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느긋 Sep 18. 2024

바둑알 고스톱

 길었던 5일간의 추석 연휴가 끝나간다. 그동안 많이 먹고 푹 쉰 덕분에 몸무게는 2kg이 늘었다. 추석 연휴 전 우리 반 친구들에게 했던 '선생님은 조금만 먹고 운동할 거야'라는 말이 무색해진다. 그래도 행복했으니 되었다. 내일부터 일상으로 돌아가면 다시 관리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굳게 먹어본다.


 추석 당일 저녁은 엄마네에서 먹었다. 언니네도 가까이 살아 자주 보는 편이지만 다 모이니 명절 기분이 난다. 아직 엄마와 아빠는 차례를 모시기에 이것저것 음식을 많이 준비하셨다. 제사나 차례를 모실 때마다 엄마는 '이번에는 힘드니까 아무것도 안할란다'라고 말씀을 하시지만 전을 시작으로 식혜, 갈비, 각종 나물, 두부탕, 문어숙회, 송편 등 상이 푸짐하다. 낮에 시댁에서도 많이 먹어 저녁을 안 먹으려고 했지만 많은 음식들 앞에서 마음이 약해졌다. 이야기를 하면서 맛있게 먹고 상을 물리니 또 다과상이 나온다. 언니네는 집으로 돌아가고 나와 남편만 남았는데 갑자기 고스톱이 생각나서 내가 하자고 제안을 하니 엄마와 남편이 좋다고 판을 서둘러 깐다. 몇 년 만에 화투패를 잡아보는 건지 생각도 나지 않아 규칙이 가물가물했지만 재밌을 것 같았다. 현금이 없어서 바둑알 30개씩으로 시작 하였는데 돈을 주고받는 것보다 훨씬 재밌었다. 바둑알 하나당 100원씩으로 쳤다. 젊은 시절 '삼봉'을 즐겨 치시던 엄마가 능숙하게 화투패를 섞고 선을 가리기 (게임의 순서를 정하기)위해 화투를 촤르르 펼친다.

사진출처: 네이버 블로그 케어닥

 엄마가 뽑은 건 1, 남편이 뽑은 건 2, 내가 뽑은 건 5였나? 화투패에 있는 고유한 숫자도 잘 모르지만 먼저 하는 사람을 뽑을 때 숫자를 활용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낮에 할 때는 숫자가 높으면 '선'이 되고, 밤에 할 때는 숫자가 낮아야 '선'이 된다는 규칙의 용어가 생각이 나질 않았는데 마침 남편이 도와주었다.


(남편) '밤일낮장'이니까 어머님이 선이세요!  

(나) 맞네! '밤일낮장'! 엄마가 먼저 하세요!


엄마가 다시 화투를 섞고 패를 나누는 동안 남편이 바둑알 고스톱의 규칙을 차근차근 설명해 준다.

1. 첫 번째로 싸면(내가 낸 패와 바닥에 있는 패, 가운데에서 깐 패 3개가 겹치는 경우) 다른 두 명의 사람들에게 바둑알 5개씩을 받는다.

2. 바닥에 '싼' 패가 3개 깔려 있으면 그 판은 나가리(무산)되고, 다음 판에 판돈이 배가 된다.

3. 세 명 중 바둑알이 제일 먼저 떨어진 사람은 다른 두 명이 고스톱을 칠 때 안마를 해주어야 한다.

4. 맞고스톱(1대 1)을 친 후 최후의 승자를 가리고 1등에게는 나머지 두 명이 안마를 해준다.


 일단 처음에는 세 명이 고스톱을 치므로 바닥에는 6장을 깔고 각자 7장씩을 나누어 준다. 첫 판에는 규칙도 잘 모르는 내가 3점을 따서 바둑알 3개씩 총 6개를 가져왔고, 연이어서 한 게임에서는 내가 처음부터 '똥을 싸서' 각각 5개씩 총 10개를 가지고 왔다. 돈보다도 바둑알로 하니 더 심장이 더 쫄깃쫄깃하였다. 쭉 치다가 엄마가 선을 잡을 때고 있고, 남편이 선을 잡을 때도 있었다. 엄마가 앞서가는 와중에 하다 보니 이상하게 마지막에 패가 안 맞아 나가리가 되어 다음 판이 배판이 되었다. 배판이 되면 모든 게 두 배다. 엄마가 처음으로 패를 냈는데 '싸버려서' 남편과 나는 바둑알을 10개씩 엄마에게 주어야 했다. 엄마가 갑자기 20개의 바둑알을 가지고 가서 전세가 완전히 역전되었다. 엄마가 섞은 후 다시 패를 돌렸다.


(엄마) 같은 패가 4장 들면 어떻게 되는가?

(남편) 4장 들었나요? 그럼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에게 바둑알 10개씩 줘야 해요.

(나) 그런 게 있어?

(남편) 원래 같은 게 4장 들면 다른 사람들이 1000원씩 줘야 해.

(나) 아따, 엄마! 잘 좀 섞으라니까.


 순식간에 남편의 바둑알은 2개밖에 남질 않았고 결국에 제일 규칙을 잘 아는 남편이 꼴찌가 되었다. 엄마와 내가 맞고스톱을 치는 동안 남편은 이쪽저쪽 돌면서 약속대로 어깨 안마를 해주었고 진검승부만이 남았다. 둘이 하는 고스톱은 7점이 먼저 나야 하고, 바닥에 까는 패는 8장, 손에 쥐는 패는 10장이었다. 둘이 해서 게임 진행이 빨랐고 나도 한두 번 엄마를 이겼지만 결국 승리의 여신은 엄마의 손을 들어주었다.


 바둑알 고스톱을 치면서 엄청 많이 웃었다. 싸기도 하고, 나가리도 되고, 쇼당이라는 개념도 몰라 내가 독박을 쓰고, 퉁치고, 광박에 피박까지 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무엇보다 엄마와 추석을 재미있게 보낸 것 같아 좋았다. 선비스타일인 아빠는 일찌감치 서재로 들어가 우리가 웃고 떠드는 소리를 들으며 '제대로 판을 깔았다'며 흐뭇해하셨다. 바둑알 고스톱의 좋은 점은 져도 기분이 하나도 나쁘지 않고 게임 그 자체가 재밌다는 것이다. 현금을 주고받는 고스톱보다 훨씬 깔끔하고 좋았다. 오랜만에 고스톱을 쳐서 즐거웠지만 무엇보다 엄마가 정말 재밌어하고 많이 웃어서 좋았다. 내년 설에도 바둑알 고스톱을 또 치고 싶다.


바둑알 고스톱 아이디어를 낸 남편, 매우 칭찬해!



 

 

이전 06화 구독이 좋아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