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느긋 Oct 04. 2024

이웃

 이웃의 사전적인 의미를 찾아보니 '나란히 또는 가까이 있어서 경계가 서로 붙어 있음', '가까이 사는 집, 또는 그런 사람'으로 나온다. 예전에는 '이웃사촌'이라는 말도 자주 썼는데 요즘에는 보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고, 그것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대의 흐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며칠 전, 퇴근 후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무에타이에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내가 사는 10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멈춰 별생각 없이 타려고 한 발을 내딛는 순간 앞집에 사시는 중년의 남성분이 내리셨다. 엘리베이터 안은 택배기사님과 상자들로 가득 차 있었고 앞집 남성분은 본인의 택배물과 함께 기사님에게 '수고하세요'라고 인사를 하시고 나에게도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네셨다. 엘리베이터는 문이 닫히고 계속 올라갔다. 다시 내려오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앞집에서 택배물을 뜯는 소리가 났다. 택배물을 받자마자 현관에서 바로 뜯으시다니 앞집에 사시는 분이 굉장히 깔끔한 것 같았다.


 앞집에 사시는 분들은 이사 온 지 1년 정도 되신 중년의 부부이다. 아파트가 오래된 지라 이사 오기 전 리모델링을 할 때 아내분과는 안면을 트고 인사를 했었다. 한창 공사 중 집 구경을 하기 위해 내가 만든 라탄바구니에 한라봉을 두어 개 넣어서 가져다 드린 기억이 난다. 그때 아주머니는 어디에서 이사를 오셨고, 우리 동네가 참 좋다는 등의 말씀을 하셨는데 인상이 참 푸근했다. 주중에는 아들 손주를 봐주어야 해서 주말만 집에 온다고 하셨다. 그로부터 한참 후 출근길에 아저씨도 만날 수 있었는데 다들 인상이 좋으셔서 안심이 되었다.


 이 분들이 앞집으로 이사 오시기 전에는 국가유공자이신(현관에 팻말이 붙어있었다) 90대 할아버지 한분이 딸과 함께 살고 계셨다. 생활 활동 시간이 맞지 않아 거의 마주치지 않았지만 한 번씩 뵐 때마다 존댓말로 인사를 정답게 잘 받아주셔서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할아버지가 노환으로 돌아가셨을 때 엘리베이터에서 따님을 뵈었는데 '어젯밤 저희 아버지 돌아가셨어요'라는 말에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하였다. 왕래는 별로 없었지만 혹시라도 따님이 안 계신 동안에 할아버지께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따님의 전화번호 정도는 알아놓고 있었다. 언젠가 한 번은 따님에게 온 부재중 통화가 찍혀있었다. 바로 전화를 드리니 잘못 눌렀다면서 다시 전화를 해주어서 너무나 감사하다고 한 적도 있다. 이웃 간의 정도 살짝 느낄 수 있었는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따님도 이사를 가셔서 한동안 조금 서운한 기분이 들었다.


 새로 이사 오신 분들도 좋았지만 강아지를 키우시는지 내가 현관을 나설 때마다 앞집에서 강아지가 크게 짖는 게 처음에는 좀 스트레스였다. 엘리베이터 기다리는 시간은 잠깐이었지만 안에 주인이 없으면 현관까지 나와서 문 너머의 나에게 앙칼지게 짓어댔다. 몸집은 그렇게 크지 않는 강아지였는데 목청이 얼마나 좋던지, 그전의 앞집 할아버지의 고요함과 차이가 컸다. 하지만 이것도 익숙해졌는지 강아지가 여전히 짖기는 하지만 그렇게 스트레스로 다가오지 않는다. 무엇보다 택배기사님에게 친절히 인사를 하시는 새 이웃의 정다움에 관심이 갔다.


 윗집에 사시는 분들은 내가 어렸을 때부터 봐왔다. 평소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도 점잖으신 분들이라 인사 정도만 나누었는데 윗집에서 누수가 되어 우리 집과 연락을 취하면서 더 잘 알게 되었다. 주방에서 한번, 작은 방에서 누수가 되었는데 보험으로 깔끔하게 잘 처리를 해주셨다. 그 뒤로 직접 밭에서 기르신 호박이나 상추등을 우리 집 문 앞에 걸어두기도 하시고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부담 없는 스몰토크도 더 늘었다. 장학사와 교장선생님 출신이신 중년의 부부가 생활 소음이나 층간 소음도 하나 없이 지내시고 계셔서 감사히 잘 지내고 있다.


 아랫집은 초등학교 6학년 딸아이를 한 명 키우는 세 가족이 산다. 세 식구라는 공통점에 아랫집 엄마는 나와 동갑이고 아빠도 편백나무 사업을 하시는 선한 인상의 가족들이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윗집 아랫집을 다니며 같이 놀기도 했었는데 좀 크니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게 다이다. 우리 집 아이가 어렸을 때 한 번씩 뛰면 아랫집 아이가 이렇게 생각을 했다고 한다. ' OO 오빠가 많이 신났나 봐!' 너무 감동이었다.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발생할 수밖에 없는 층간소음을 많이 이해해 주고 맛있는 별미를 만들 때 우리 집과 나누어 먹으며 여행을 갔다 왔을 때는 특산품을 사다 주는 마음 착한 아랫집 식구들이다. 유치원생일 때부터 봐왔던 아랫집 딸이 예쁘게 크고 있는 모습과 아랫집에서 이따금 들려오는 바이올린 소리가 미소를 짓게 한다. 점점 실력이 늘어가고 있음에 감탄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좋은 이웃들을 잘 만나는 것도 오늘 같은 세상에 아주 큰 복이다. 이웃에 누가 사는지 잘 모르는 것을 넘어서 층간소음 때문에 크고 작은 문제가 많이 발생하고, 서로에게 복수를 하기도 한다. 요즘 최첨단의 대단지 아파트를 보면서 눈이 휘둥그레지지만 별로 이사 가고 싶지는 않다. 새 아파트 살 돈도 없지만 나의 좋은 이웃이 있는 아파트에 오래도록 잘 살고 싶다. 아파트가 너무 대단지면 여러 가지 커뮤니티 시설들이 좋겠지만 사람과 차도 많아서 조용한 걸 좋아하는 나 같은 성격의 사람과는 맞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 어떤 이웃을 만날지 솔직히 무섭다.


 공동주택에 사는 사람으로서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도 아름답지만 우리 집부터 층간 소음을 최소화하고 민폐 되는 행동을 하지 않도록 유념해야겠다.

사진출처: 네이버 블로그, 살림또또
이전 07화 바둑알 고스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