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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노보노야 Oct 17. 2024

김갑수(가명)에 대한 생각

어긋난 타이밍

갑수는 지금도 때 되면 연락해서 만나는 친구다. 

내가 예전에 사업을 정리하고 상황이 안 좋을 때 직장을 구하며 한 달 정도를 쉰 적이 있는데, 식구들이 걱정할까 말은 못 하고 매일 아침 집을 나서야 했다. 그때 따로 갈 곳이 없어 고민할 때 갑수의 자취방으로 출근한 적이 있다. 갑수는 그때 송파에서 학원 강사를 하고 있었고 내가 아침에 가면 늘 작은 방에서 자고 있었다. 나는 갑수의 집 큰방에 앉아 이력서를 쓰거나, 책을 읽거나 그러다가 점심이 다 되도록 자고 있는 갑수를 깨워 같이 밥을 먹곤 했다. 혼자 사는 집이라고 다 지저분할까 싶지만, 갑수는 '너무' 지저분하게 살았다. 나는 갑수의 집에 갈 때마다 청소를 했고, 설거지를 했으며, 갈 곳이 정해져 출근하는 날이 정해졌을 때 갑수의 집으로 무선 청소기를 사서 보내주었다.  




나는 갑수를 고등학교 1학년때 처음 만났다. 야간 자율학습시간 전 저녁을 먹고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뛰어놀 때 수돗가에서 갑수가 내게 '야, 축구 차러 가자'라고 하길래, 내가 '축구를 어떻게 차냐. 공을 차지'라고 했더니, '찬 공 또 차면 되지 뭐가 문제야. 새끼야'라고 갑수가 대답한 적이 있다. 그때 갑수가 한 말을 나는 잊힐만하면 갑수에게 하곤 하는데, 갑수는 그때마다 '그랬나?' 하며 피식 웃는다.

 

내가 처음 술을 배운 건 고3 때 갑수가 따라주는 맥주를 마시면서였고, 갑수가 학교 앞 개천 근처에서 나와 맥주를 마시다 말고 담배를 피우는 걸 처음 봤다. 나는 차마 담배는 피우지 못했다. 갑수는 이미 고 1 때부터 서울대 법대는 따놓은 당상이란 평가를 받았고, 그러다 보니 복도에서 장난을 치다가 진학지도, 학년부장 등을 만날 때면 늘 선 채로 혼자 혼이 나곤 했다. '그렇게 해서 되겠어? 공부는 언제 하려고. 제대로 하고 있는 거 맞아? 등등'  그러나 술담배를 너무 일찍 배웠고, 반항이야말로 청소년의 특권이며 주장이라고 생각했기에 공부대신 다른 것에 흥미를 '너무' 많이 느꼈다. 책을 많이 읽고-그때 이미 주역을 읽으며 풀이를 했다-, 학교 앞 비디오방에서 본 음란비디오를 내게 설명하고, 내게 술을 가르쳐준 갑수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성적이 우하향 하더니 결국 지방국립대에 입학했다. 대학에 입학해서도 학점 관리에는 별 신경을 쓰지 않고 홈페이지를 제작해 주는 회사를 차려서 운영을 하다가 군대를 가버렸다. 그리고 제대를 하자마자 복학은 하지 않고 더 열심히 돈을 벌기 시작했다. 후에 복학을 했지만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다가 서른이 다되어 졸업을 했다. 그러고는 나와는 소식이 끊겼다.




