혹 시간이 맞아 대화를 나눌만하면 짜증만 내고 하니 관계는 날로 악화되어 갔다.
결국 결혼생활이 1년 반쯤이 넘어가면서 첫 번째 폭력이 발생했고, 한번 폭력이 이루어지고 나자 그다음부터는 손쉽게 주먹이 올라갔다. 수차례의 폭력이 발생하고 몸에 난 자국을 남들이 보게 되고, 그런 날들은 죽고 싶을 만큼 창피했지만 직장이니 나가야지 하다가 폭력이 정도를 넘어설 때면 몸이 아파 출근을 못하게 되는 날이 생겼다. 그러다가 결국 회사에 사직서를 내게 되었다. 남들이 들으면 기함할만한 일이지만 조성미 본인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사직서를 낸 후에는 프리랜서 일을 찾았다. 무가지에 기사도 쓰고, 홍보 관련 일도 하면서 생활비를 벌었다. 그때쯤에는 벌써 한집에 거주지를 두고는 있지만 관계없는 두 사람이 한집에 주소지를 두고 사는 꼴이었다.
그러다가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던 이혼을 실행하게 된 일이 발생했다.
그날도 남자는 아침에 다른 남자와 함께 집에 들어왔다. 다만, 조성미가 출근 전이었다는 게 문제였다 - 조성미가 프리랜서라고는 하지만 매일 어딘가로 출근을 하면서 일을 했기에 남자가 집에 들어올 때쯤엔 조성미도 이미 집을 나가는 게 보통이었다. 이미 얼마 전 폭력으로 인해 병원 신세를 졌던 조성미가 출근준비를 하다가 잠깐 본다는 것이 남자의 눈에 고깝게 보였었나 보다. 기분 나쁘게 본다는 이유로 폭력이 이루어졌고, 그날 아침 폭력은 다른 때와는 조금 강도가 셌다.
조성미의 말에 따르면, 얻어맞는 와중에 먹고살아야 한다는 생각이었는지 어쩐지 '노트북'과 '핸드백' 이렇게 두 개만 챙겨서 도망 나왔다고 한다. 어찌나 정신이 없었는지 신발을 챙겨 신을 새도 없었고, 슬리퍼만 발에 꿰고 뛰어나왔다고 했다.
이후 병원과 친구의 집에서 며칠을 보낸 조성미는 이혼을 진행했고, 지금은 혼자 살고 있다. 조성미가 친한 대학 친구들에게 담담히 지난 얘기를 했을 때 몇몇 친구는 '그놈을 죽이러 가겠다'라고 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조성미는 그렇게 말해주는 친구들이 고마웠다고 했다.
조성미는 부모님이 교수인 집안에서 유복하게 자랐다. 열심히 공부해 서울의 중상위권 대학을 나온 후 졸업과 동시에 대기업 홍보팀에 취업했다. 외모도 괜찮아 대학시절엔 과 동기 남자들로부터 인기가 있었지만 남자친구로까지 발전한 적은 없었다. 취업한 이후로는 늘 바빴고, 친구와 간 스키장에서 만난 남자와 서로 반해 몇 달 만에 결혼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결론은 위에 쓴 그대로다.
나쁜 놈, 죽일 놈, 인간 같지도 않은 놈, 개새끼, 소새끼, 쌍놈의 새끼 등 어떤 욕을 갖다 붙여도 조성미가 결혼했던 그 남자를 표현하는 데는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그건 그가 게이라서가 아니라, 게이임을 숨기고서 대기업 홍보팀에, 양친이 교수인 여자를 잘 활용하기 위해 결혼을 했고, 어느 정도 활용했다 싶었을 때부터는 본성을 드러내며 폭력까지 행사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조성미의 부족한 점은 지적해야 할 것이다. 조성미의 많은 장점과는 달리, 그녀는 타인과의 대화와 협의에 있어 자신의 생각을 지나치게 확신하는 측면이 있었다. 또, 간혹 상대의 기분과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채 말을 던지는 경향이 있었는데, 그때 상대가 화를 내거나 불편한 티를 내면 그저 장난이었다는 식으로 얼버무리곤 했다. 조성미는 첫눈에 반해 그에 관해 충분히 관찰하고 생각할만한 시간을 갖지 못했다. 아버지의 걱정을 마음에 담아 좀 더 시간을 갖고 판단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또, 조성미는 결혼을 앞두고 남자의 친구도 만난 적이 없었고, 남자에 관해 충분히 판단할 시간을 갖지 못했다. 자신의 판단과 안목을 과신했고, 주변의 걱정을 일축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불과 20년 전만 해도 이렇게까지 복잡하지는 않았다. 지금 세상에서 누군가를 만나게 될 때 그 누군가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카톡 프로필 등 그가 스스로 자신에 대해 쓴 것들일 확률이 높아졌다. 그 스스로가 만든 평판이라는 얘기다. 지금 세상에선 알고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모르는 사람을 만나게 되는 일이 훨씬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군가가 온라인에 올린 사진과 글을 보면서 그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라는 걸 생각하기 바란다. 조성미가 겪은 일은 상황과 형태를 바꾼다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