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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형수 Jun 12. 2024

엄마는 참 복 받은 것 같다.

산발성 클로이츠펠트야콥병

엄마는 CJD라는 희귀병을 진단받았다.

CJD는 클로이츠펠트야콥병의 약자로 흔히 말하는 인간광우병이다.

검사결과 소고기를 먹어서 생긴다는 광우병이 아닌 산발성으로 생기는 sCJD였다.

산발성이라 함은 랜덤이란 거다.

한때 인기가 많았던 게임 스타크래프트의 종족선택 랜덤옵션처럼 누구에게 왜 걸리는지 원인을 모른다는 거다.

나는 엄마의 CJD확진 후 치료법보다 "왜?"가 더 궁금했다.

의사도 원인을 모른다.

환자 가족들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가끔씩 경련을 하는 환자 옆에 조용히 앉아 환자를 지켜보는 것 을 제외하고는 진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병의 원인도 모르지만 더 맛탱이가 가는 것은 치료법도 없다는 것이다.


"앞으로 6개월에서 길면 1년 정도 일거예요"


의사와의 대화는 그렇게 끝이 났다.


엄마는 자기 발로 걸어 들어간 병원에서 생전 처음 들어 보는 병명에 하루반나절만에 시한부 선고를 받은 것이다.

평생을 절에 다녔던 엄마는 업보가 많으면 벌을 받는다고 공덕을 쌓으면서 착하게 살라고 나와 누나들에게 입이 닳도록 말을 했었는데, 본인은 무슨 죄를 지어서 이런 벌을 받는 것인지 얼마나 혼란스러웠을까?


진단을 받고 상태는 급격하게 안 좋아졌다.


이젠 소통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상태다.


"옆에서 잘 보살펴 드리세요. 일반적으로 누워 지내는 환자들은 욕창이나 폐렴에 걸려 6개월 정도 뒤에 돌아가십니다."


의사는 그렇게 우리에게 마음에 준비를 하라고 말을 했고, 나는 응급상황 발생 시 연명치료를 하지 않는다는 서류에 사인을 했다.


그리고 며칠뒤 대학병원을 떠나 작은 요양병원으로 엄마는 옮겨졌다.


엄마의 남은 시간 동안 엄마를 최대한 많이 보러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생각한 것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한 시간 거리의 병원이 왜 그리도 멀게 느껴지는지, 하루에 30분씩 두 번 있는 면회 시간 맞추기가 너무 힘들었다.

작업을 하다가도 매일 면회시간이 다가올 때면 뱃속 깊은 곳에서 불쑥 올라오는 미안한 마음이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일주일에 보통은 두 번, 많으면 세 번...


면회시간, 누가 오가는지 모른 체 눈을 감고 가만히 누워있는 엄마 옆에 30분 동안 앉아 있으면 밀렸던 숙제를 검사받은 것처럼 마음의 무게가 조금씩 덜어지곤 한다.

면회시간이 끝나기가 무섭게 일어나 병실의 자동문이 열릴 때면 내 머리 위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 또 다른 내가 나에게 매일같이 묻는다.


'넌 도대체 누구를 위해서 여기에 오는 것이냐?"


선명한 답은 알고 있었지만 창피한 마음에 얼굴이 달아올라 항상 답은 하지 않았다.


엄마가 쓰러진 뒤 단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 저녁 면회 시간에 병실을 지키는 막내누나


용변을 치우는 것부터 양치질, 목욕, 마사지 그리고 대답 없는 엄마와의 대화 등, 엄마는 그렇게 하루에 두 번 막내누나와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었다.


독한 년!

독한 년이라고 어릴 때부터 누나한테 내가 그렇게 불렀었다. 역시 그걸 해내더라.


그 모습을 보고 있을 때면 엄마는 분명 벌을 받은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수개월이 지났고 밤샘 작업 중 전화와 왔다.

막내누나의 전화였다.

휴대폰 화면에 떠있는 막내누나의 이름을 보자마자 안 좋은 소식을 직감하고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형수야, 엄마가 돌아가셨다...."


정확히 6개월 뒤 엄마는 폐렴으로 돌아가셨다.

엄마의 마지막 6개월은 평생을 서로 티격태격한 독한 막내누나 덕에 외롭지 않았을 거야.


엄마는 참 복 받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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