갑수를 다시 만난 건 서른이 한참 넘어서였는데, 그때 역시 갑수는 학생 신분이었다. 갑수의 말에 따르면 졸업 후 작은 회사를 다녔는데 별 재미가 없었고, 하고 싶은 일도 아니어서 잘하는 공부를 다시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1년 동안 공부해 결국 '서울대학교'에 입학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갑수의 서울대학교 입학을 두고 고등학교 동문들 사이에선 우스운 얘기가 돌았는데 하나는 갑수가 서울대학교 교수가 됐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갑수가 뒤늦게 공부하며 서울대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도 그런 것이 갑수가 대학을 졸업했다는 것과 머리가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동문 현황란에 단순히 '서울대학교'라고만 적혀 있으니 직장 아니면 공부일 텐데 그렇다면 교수나 박사과정 정도로 우리는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 풍문을 듣고 있을 때 갑수가 갑자기 연락을 해왔다. 강남역에서 소주를 마시며 갑수가 한 얘기는 졸업하고 취업을 했는데 그냥 그렇고 해서 공부를 다시 시작했고, 어찌해서 1년 만에 서울대에 합격은 했는데, 같은 과 절반이 고시를 준비하고 나머지는 유학이나 박사까지 갈 생각을 하고 있으니 자기도 뭘 해야 할 거 같아서 일단 사법고시 준비는 하고 있는데 잘될지는 모르겠다는 것이다. 갑수는 그때 자기는 남들처럼 학비를 대주는 사람도 없으니 일단은 과외도 하고, 대치동 학원에서 알바도 하고 있는데, 아마 조만간 학원 나가는 시간을 늘릴 거 같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일단 한번 발을 들이미니 그쪽으로 가게 된 것인지, 갑수는 한다던 사법고시 준비는 6개월에 그만뒀다고 했다. 그리고 학교는 설렁설렁 다니는 것처럼 보였다. 어쩌면 갑수가 원했던 건 자기 자신에 대한 증명이나 남들에게 보여줄 명예 같은 것이 아니었나 모르겠다. 갑수는 대치동에서 특목고 준비반을 가르치는 강사로 7,8년을 활동하다가 지쳤는지 잠시 후에 자신의 이름으로 휘문고 앞에 작은 공부방을 열었다. 그리고 중계동 학원가로 자리를 옮겼다가 그만두고 이번엔 송파의 학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내가 갑수의 집으로 한달간 출근할 때가 그때였다. 그렇게 수차례 학원과 공부방, 스터디 플래너 등으로 오가며 일을 하더니 불현듯 부모님이 계신 지방으로 내려가버렸다. 


지금 갑수는 첫 번째 대학에서 배웠던 IT관련 일을 하지도 않고, 뒤늦게 들어간 대학에서 배운 전공을 활용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십수 년간 가르쳤던 수학 관련 일을 하는 것도 아니다. 아버지의 오래된 가게에서 아버지와 함께 일을 하고 있다. 이제 갑수의 아버지는 가게에 거의 나오시지 않는다고 하니, 갑수 혼자 아버지의 오래된 가게를 물려받아 손님을 맞고, 물건을 팔 것이다. 





갑수는 지나친 자신감으로 공부에 전념해야 할 때 공부에 전념하지 못했고, 이후에도 자꾸만 시기를 놓쳤다. 어쩌면 인생이란 셔츠 단추를 끼우는 것과 비슷한 것이 있어서, 한번 단추와 구멍이 어긋나기 시작하면 원래 구멍에 들어가야 할 단추를 다시 끼기 위해서는 모두를 다시 빼야 하는데, 비슷하지만 다른 것이 셔츠의 단추란 그렇게 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인생은 그게 '무척' 힘들다는 것이다. 그러니 대수술 정도의 마음가짐으로 인생을 재수술하고 싶지 않다면 차근차근 인생의 각 시기에 필요한 일들을 해나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나는 갑수가 고시를 준비한다고 했을 땐 꼭 됐으면 했고, 수학 강사를 한다고 했을 때는 대치동에서도 이름 날리는 강사가 되어 자신의 이름으로 된 학원과 책을 펴내길 기원했다. 그러나 갑수는 자신이 소망했거나 내가 기원했던 것 중에 이룬 것이라곤 없다. 나는, 인생이란 소망하고 기원한다고 늘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작은 성취를 기반으로 한발씩 나아가는 것이라고 들었다. 모든 사람이 원하는 바를 이루며 사는 것은 아니지만, 누구나 원하는 바를 이루며 살지 못하는 사람이 나 아닌 다른 사람이었으면 하고 바란다. 그러나 갑수는 지금까지는 '그'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셈이다. 갑수가 서울에 와서 소주를 마시며 웃고 떠들때마다 괜찮다고, 잘 지낸다고 하지만, 오랫동안 그를 만나온 내가 그의 얼굴에 담긴 씁쓸함을 읽지못하는 건 아니다. 그래도 대학을 들어갈 때부터 치열하고 머리아프게 살아온 갑수가 이제는 많은 걸 내려놓고 여유있게 살았으면 싶다. 솔직히 내 생각으로만 말한다면 결혼도 안했고 앞으로도 혼자 살생각이라고 하니 큰 욕심 안부리고 마음만 조금 비운다면 그렇게 살수 있을 거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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