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 나를 찾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현대 명리학 이야기
가부장제, 연공서열제가 지배했던 조부모세대의 개개인은 마치 밀가루 반죽을 정해진 모양의 빵틀로 찍어낸 빵반죽과 같았으며, 가족과 조직 공동체에서 개인의 역할은 사회 보편적 규범에 의하여 정해졌습니다. 현세대는 이러한 빵틀이 사라진 상태의 거대한 반죽 덩어리가 뒤엉켜있는 상태와 같습니다. 나와 타인과 경계가 사라진 것입니다. 타인과 나를 구분하는 경계가 사라졌으므로, 거대한 반죽처럼 뒤엉킨 개인은 각자 자신의 몸집을 부풀리려는 경쟁을 시작합니다. 빵으로 완성되기 위하여 반죽 덩어리를 개별로 구분 짓는 빵틀이 앞서 언급한 '정관'이라면, 반죽 덩어리 내에서 서로 몸집을 부풀려 상대를 집어삼키려는 경쟁은 '겁재'에 해당합니다. 명리학에서 정관은 겁재의 천적이며, 수천 년 동안 지속된 빈곤의 시대에 수립된 정관의 가치는 풍요를 넘어선 과잉의 시대가 시작된 몇십 년 만에 그 자취를 감추고 맙니다.
이러한 변화의 결과는 사회 곳곳에 나타납니다. 조부모세대가 주 시청자였던 1990년대 주말 드라마는 평범한 사람들 간의 관계성에 초점을 둔 가족드라마가 대세였습니다. 당시 사랑을 받았던 이야기들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 간의 사랑과 일상적 갈등을 다룬 가족 드라마였습니다. 간혹 재벌 혹은 유명인이 등장하긴 했지만, 이들은 어디까지나 스토리 전개상 잠시 필요했을 뿐, 극 중을 이끄는 비중 있는 역할이 아니었습니다. 반면 현세대가 주 시청자인 2000년대 이후 드라마들은 재벌, 정치인, 유명인, 비범한 능력자와 같은 특별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대세를 이룹니다. 남들과 다른 특별한 나를 열망하는 현세대의 바람이 드라마에 투영되는 현상일 것입니다. 현세대가 특정 대상에 나의 자아를 투영하는 현상은 곳곳에서 나타납니다. 이전 세대 유명인 혹은 정치인은 동경, 혹은 존경의 대상이었다면, 현세대는 관찰 예능, SNS를 통해 노출된 유명인 혹은 정치인 중 자신을 투영할 수 있는 대상을 팔로잉하거나 지지합니다. 이전 세대는 집권당이 선거의 승리를 위해 한국 경제라는 파이를 얼마나 키웠는지가 가장 중요한 가치였다면, 현세대 정치권은 나의 자아를 투영하는 유권자를 통한 팬덤 확보가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현세대는 전체를 위한 파이가 커졌는지 보다는, 우수한 대학, 고소득이 보장된 직업에 안착하여 특별한 존재가 될 수 있는 경쟁의 공정성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2020년 한국 정치권을 뒤흔들었던 키워드인 '공정'은 자원 분배의 공정이 아닌, 승자를 가리는 과정에 필요한 도구로서의 공정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MBTI 유형에, 때로는 페미니즘과 반페미니즘과 같은 '이즘'에도 나를 투영합니다. 드라마 속 캐릭터, 유명인, 정치인, MBTI 유형, 00 이즘은 본래 갖고 태어난 자아를 마침내 찾은 것이 아닌, 나의 자아를 일시적으로 대신해 줄 수단으로 작용하게 합니다. 이러한 행위는 자아를 투영할 수단을 찾았다는 안도감을 잠시 얻을 수 있으나, 수단에 지나치게 몰입하면 자아는 더욱더 부풀어 오릅니다. 마치 이스트를 첨가한 빵반죽처럼 말입니다. 특정 대상에 투영한 자아는 지나치게 부풀어 오를수록 스스로 이를 감당할 수 없어 터져 버립니다. 오랜 기간 유지했던 온라인 게임 계정의 승률이 마음에 들지 않아 홧김에 계정을 삭제해 버리는 행동이 이와 같습니다. 실제 SNS나 게임에서 동일 인물이 원래 계정과 다른 부캐, 부계정을 만드는 행위는 성에 차지 않는 나를 지워버리는 것입니다. SNS, 온라인 게임에서는 계정을 삭제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지만, 내가 살아온 실제 삶은 리셋이 불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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