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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형수 Jun 04. 2024

어느 연예인의 방문

도대체 저한테 왜 그러시는 거예요?

나는 2002년부터 홍대에서 의류매장을 운영했다.

사실 스케이트보드샵이었지만 매장의 제품 80% 이상이 의류와 신발류였기 때문에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냥 옷가게였다.


매장의 위치가 홍대라는 위치적 특성 때문인지 유명 연예인들이 자주 방문 하는 매장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어릴 적부터 TV를 보지 않았기 때문인가? 초유명 연예인을 빼곤 대부분 모르는 편이었다.

그래서 보통은 연예인이 매장에 방문한들 알아보지 못했다.


어느 유명 연예인이 방문했을 때의 이야기다.

그 연예인은 내가 알고 있을 정도의 유명 연예인이었다. 흔히 말하는 "스타"인 것이다.

빨간색 스포츠카가 매장 앞 길에 큰소리를 내며 멈춰 섰고 그 사람이 우리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매장 일하는 직원부터 사장인 나까지 손님이 먼저 질문하지 않는 이상 최대한 말을 걸지 않는 것이 매장의 룰이었기 때문에 연예인이건 일반인이건 손님을 대하는 태도는 같았다.

하지만 매장에서 일하는 모두는 손님의 질문이나 요구사항이 있다면 정말 친절하게 응대하는 것도 룰이었다.

(다른 매장에서 점원이 손님옆에 딱 붙어서 응대하는 것이 성격상 너무 불편했던 나는, 내가 운영하는 매장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도입한 룰이었다.)


"어서 오세요."


짧은 인사를 한 뒤 난 가게 뒤에 내 자리 컴퓨터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매장 안에서 담배를 피운다는 것 자체가 지금은 상상이 안 되겠지만 강한 자 만이 살아남던 90년대 말과 밀레니엄 시대에는 흔히 있는 일이었다.


그 유명연예인은 매장 안에 들어와 옷걸이에 걸린 옷가지들을 몇 개 꺼내 보더니, 고개를 돌려 우리들이 있는 쪽을 힐끗 쳐다보았다.

다른 매장과 다른 점원들의 응대가 생소했던 것일까?. 다시 그는 시선을 행거 쪽으로 돌렸고 걸려있는 옷들을 한 개씩 빼서 옆에 있던 매니저에게 넘겨주고 있었다.

한 개씩 빼던 옷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급기야 옷을 보지도 않고 행거 전체의 옷을 다 사라고 말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삼사십 분이 지났을까.


산더니 처럼 쌓인 옷을 전부 구매하겠다고 매니저가 카운터 쪽으로 들고 왔다.


카운터뒤에서 슬그머니 나온 나는 당황한 표정을 숨기고 계산기를 바로 꺼내 들었다.

그리고 옷을 한 개씩 들어 올리며 가격표를 보고 계산을 시작했다.

차근차근 수백만 원이 넘는 옷가지들의 가격을 정확하게 계산했고

난, 단 100원도 할인되지 않을 가격을 그에게 말했으며 그도 당연한 듯, 가방에서 현금을 꺼내 세고 있었다.

평소 관심이 없던 연예인이었지만 돈을 세고 있는 쿨한 모습에 그에 대해 갖고 있던 이미지에 혼란이 오기 시작했다.


"어서 오세요", "다 주세요", "얼마예요?", "OOO원입니다", "여기 있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쿨거래가 끝나고 그는 매장 앞에 멋지게 세워둔 스포츠카를  타고 유유히 떠났다.


그는 1주일 간격으로 우리 매장을 방문했고 다시 채워진 행거의 옷들을 모두 사가기를 반복했다.


그가 4번째 방문했을 때,


그가 올 때면 나는 기대와 부담이라는 상반된 감정사이 어디쯤에 아주 불편하게 서있는 느낌이었다.

사실 다른 매장이나 브랜드들은 연예인할인이다 협찬이다 많은 것을 하지만, 우리 매장은 연예인 할인이나 협찬은 하지도 않았고 계획도 없었다. 오히려 친구에게는 그냥 주거나 할인을 해줬다.


먼저 악수를 청한 사람에게 손을 내밀지 않은 것 같은 약간의 미안함이랄까?


'아는 척을 해볼까?', '말을 붙여 볼까?' 잠깐의 상상을 하는 시간도 잠시


 "저기요, 이거 다 주세요"


라는 그의 말과 함께 오늘도 나는 참기로 했다.



나는 다시 한번 산더미처럼 쌓인 옷들을 차례대로 가격표를 확인하면서 오른손으로는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었다.


계산을 하는 순간에도 역시 무엇인지 모를 부담감이 몰려왔다.


'그래,,, 아니야, 할인을 해준다는 거 자체가 저 사람을 무시하는 것일 수 도 있어. 하던 데로 하자.'


그에게 아무 일 없는 듯 가격을 말했고 그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현금이 들어 있는 가방을 들었다.

가방을 들던 그가 무엇을 다짐한 듯 아래를 향하던 그의 시선이 어느새 내 눈과 마주쳤다.


"저기요, 도대체 저한테 왜 그러세요?"


그가 내뱉은 약간의 짜증 섞인 말을 TV예능프로그램에서 나오는 그의 유머스러운 말투였다.


"도대체 저한테 왜 그러시는 거냐고요? 저 아시잖아요?"


나는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고 대답했다.


"네, 알아요. OOO 씨 맞으시잖아요?"


하고 말하자마자 다시금 짜증 섞인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근데 왜 한 번을 안 깎아주세요?"


순간 서로를 바라보며 멈췄다.

그도 그동안 참아왔던 말을 터트린 것 같은 표정이었다.

어안이 벙벙할 틈도 없이 나도 한동안 준비했던 멘트를 꺼내 들었다.


"저희가 원래 그 누구도 할인을 해드리진 않습니다."

라는 말과 함께 옆에 있던 물건을 보여주며 말을 이어 갔다.

그 물건은 바로 그동안 내가 직접 디자인하고 만들었던 옷과 모자였다.


"이게 제가 만든 모자와 티셔츠들입니다. 그대신 선물로 드릴게요. 잘 입어 주시면 너무 고맙겠습니다."


그제야 쌓였던 감정이 녹아내린 듯 약간의 미소와 함께

"감사합니다. 하하하"

하고 그는 웃었다.


때로는 상대의 무관심이 호기심을 발동할 때가 있는 가 보다. 그도 무언가를 공짜로 얻기 위한 행동은 아니었을 것이다. 불편한 무관심을 깨고 싶은 아이스브레이킹 수법이었을 뿐.


며칠이 지나고 우연히 그가 진행하는 쇼프로를 스치듯 보게 되었다.

분명 내가 준 모자와 티셔츠를 입고 진행을 하고 있었다. 그동안 돈 주고 산 수많은 옷들이 아니고 내가 만든 딱, 그 모자와 티셔츠였다.


한동안 검색엔진에 그 연예인의 모자와 티셔츠가 검색에 걸려 많은 이미지와 판매처를 묻는 글들이 많아져  꽤 오랫동안 모자를 제작해서 많은 수익이 있었다.

'연예인 마케팅이란 이런 것인가?' 잠깐의 유혹이 있었지만 껄껄껄 하고 웃어넘겼다.

그 뒤로도 연예인 협찬은 한 적이 없다.


TV에서 나온 그의 모습이 내가 본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으며, 그 뒤로는 매장에 찾아오질 않았다.


그리고 그도 몇 개월 뒤부터 TV에 더 이상 출연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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