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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정영희의 판도라]단아의 꿈

15개월쩌리 아기지만 제겐 꿈이 생겼어요

  안녕하세요, 저는 단아예요. 저는 아직 말을 못하는 15개월짜리 아기입니다. 아직 엄마, 아빠라는 말밖에 할 줄 몰라요. 그러나 사람들이 하는 말을 다 알아 들어요.

  

  저는 지난달에 남해로 엄마, 아빠와 함께 한 달 살기를 하고 왔어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마당 있는 집에서 한 달을 살았어요. 바다가 보이는 집이었지요.

  

  아침에 일어나면 눈부신 햇살이 바다를 비추었어요.

  - 바다야, 잘 잤니?

  - 안녕 해야, 잘 잤니? 좋은 아침이야. 오늘도 멋진 하루가 되길 바래.

  바다와 해는 서로 아침인사를 했어요.  


  해는 동쪽에서 얼굴을 내밀어, 종일 세상을 환하게 비추며 하늘을 항해해요. 해는 정말 착하답니다. 평생을 세상의 모든 생물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자신의 따스함을 나누어 주고도 언제나 방긋방긋 웃어요.  


  가끔 구름도 만나고, 철새도 만나고, 나비도 만나고, 비행기도 만납니다. 그럴 때마다 다정하고 친절한 해는 언제나 따스한 온기를 나누어 주어요. 나도 그 따스한 온기를 느끼며, 베란다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몇 시간을 놀았지요.  


  우리 엄마 아빠도 해처럼 다정하고 친절해요. 특히 저에겐 아낌없는 사랑을 주신답니다. 저는 처음 바다를 봤을 때 깜짝 놀랐어요. 이렇게 넓고 많은 물이 있다니. 저는 욕실의 물과 미니 풀장의 물밖에 본 적이 없었거든요.


  저 멀리 보이는 크고 작은 섬과 아득한 수평선과 반짝이는 물비늘과 바다의 냄새는 제 머리 속에 영원히 기억될 거예요.   


  우주관도 가고, 식물원도 가고, 동물원도 가고, 수족관도 갔어요. 커다란 새, 슈빌과 하마는 처음 봤어요. 슈빌은 점잖은 영국 신사 같았어요. 다른 물고기들은 서울의 수족관에서도 봤지만, 하마는 본 적이 없었어요. 하마는 우리 아빠처럼 엄청 컸습니다. 하마는 저를 보더니 싱그시 웃어주었어요.

  - 안녕, 하마야!

  - 안녕, 단아야!  

브런치 글 이미지 1

  우리 아빠는 커다란 북극곰 같이 생겼고, 우리 엄마는 백조처럼 우아합니다. 북극곰과 백조가 어떻게 만났는지 아직 잘 모릅니다. 말을 하게 되면 물어보고 알려 줄께요,   


  세상은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하나의 그물망 같으니, 만날 인연이면 어떤 방식으로든 만났겠지요. 특히 두 분은 나를 만나기 위해 서로 엄청 사랑했대요. 진심으로 사랑해야지만 저를 만날 수 있는 마법에 걸려 있었답니다. 저를 만나고도 그 마법은 죽을 때가지 풀리지 않는대요.


  우리 엄마, 아빠는 제게 세상의 모든 것들을 보여주고 싶어 해요. 저는 태어난 지 15개월밖에 되지 않았지만, 많은 경험을 해 봤어요.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텃밭에서 상추도 먹어 봤고, 외가의 동네사람들과 바비큐 파티도 해 봤지요. 양떼 농장에서 양에게 당근도 줘 봤고, 강원도 펜션에서 그림 같은 산들에 둘러싸여 있는 고요한 호수도 보았답니다.


  제 마음이 가장 가는 동물은 길냥이예요. 길냥이들은 이 추운 겨울을 어떻게 지낼까요. 길냥이들은 집도 없고, 먹을 것도 없을텐데, 어디서 살까요.


  집에 와서도 내내 길냥이의 슬픈 눈이 생각났어요. 엄마가 고양이 인형을 사줘서 꼬옥 껴안고 잔답니다. 강원도의 그 길냥이를 생각하며. 저는 기도를 했어요.

  - 하느님, 강원도의 길냥이가 이 겨울 따뜻하게 잘 지낼 수 있도록 돌봐 주세요.


  가끔 텔레비전에서 아프리카 어린이들이 나오고는 해요. 저보다 한두 살 정도 많을 것 같은 어린이들이 먹을 음식과 맑은 물이 없어, 쓰레기더미를 뒤지고 있어요. 그런 장면은 제 눈길을 오래도록 붙잡아요.  


  세상에는 먹을 게 넘쳐나는데 왜 저 어린이들은 굶는 걸까요. 저는 아직 꿈이 없어요. 그러나 누군가 제게 꿈을 묻는다면, 아프고, 가난하고, 불행한 사람들을 돕는 사람이 되겠다고 대답할 거예요.


  세상 사람들은 인류가 하나의 나무인 걸 왜 모를까요, 이쪽 나뭇가지가 썩어 들어가면, 나무 전체가 죽는다는 걸 왜 모를까요. 저는 아직 말도 잘 못하는 15개월짜리 아기지만, 제겐 꿈이 생겼어요.


  공부도 많이 하고, 경험도 많이 해서 남을 도와주는 훌륭한 사람이 될 겁니다. 남을 돕는다는 건 결국 나를 살리는 것이니까요.


  저는 이제 점심을 먹을 시간이예요. 모두모두 좋은 하루 보내세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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