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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긋 Oct 06. 2024

오늘은 좀 미안하다. 나의 금손아!

 지난 금요일 '나 혼자 산다'프로그램에 김대호 아나운서가 꽃게요리를 아주 맛있게 먹는 장면이 나왔다. 그 모습을 보니 군침이 돌았고 무엇보다 제철인 꽃게를 한창 시험공부에 빠져있는 아들에게 먹이고 싶었다. 토요일은 바빠 장을 못 보고 일요일 아침 일찍 남편과 함께 근처에 있는 상설시장을 갔다. 문을 다 닫아 좀 당황을 했지만 바로 노선을 틀어 창고형 대형마트로 향했다. 아침도 거르고 10시에 문을 여는 마트로 오픈런하였다. 우리 집과는 거리가 있어 좀처럼 가지 않는 곳인데 막상 가니 너무 재밌어서 30분 동안 신나게 폭풍 쇼핑을 하였다. 목적은 꽃게였으나 맥주, 샤브용 고기, 1+1 핫도그 등 이것저것 쇼핑 카트에 물건을 담다 보니 18만 원을 쓰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톱밥에 들어있는 꽃게 한 상자를 야무지게 집으로 가지고 와서 바로 손질을 하였다. 집으로 오는 동안 인터넷에서 '꽃게 손질하는 법', '꽃게 맛있게 찌는 법' 등을 검색하여 그대로 따라 하였다. 상자를 열어 꽃게를 꺼내려는데 살아있는 꽃게들이 엄청 힘이 좋아 나 혼자서는 힘들었다. 남편의 도움으로 총 11마리의 꽃게를 꺼낼 수 있었다. 바로 수돗물에 담가 기절을 시키고 손질을 하려고 했으나 좀처럼 꽃게들이 기절을 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힘이 솟고 화가 나는지 그 무시무시한 집게발을 이용해 나의 손을 언제든 물어버릴 기세로 움직였다. 성격이 급한 나는 기절하는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꽃게들을 집게로 집어 손질을 하기 시작했다. 맨손으로 배딱지 부분을 잡고 솔로 구석구석 닦은 후, 배딱지를 열고 쭉 짜서 분비물을 빼주었다. 계속 버둥거리는 꽃게 11마리를 그렇게 손질하고 찜기에 3마리씩 찌기 시작했다. 인터넷에서 본 대로 맥주를 붓고 20분 동안 찐 후 5분간 뜸을 들였다. 가족들을 위해 쟁반에 맛있게 쪄진 꽃게들을 펼쳐놓고 손질을 하였다. 장갑을 끼면 구멍이 날 것 같아 그냥 맨손으로 가족들이 먹기 좋게 작업을 하였다. 맨손으로 해서 매우 뜨거웠고 꽃게의 날카로운 부분이 나의 손을 찔렀지만 꾹 참고 먹기 좋게 살과 내장을 발라주었다. 잘 먹는 아이와 남편의 모습을 보니 뜨거운 느낌도 금방 사라지는 듯했다. 


 그렇게 한차례 가족들을 먹이고 또 꽃게를 쪄서 이번에는 같은 아파트 라인에 사시는 부모님께 가져다 드렸다. 막 쪄진 것을 가져다 드리니 아빠와 엄마께서 엄청 좋아하셨다. 확실히 제철이라 꽃게에 살이 꽉 차 있어 매우 맛있었다. 이번에도 장갑을 끼지 않고 맨손으로 꽃게 손질을 해드리니 아빠와 엄마가 맛있게 잡수셨다. 그 모습을 보니 마음이 좋았다.

사진출처 : 네이버 블로그 balko 


 집으로 와서 뒤처리와 설거지를 맨손으로 하고 한숨 돌리니 손끝이 조금 아리다. 꽃게를 손질할 때 바둥거리는 꽃게를 맨손으로 잡고 뜨거운 꽃게의 뾰족한 부분에 찔려가면서 먹기 좋은 부분만 발라내는 과정에서 내 손이 너무 혹사당했음을 느꼈다. 가족들이 맛있고 편안하게 먹고 나도 맛있게 먹어 좋았는데 나의 손이 너무나 고생한 느낌이 들어 조금 미안했다. 


 한바탕 꽃게를 먹고 나서 나의 취미 중 하나인 라탄공예를 시작하였다. 주말이지만 아이의 시험기간 때문에 놀러 가는 것은 다음으로 미뤄서 시간이 많았다. 얼마 전 '다이소'에 가서 라탄공예를 하기에 아주 좋은 아이템을 발견하였다. 뜨개용으로 나온 가방바닥인데 라탄바구니를 만들 때 사용해도 좋을 것 같아 3개를 구입하였다. 가방바닥에 구멍이 뚫려있어 라탄심을 넣고 엮으면 훌륭한 라탄바구니가 손쉽게 만들어진다. 거의 1년 만에 라탄 공예를 하니 재미있었지만 오랜만에 하니 손끝이 아려왔다. 계속 물을 뿌려주어 라탄심이 마르지 않도록 하면서 모양이 잘 나오도록 힘을 주어하다 보니 엄지와 검지가 얼얼하였다. 그래도 완성된 작품을 보니 기분이 좋았지만 이번에도 나의 손들이 고생을 하였다. 

뜨개용 가방바닥을 활용한 라탄 바구니


 정리를 한 후 조금 쉬었다가 예전에 재단을 해두었던 파우치를 재봉틀로 만들기 시작하였다. 기초 작업을 다 해 둔 상태라 재봉틀로 드르륵 박기만 하면 되었다. 유튜브에서 김창옥 강사님의 강연을 들으며 재봉을 하는 것도 나의 큰 힐링 시간이다. 같은 모양의 파우치를 하도 많이 만들어서 순서도 다 외웠고 속도도 매우 빨라졌다. 아직은 유튜브를 보면서 독학을 하는 단계라 작품의 완성도는 매우 떨어지지만 만들어 낼 때마다 뿌듯하고 대견하다. 내 손은 뭔가를 만들 때 금방 만들어 낸다. 이 때문에 손끝이 야무지다는 소리와 금손이라는 소리를 주변에서 많이 듣는다. 


내가 만든 파우치


 신체 중에서 소중하지 않은 곳이 한 군데도 없고 다들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지만 특히 나의 손은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주인 때문에 평소에도 일을 많이 한다. 다른 사람처럼 네일아트를 해서 이쁘게 꾸며주지도 못하는데 쉬지 않고 일만 열심히 하고 있다. 가을이라 건조하지만 핸드크림도 제대로 발라주지 않은 주인 때문에 점점 손이 못생겨지고 있어 미안한 마음이 크다. 최근에는 우리 반의 상자 텃밭을 가꿀 때도 나의 손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 


 나의 소중한 황금손 덕분에 지금 이 순간 글도 쓰고,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앞으로도 손에 물 묻힐 날이 많고 여러 가지 공예를 하면서 거친 것을 많이 다루겠지만 나는 나의 못생긴 손이 너무나 자랑스럽고 소중하다. 가족과 나 자신을 위해 여러 일들을 해내는 내 손들에게 오늘은 더 많이 혹사시켜서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자기 전에 핸드크림 듬뿍 발라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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