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꽃 구독과 샐러드 구독을 시작했다. '구독! 좋아요!'는 유튜브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일상생활에서 이렇게 다양한 구독을 할 수 있다니 세상 참 많이 좋아졌다.
원래 나는 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시들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좋지 않았고 물도 갈아주는 게 귀찮았으며 나중에 쓰레기로 처리하는 게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가격이 비싸다는 생각이 들어 꽃을 내 돈 주고 사는 게 너무 아까웠고, 꽃선물을 받으면 다른 실용적인 것(먹을 것)이 아니라 아쉬워했다. 이랬던 내가 어느 순간 나이가 들어가면서 꽃이 좋아졌다. 그 아름다운 모양과 화려한 색감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다. 기념일이나 생일이 되면 꽃선물을 받고 싶다고 남편에게 계속 말을 했고 꽃다발을 받아 식탁 한가운데에 놓으면 집안이 환해지고 좋은 에너지가 넘치는 것 같았다. 여전히 꽃이 시든 후 처리하는 게 유쾌한 일은 아니었지만 나에게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선물을 받아 기분이 좋은 게 더 컸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꽃구독을 검색하니 다양한 곳이 나온다. 제일 눈길이 간 곳으로 선택을 하여 3개월 구독료를 지불하였다. 2주에 한 번씩 토요일마다 총 6회 배달이 된다. 내가 고른 꽃이 아니고 플로리스트가 그때그때 나오는 꽃으로 만들어서 보내주기 때문에 랜덤박스를 여는 것처럼 설레는 기분을 감출 수 없다. 정성스럽게 포장되어 온 꽃다발을 우리 집 화병에 꽂아 놓으면 내 눈과 코가 호사를 누리기 시작한다. 우리 집 남자들은 별로 관심도 없어하지만 내가 좋으면 되었다. 예전 같으면 '꽃 살 돈으로 고기를 사 먹지'라고 생각했을 텐데 이렇게 바뀐 나를 보는 것도 참으로 재미있다. 이만큼 내 마음에 여유가 생긴 것일까? 2-30대의 젊음과 풋풋함이 부럽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인생의 황금기는 4-50대 인 것 같다.
꽃 구독을 하면 매번 선물을 받는 느낌이다.
구독이라면 신문 구독만 들어봤던 내가 혹시나 해서 샐러드 구독을 검색해 보니 역시나 다양한 곳이 나온다. 내 평상시 성격대로 별로 깊게 생각하지 않고 한 곳으로 재빨리 결정한다. 내가 사는 지역은 새벽배송까지 되지 않았지만 당일 배송이 되었고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로 요일을 지정하였다. 샐러드 종류도 이렇게 다양하다니 새삼 놀랐다. 재육포케샐러드, 카프레제샐러드, 영양부추훈제오리, 카펠리리샐러드 등 이름도 생소한 것들이었다. 어쩜 샐러드를 정기적으로 배달해 주는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창의적인 생각을 가진 많은 사람들 덕분에 혜택을 받을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도 들었다. 오래된 서비스인 것 같은데 이제 알아서 아쉽지만, 이제라도 알아서 감사하다.
수요일과 금요일에 샐러드를 두 개씩 총 4개를 받으니 식사대용으로 먹기도 좋고 무엇보다 맛있었다. 물론 내가 여러 재료를 사서 만들어 먹을 수도 있으나 이렇게 만들어진 샐러드를 먹으니 나에게 대접하는 느낌이었다. 샐러드를 만들려면 장을 보고 재료를 손질하는 등 나의 노동력이 많이 투입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내가 만들면 이처럼 맛있지도 다양하지도 않다. 그냥 구독을 하니 아주 훌륭한 샐러드가 내 식탁에 딱 놓여있었다. 이 또한 우리 집 남자들은 관심이 없다. 단순히 식탁에 놓여있으니 맛있게 먹을 뿐이다. 내가 좋으면 되었다. 샐러드 구독은 앞으로 꾸준히 할 것 같다.
사진출처: 샐러드북
지난 여름방학 때 좋은 기회로 다도체험을 할 수 있었다. 다도는 잘 모르지만 정갈한 찻잔을 보니 마음이 차분해졌다. 무엇보다 다식에 정말 감동을 받았다. 제주산 레몬이 올려져 있는 수제 양갱, 대추가 있는 다식, 호두 정과 등이 준비되어 있었고 차와 함께 맛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다식을 먹을 때 사용하는 젓가락인 귀여운 다저까지 있어서 나를 무척 행복하게 만들었다. 차를 따르는 순간도 좋았고 차를 마실 때 느낄 수 있는 향과 맛도 은은하게 퍼져 힐링이 되는 시간이었다. 그때 차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나의 잔을 먼저 채우세요.
내가 나를 먼저 돌보고 아껴야 다른 사람도 돌보고 아낄 수 있다. 나에게 여유 있는 마음이 있어야 다른 사람들을 보는 시선에도 여유가 생기고 미워하는 마음이 없어진다. 남이 나에게 부당하게 대우했을 때 당당하게 말을 할 수 있는 자신감도 생긴다. 비행기에서도 위급상황일 때 보호자가 먼저 산소마스크를 착용한 후 아이의 산소마스크를 끼는 것을 도우라는 매뉴얼이 있듯이 내가 나를 먼저 돌보아야 한다. 한창 육아를 할 때는 아이가 먼저였고, 나보다 남편이 먼저인 경우도 있었지만 이게 지나치면 결국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 기분이 좋으면 그 긍정의 에너지가 가족들에게 전달됨을 매번 깨닫고 있다. 지금은 아이가 많이 자라서 여유가 생긴 것도 있겠지만 나의 마음가짐이 먼저 달라졌다. 40대 중반을 향해 가면서 내가 나를 돌보고 아껴줘야 나의 꿈인 명랑한 할머니가 될 수 있을 거라는 걸 지금은 누구보다 더 잘 안다. 명품가방이나 옷은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지만 나 자신을 위해 꽃과 샐러드를 구독하며 소소하지만 나를 사랑하는 일을 찾아 열심히 실천하는 내가 너무나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