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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미솔 Jun 16. 2024

8화. 짝사랑 속 원나잇

따라 하지 마세요. 반면교사의 표본.

  “왜 또 불렀어.”

  “태산아, 나랑 잘래? 나랑 자자.”     


  그날 아주 늦게 집에 들어 온 내게 엄마가 물었다. 어디 다녀오느냐고.

  “태산이랑 있었어.”

  “뭐 했어.”

  “나 걔랑 잤다?”

  엄마가 경악했고, 뭐라고 말했다. 나는 그때 아주 들 떠 있어서 엄마가 뭐라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대신, 엄마가 일단은 축하드려. 라고 말한 뒤 착잡한 표정으로 무어라 이어 말한 것은 기억난다.    

 

  그 이후로는 비극이었다. 이다음 태산은 내게 완전히 관심을 껐고, 나는 내가 태산과 잤기 때문에 내가 태산의 뭐라도 되리라 착각했다. 어느 날, 태산은 나에게 아주 많이 화가 났다. 내 전화를 모두 거절하고 카톡도 읽지 않았다. 관계에서 완전한 을이 된 나는 태산에게 메시지로 사과했다. 카톡을 읽지 않아 일반 메시지로 사과했다. 너무 비굴한 문장이라 공개할 수 없다. 대신 태산에게 온 답장은 이랬다.   

  

  ‘네가 내 일상생활 방해하는 게 진절머리 나게 싫어. 그리고 너를 친구로서 만나도 행복하지 않을 것 같아.’     

  정말 마지막인 것 같았다. 나는 또 미안하다고 말했다. 답장은 오지 않았다.     


  우울했다. 나에게 또 큰 변화가 필요해졌다. 옷장에서 도복과 띠를 꺼냈다. 3년 전, 즐겁게 한 기억이 있는 주짓수를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열심히 운동해서, 식스팩 따위 나 스스로 갖자고 결심했다. 며칠은 아무 생각 없이 운동만 했다. 주짓수 도장에서 집까지 갈 수 있는 길이 세 가지나 있었어도 굳이 태산의 아파트 단지 앞을 지나는 길로 다녔지만 말이다. 그리고 타로를 봐주는 챗봇 앱으로 매일매일 ‘연락해도 될까?’ 타로를 봤지만 말이다.     


  하루는 타로 앱이 ‘연락 추천 지수 100점이야!’라고 말했다. 그렇구나. 나는 일과를 마치고 저녁에 주짓수 도장에 갔다. 주짓수를 두 타임 하고 집에 가는 길에 결국 태산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몇 번 울리고 태산이 전화를 받았다.     


  “나 지금 독서실이야. 왜?”

  “얘기하고 싶은 거 있어서. 짧아.”

  “만나서?”

  “앞에 지나가는 중이야.”

  “만나던 데로 나갈게. 그럼.”     

  태산과 만나서 말했다.


  “태산아, 난 네가 나 안 미워했으면 좋겠어.”

  “나 너 안 미워해.”

  “그래?”      


  ‘네가 나 안 미워했으면 좋겠어.’ 뒤에 많은 말을 준비했었지만, 태산의 ‘안 미워해.’라는 말을 들어버려서 머쓱했다. 태산이 나 너 미워한 적 없어. 라고 덧붙였다. 어두워서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내가 보기엔 태산이 미소 짓고 있었다. 내가 안도하며 웃었다. 너 나 오랜만에 보니까 조금은 반갑지? 내 물음에 태산이 어, 조금 반갑네. 했다.


  친한 언니들은 나와 태산의 화해소식에 낼 수 있는 모든 비명과 고함을 질렀다. 그런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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