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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미솔 Jun 12. 2024

7화. 식스팩남에게 차인 사연

식스팩밖에 볼 거 없는 새끼지만,

  ‘다 왔어.’     


  태산이 유리창 밖에 서 있었다. 태산을 본 나는 나도 모르게 활짝 웃었다. 태산은 유리창을 똑똑 두드리며 나오라는 손짓을 했다.     


  “좀 앉을 수 있는 데로 가자.”

  태산이 말했다. 근처에서 벤치를 찾은 태산이 입을 열었다. 내가 생각을 많이 해봤어.     


  “아무래도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야 할 것 같아. 그래야 더 잘해줄 수 있을 것 같고. 또, 어제 네가 널 놓치면 후회할 거라 했잖아.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뭘 후회하게 될지 모르겠어.”

  “…다 말했어?”

  “응.”

  “그럼 가자.”

  내가 일어나며 말했다.     


  “미안해.”

  나는 별 대답 없이 뒤돌아섰다. 뒤돌아보며 보인 태산은 작게 손 흔들고 있었다. 나는 눈물을 꾹꾹 참으며 집까지 걸었다. 집 근처까지는 눈물을 참을 수 있었지만,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는 눈물을 잔뜩 쏟았다. 집에 와 보니 태산에게 카톡이 와 있었다.      


  ‘너무 힘들 때 와 줘서 고마운데, 아직 잊고 싶지 않아. 미안해.’      


  태산의 인스타그램을 ‘언팔로우’하고 태산의 카톡은 ‘안읽씹’했다. 날 놓치면 후회할 거라 자신 있게 말했는데, 나와 영영 헤어져도 뭘 후회할지 모르겠다니. 형교가 나를 절대 좋아하지 않았던 게 떠올랐다. 어쩌면 이 세상 모든 남자들에게 같은 이유가 있어서 날 좋아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화장기 없이 머리를 대충 묶고 아르바이트에 갔다. 어젯밤 울면서 잠든 탓에 얼굴이 퉁퉁 부어 있었다. 퇴사 날짜를 받아두었지만, 퇴사를 한 것은 아니어서 태산의 아파트 단지로 출근해야 했다. 퇴근길은 하필 태산이 사는 아파트 앞을 지나야 했다. 퇴근하며 혹시 저 공동현관문으로 태산이 걸어 나오는 거 아니야? 하면서 천천히 걸었다. 내가 다 지나갈 동안 그 아파트 공동현관문에서는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내가 뭐 하는 거람, 하며 다시 앞으로 시선을 돌렸다. 멀리서 누군가 자전거를 타고 오고 있었다. 놀랍게도 태산이었다. 야, 너. 내가 멈춰서자 태산도 내 앞에서 자전거를 멈췄다. 나는 가방을 들지 않은 손으로 태산의 팔뚝을 꽉 쥐었다. 내 표정을 보지는 못했지만, 험악했을 것이다. 태산이 움츠러들며 말했다.     


  “이렇게 만나서 정말 반갑긴 한데, 나, 나도 스케쥴이 있거든. 빠, 빨리 알바 가야 해.”

  나는 우이씨, 하며 손아귀의 힘을 풀었다. 그러고는 잘 가라. 하고 나도 다음 아르바이트를 위해 발을 옮겼다. 웃음이 나왔다. 나도 태산을 우연히 만난 것이 반가웠나 보다.     


  “야, 잠깐 만나.”

  두 번째 아르바이트를 마친 저녁 6시였다. 퇴근하자마자 태산에게 전화를 걸어 말했다.      


  “너 어딘데.”

  “나 서브웨이 앞.”

  “어? 나도 근천데.”

  신기하게도 또 태산과 근처다. 나는 자전거를 탄 태산과 금방 만났다. 마침 자리한 벤치에 나란히 앉아 대화했다. 태산이 벌벌 떨었다. 말 그대로 몸을 부들부들 떨며 말을 이었다. 나, 나 정말 잊지 못할 것 같은 사람이 있어. 그래서 너랑 못 사귀는 거야…     


  “내가 그거 뭐래? 알겠어.

  “너 인스타도 비공개하고 카톡도 차단하고 했더만.”

  “차단은 안 했어. 안읽씹한 거야.”

  “봤으면 알겠네. 보고 싶어서 미칠 것 같은 사람이 있다니까. 핑계가 아니야.”

  “내가 그게 핑계래? 그건 알겠다니까.”

  “아, 머리가 너무 복잡해.”

  “넌 나를 어떤 마음으로 만났어?”     


  “미안한 마음, 네가 한 일로부터 도망치지 않을 마음. 정말 그게 다야?”

  “근처였고 어제 하지 못한 말 있으면 들으려 했지.”

  “지금 말고! 술집에서부터 지금까지.”

  아악! 태산이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일단 내가 지금 알바하다가 잠깐 나온 거니까. 이따 10시에 다시 얘기해. 내가 진짜 힘들어하는 이유 알려줄 테니까.


  태산의 아르바이트가 끝나는 10시는 아니고, 9시쯤 다시 만난 태산이 마저 말했다.

  “나도 나 자신이 이해 안 돼. 왜 나 좋다는 또래 여자애 놔두고 20살 많은 독일 아줌마랑 이러고 있는지. 그 사람도 독일에서 공무원이고, 나도 대한민국에서 공무원 하는 게 꿈이야. 그 사람 애도 둘이나 있어. 이루어질 수 없는 거 알아! 근데 안 잊힌다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까지 말하는 태산을 왜 계속 좋아했는지, 나야말로 태산이랑 왜 그러고 있었는지 이해가 안 된다. 나는 태산의 그 말을 듣고도 “너 알바 끝날 때까지 여기서 기다릴 거야. 그때 나와.”라고 말했다. 태산의 ‘추우니까 어디 들어가서 기다려.’라는 말에 ‘신경 꺼.’라고 대답한 채였다. 그러고 태산의 일이 끝나는 10시까지 근처 공원을 걸었다.     


 9시 50분쯤 어디냐는 태산의 카톡이 왔고, 다시 태산을 만났다.    

 

  “왜 또 불렀어.”

  “태산아, 나랑 잘래? 나랑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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