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타명리 May 29. 2024

6. 토(土)의 기능이 사라진 시대

진정한 나를 찾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현대 명리학



‘토(土)’의 기능이 사라져 가는 것은 개인 간의 대인 관계만은 아닙니다. 사회 전반의 토(土)의 매개 역할도 희미해져 갑니다.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라’는 구호로 대변되는 페미니즘, ‘성 소수자가 여기에 있다.’라는 구호를 외치는 성 소수자들의 행동에도 대척되는 무리와 교섭하고 협의하는 과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들에 반발하는 무리에게서 또한 협의를 향한 의지와 행동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000을 수사하라.’, ‘000 특검’을 외치며 이슈를 생산하는 여야 정치권 역시 팬덤화 된 유권자를 향한 인정 투쟁에만 몰두합니다. 명리학에서 특정 방향으로 편향된 가치판단은 편인(偏印)에 해당하며, 이는 겁재(刦材)를 키웁니다.(인성 생 비겁) 인정 투쟁은 자신과 생각이 같은 편향적 대상만을 끌어들이므로, 서로 다른 생각을 지닌 무리들이 상호 이익을 조율하는(교섭과정) 결과로 이어지기 어렵습니다. 수년간 여야 정치권이 내어놓은 상충하는 이슈들은 양쪽 지지자를 향한 일방적 호소에 불과할 뿐, 협상을 통하여 절충안이 타결되는 결과는 볼 수 없었습니다.



개인적 영역 역시 인정욕구가 넘쳐납니다. 많은 이들은 다수의 ‘좋아요’나 ‘팔로워’를 자신이 얼마나 인정받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로 삼고 있습니다. 인정받고 있음을 의미하는 ‘좋아요’ 개수가 많을수록, 개인의 경쟁력(겁재)도 상승합니다. 이는 점점 명징한 가치관을 토대로 한 고유한 자기 의견은 사라지게 만들며, 오직 상대가 원하는 내가 진정한 나라고 착각하게 만듭니다. 현대인들이 타인과 교섭하여 결과를 도출하는 재성의 기능을 잃어가고 있는 이유입니다.


“독일어로 이기심은 자기 중독이다. 중독이라는 단어가 암시하듯이 이기심은 일종의 탐욕이다. 모든 형태의 중독이 그러하듯 이기심은 채워지지 않는다. 채워지지 않는 것은 끝없는 불만의 결과다. 탐욕은 밑 빠진 독이다. 인간은 욕망을 충족시키려 무한히 노력하다 지쳐 쓰러져도 결코 만족에 이르지 못한다. 더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면 결정적 특징이 보인다. 이기적인 사람은 항상 자신에게 몰두하지만 절대 만족하지 못하며, 충분히 받지 못할 거라고, 뭔가를 놓칠 거라고, 물건을 빼앗길 거라고 종일 걱정하고 늘 불안에 떤다.

누군가 자기보다 더 많이 가질 수 있다며 격한 질투에 사로잡힌다.”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에릭 프롬 : 이기심과 자기애 (118p~119)



과잉된 자아를 지닌 현대인의 이기심은 타인과 관계하는 능력을 파괴합니다. 타인보다 우월한 자기를 증명하기 위해 타인을 승리해야 할 대상으로 보기 때문이지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내가 누구인지 증명하는 자아'가 아닌, 타인과의 경계가 사라져 방황하는 우리에 대한 고찰일 것입니다. 경계가 사라져 반죽처럼 뒤엉킨 상태의 우리는 믿고 신뢰할 수 있는 새로운 원칙과 가치관(정관)이 필요합니다. 구성원 다수가 동의하는 보편적 가치관은 빼어난 능력을 지닌 한 명의 영웅에 의해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앞서 언급한 개인과 사회의 ‘토’의 긍정적 매개 작용부터 되찾아야 합니다. 더 이상 스스로 몸집을 키우는 타인과의 경쟁에만 몰두하는 것이 아닌, 타인과의 관계에서 치열한 교섭 과정을 통하여 나와 상대가 서로 납득할 수 있는 이득을 도출해야 합니다. 자기 중심성을 굳건히 지키며 타인과 작용하는 과정은 나의 이득이 무엇인지 분명히 아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자기 중심성을 기반으로 하여 나의 이득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따져볼 수 있어야만, 내 이득이 소중한 만큼, 타인의 이득도 같은 무게의 권리로 존중할 수 있는 원리입니다. 이와 같은 굳건한 중심성(토)은 타인이 원하는 내가 되기 위하여 나를 지나치게 꾸밀 필요도, 타인과의 경쟁이 두려워 움츠릴 필요도 없게 만들 것입니다. 토가 온전히 작동하는 모든 관계는 상호 모두 명징한 목표가 있기 때문입니다. 풍요를 넘어 과잉의 시대에 수립되는 새로운 원칙과 가치관(관성)은 이처럼 굳건한 중심성을 갖춘 다수의 구성원들 간 치열한 교섭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수립 가능합니다. 이를 재성생관성이라 합니다.


*명리학 이론 살펴보기

(편인 편 참조)


(재생관의 원리 참조)


이전 05화 5. 토(土)와 자아, 그리고 대인관계 이야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