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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노보노야 Aug 08. 2024

Y의 장점과 한계

타고난 것이 있어도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논어에 이런 말이 나온다. 

물론 공자(孔子)님 말씀이다. 

나는 말 잘하는 것으로 사람을 골랐다가 재여에게 실수하였고,
생김새만을 보고 사람을 가리다가 자우에게 실수하였다.


 공자의 제자 중 하나인 담대멸명(자는 자우)은 굉장히 못생긴 외모를 가지고 있어서 공자에게 처음 가르침을 받으러 왔을 때 공자는 그가 재능이 모자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가 가르침을 받은 후 덕행을 닦는데 힘쓰고 노력해 남쪽으로 내려가 장강에 이르렀을 때 그를 따르는 제자는 300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이 얘기를 전해 듣고 공자가 장탄식을 하며 내뱉은 말이 저 말이다. 

재여(재아)는 언변이 뛰어났으나 예가 부족하고 자기 수행할 태도조차 갖추지 못해 제나라에서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하고 멸족을 당한 제자였다.




Y는 대학에서 체육을 전공하고, 광고 영업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키가 크고 잘생긴 데다 싹싹한 성격이라 업무상으로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Y를 좋아했다. 또 사내 직원들도 특히 '여직원들은' Y와 어울리는 걸 좋아했다. Y는 재미있고, 영업용으로 받은 법인 카드를 사내 여직원들을 위해 쓸 줄 아는 사람이었다. 


Y의 거래처 담당자는 업무 특성상 여성일 경우가 많았는데 Y는 그런 여성 담당자들의 비위나 기호를 잘 맞춰줬기 때문에 거래처 사람들과 관계가 좋았다. Y는 영업의 일환이라며 거래처 여직원들과 영화를 보거나 이태원 클럽으로 놀러 가곤 했다. 또 여름이면 서핑, 겨울이면 스키를 타러 가곤 했는데, 대부분의 비용은 법인카드로 결제했다. Y가 거래처 여성 담당자와 사적인 만남을 갖고 결국 사귀는 단계까지 가는 걸 두 번 정도 본 적이 있는데 그 기간은 모두 6개월을 넘지 못했다.


Y는 영업 담당 부장까지 하고서 회사를 그만둔 후 자기 회사를 차렸는데, 광고 영업직으로 경력을 쌓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판매 대행사 같은 것이었다. 거래처 담당자들과의 좋은 관계 그리고 Y의 스타일로 볼 때 Y가 자신의 회사를 잘 키울 수 있을 거라는 짐작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Y는 직원으로 일할 때보다 좋은 실적을 만들지 못했고 자기 사업을 시작한 지 1년 반을 넘기지 못하고 그만두고 말았다. 




Y의 실패는 사실 예측된 것이었다. 이렇게 말하면 지나고 난 뒤라 쉽게 말하는 거 아니냐라고 할 수 있겠지만, Y를 옆에서 자세히 살펴보면 그건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밖에 없다.


Y의 영업은 대부분 먹고 마시며 이루어졌는데 그건 그가 파는 상품의 질보다는 그와의 관계에 따른 실적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그건 지속 가능성이 떨어진다.

Y는 거래처 여성 담당자와의 사적인 관계 형성에 많이 집중했다고 보이는데, 실제 Y가 하는 대화의 대부분은 일상의 신변잡기 및 오락거리에 걸쳐있을 뿐 업무의 생산성과 효율을 높이는데 도움 되는 얘기는 많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Y의 유머와 호감 있는 외모에 끌려 좋은 만남이 시작되긴 하지만 업무 담당자로서 또는 그걸 넘어서 한 개인으로 관계가 지속되다 보면 Y의 부족한 모습이 많이 보여 실망스러움을 느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Y에게 대학원 얘기를 한 적이 있었고, 그게 아니더라도 업무와 관련된 책이나 단기 교육과정에 관한 얘기를 여러 차례 했었다. 그러나 그는 시간이 없다는 말을 많이 했고, 책 보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조금씩 변형시켜 내는 것은 잘했지만 자기만의 인사이트를 만들어내기에는 많이 부족했다.


나는 Y가 일을 시작한 이후에 자기 일과 관련해 단순히 관계에 기반한 영업이 아닌 다른 사람이 줄 수 없는 인사이트를 찾아내고, 전문적인 조언을 해줄 수 있을 정도로 공부하고 노력했다면 훨씬 큰 성공을 거두었을 거라고 확신한다. 앞서 말했지만 Y는 유머 감각도 있고, 호감 있는 외모를 갖췄으며 성격도 좋아 처음 만나는 상대를 편하게 해주는 장점이 있었다. 특히 Y는 체육을 전공했다는 장점을 살려 골프도 잘 쳤는데 거래처의 남자 관리자들은 그와 골프 치는 걸 좋아했었다. Y가 가진 그런 장점에 업무 전반에 걸친 그만의 인사이트와 전문지식까지 합해졌다면 그의 현재는 아마 많이 달랐을 것이다. 



중국 송나라 시대의 유명한 문필가인 왕안석이 쓴 '방중영을 그리워하며'라는 글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방중영의 천부적인 재능은 세상의 수재들보다 훨씬 뛰어난 것이었다.
그런데도 보통사람이 되고 만 것은 그의 천재성이 후천적인 노력과 교육으로 개발되지 못했던 탓이다. 방중영과 같은 천재도 교육받지 않으면 평범한 사람으로 전락하고 만다. 하물며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이 열심히 배우려 하지 않는다면 과연 평범한 사람이나마 될 수 있을까? 


천재도 저렇게 노력하는데, 너같이 평범한 사람이 왜 맨날 놀 생각만 하니? 하는 거 같아 좀 찔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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