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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서 Aug 02. 2024

음악/영화이야기 <옥상의 폴 매카트니>

<겟 백: 루프탑 콘서트>, <비틀즈: 하드 데이즈 나이트>

    스물둘이었나, 대학에서의 첫해를 마치고 휴학을 했을 때였다. 피터 잭슨이 연출한 비틀즈 다큐멘터리 시리즈 <겟 백> 중 ‘루프탑 콘서트’ 부분이 극장 개봉을 했다. 루프탑 콘서트는 비틀즈의 마지막 라이브 공연으로, 뉴욕의 한 건물 옥상에서 냅다 펼친 연주였다. 공연 실황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내내 경찰들이 공연 제재를 시도하며 나중에는 옥상에 올라오기까지 했다. 소음 공해입니다. 민원이 들어오잖아요. 당장 멈추세요. 관객인 나조차도 눈치가 보이는 찰나, 폴 매카트니는 아랑곳 않고 연주를 시작한다. 악기를 세차게 치고 질서를 무너뜨리며. 앰프에서 음악이 웅웅 울려 퍼졌다.

    그래, 내가 이래서 비틀즈를 좋아했지. 나는 관객이 얼마 없는 영화관에 앉아서 마음속으로 킥킥거렸다. 모두가 비범한 멘탈의 소유자인 비틀즈 멤버들(강철과 유리를 오가는 존의 멘탈은 좀 애매하지만…) 중에서도 유독 폴이 눈에 들어왔다. 아랑곳 않는, 정말로 아랑곳 않는 그 모습이, 내가 락을 좋아하기 시작한 이유가, 내 인생의 방향을 바꿀 때 등을 밀어준 이가.


    스물둘에서 시간을 뒤로 6년 돌려보자. 나는 열여섯이다. 앞서 연재한 글인 ‘내 영화 소개 <딸기와 나>’에서 이야기한 부분인데, 나는 비틀즈를 듣기 시작했고 스트로베리 필즈 포에버 덕에 비로소 엉엉 울었으며 공교육에게 확실히 등을 돌리고 내가 대체 어떤 사람인지 애타게 찾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엄청난 비틀매니아(비틀즈 팬덤)였다. 그리고 마침 <비틀즈: 하드 데이즈 나이트>가 개봉했다.

    <비틀즈: 하드 데이즈 나이트>는 ‘역사상 가장 성공한 밴드 비틀즈 이전, 아이돌 비틀즈를 보여준다’는 캐치프레이즈로 홍보되었다. 비틀즈의 초창기 모습, 어린 멤버들과 어린 팬들로 범벅인 영화이니 적절한 말이나 - 웃기게도 나는 그들의 스타성보다도 그들의 기벽과 아집과 반항성이 미치도록 좋았다. 이 영화는 픽션이면서도 실제 멤버들의 생활과 성격을 반영했는데, 다들 가지각색으로 유별났다. 내 유별난 점들을 열심히 도려내고 있었던 나에게 정말이지 그런 위로가 없었다.


    지금 나는 음악을 듣는 범위가 많이 넓어졌지만, 노래를 고르기 귀찮거나, 유독 힘든 날이거나, 아니면 그저 충만하게 좋은 음악을 듣고 싶을 때는 고민없이 비틀즈를 튼다. 비틀즈 음악은 멜로디만 놓고 보아도 내 취향이라서 이런 감정이입의 여지가 없었더라도 난 그들을 애호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비틀즈를 그저 음악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 비틀즈는 분명 나의 설익은 십대와 예술가로서의 이십대를 일부 빚었다. 어릴 때부터 나는 폴 매카트니가 악보를 볼 줄 모른다는 사실이 좋았다. 그들이 학교를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는 것도, 존이 가끔가다 폭탄 발언을 해서 욕을 들이쳐먹지만 끝내 자기 할말은 하는 성격이었던 것도, 조지의 자신 넘치는 고집과 링고의 단단한 자존감도, 그리고… 존과 폴 모두 부모 한쪽이나 양쪽이 없는 “비정상 가정”에서 자랐다는 것도. 그렇든 말든 어떻든 누가 뭐라하든 그들이 이룬 눈부신 성취와 예술이 아주 고소했다.


    사실 요즘의 나는 예전만큼 비틀즈에 빠져 있진 않다. 기민해야만 하는 학과에서 공부를 하며, 그리고 20대 한국인 여성으로 살며, 비틀즈 멤버들이 제1세계 백인 남성이었기에 가졌던 특권들이 점차 눈에 보였다. 존 레논의 아들 션 레논은 바스러진 역사관으로 큰 실망을 안겼다. 앞서 언급했듯 비틀즈 외에 좋아하는 노래들도 많아졌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나는 비틀즈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경찰관들을 뒤로하고 옥상에서 ‘겟 백’을 부르는 폴 매카트니는 영원히 내 마음에 남아 있을 것이다. 내가 망설이거나 두려울 때 그 장면을 떠올리면 될 것만 같다. 락(Rock)이 저항 정신의 상징이 된 건 그 누구도 아닌 비틀즈 덕분이라고 주장해본다.

    열여섯의 나와 스물둘의 내가 비틀즈 영화를 보며 충전한 용기는 지금도 유효하다. 나는 가끔 그곳으로 돌아간다. 사람도 없이 작은 상영관, 팝콘 대신 포스터를 꼭 쥔 나, 심장을 쾅쾅 때리는 음향, 스크린 속 이상한 비틀즈와 나도 저들처럼 자유롭게 이상해야지 하는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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