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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하파 Oct 18. 2024

단편소설: 놀이터는 출입금지

단편소설

놀이터는 출입금지


오늘도 여전히 단지 놀이터엔  접근 금지 테이프가 둘러쳐 있다. 벌써 거의 한 달이 다 되었다. 도대체 언제 다시 놀 수 있는 거지.  준우는 등교하다 말고  물끄러미 공사가 진행 중인 놀이터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봐도 무슨 공사를 하는 것 같진 않은데  왜 출입을 막아 놓았을까.   그때 누군가 뒤에서 툭 가방을 치며 달려간다.   

“야 늦었어. 빨리 뛰어. 그거 한 달도 더 걸린대.  여름 방학까지도  안 열걸.  오늘 방과 후 수업 있는 거 알지  빠질 생각 마’

어느새  새롬이가  저 앞으로 달려가며 소리치고 있었다.  어제도  1교시 시작 직전에 간신히 교실에 들어갔다.  오늘은 늦으면 안 된다.  요즘 부쩍 선생님한테 이래저래 지적받는 일이 많아진다.  잘못하면 엄마를 호출할지도 모른다.  그것만은 막아야 한다. 준우는 얼마 지나지 않은 젖 먹던 힘까지 다해 학교로 뛰었다.

4학년이 되면서  준우는 다니던 학원 몇 개를 그만두었다.  처음엔 태권도,  그리고 피아노,  마지막에 영어 학원을  한 달 차이 두면서 잇달아 그만두었다.  엄마는 학원이 좀 별로라고 다른 학원을 알아보는 중이라고 했지만 준우도 눈치가 없진 않다.  집에 돈이 없는 것이다.   미술 학원만은 가장 좋아하는 것이라 엄마에게 계속 다니고 싶다고 말해서 겨우 일주일에 하루 나가고 있다.  학교 방과후 수업은 대부분  추첨으로 마감이 되어 들을 만한 수업은 당첨되기가 하늘에 별따기 같았다. 일주일에 겨우 한 타임 방송댄스가  당첨되었지만 여자 친구들만 가득한 클래스에서 혼자 재주도 없는 춤을 추는 것이 정말 싫었는데 그나마 새롬이가 있어 버티고 있다.  아까 새롬이가 방과 후 수업에 빠지지 말라고 한 것도 지난주에 너무 가기 싫어 배가 아프다는 핑계로 양호실에 누워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필 그 미술학원도 방과후 수업도 하루에 몰려있다.   집에 가도 엄마는  직장에 나가진 않지만 이런저런 일거리들을 받아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어서 함께 놀아주지 않았다.  어쨌든  이런 사정으로  2, 3 시 쯤 학교가 끝나면 시간이  많이 남았다.  그래도  아파트 단지 놀이터가 있을 땐 학원이 비는 시간에 놀러 오는  아이들이 있어서  멤버가 자꾸 바뀌긴 해도 자리만 지키고 있으면 심심치 않게 아는 친구들과  보낼 수 있었다.   그러나  몇 주 전부터 놀이터에 시설 교체를 이유로  빨간 테이프가 둘러쳐지고  출입이 금지된 후로  준우는 졸지에  함께 놀 친구들을 잃어버렸다.  그나마 학원을 덜 다니는 새롬이  자주 놀이터에 출몰하는 친구라 이런 소식을 전해주는 것이다.

지난밤에도 엄마와 아빠는 크게 다투었다.  아빠는  또 이사 문제를 들고 엄마와 한바탕 했다.  준우는 방문을 닫고 자는 척했지만  요즘 들어 하루가 멀다 하고 엄마 아빠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이 영 신경이 쓰인다.

“이제 우리 더 이상은 못 버텨. 지금이라도 집 팔아  빚 갚고 이사 가자. 그리고 다음 번에 기회를 보자.   지금 이자랑 대출 원금만  한 달에 삼백이 넘어.  내 월급 뻔하잖아.  더 이상 대출받기도  힘들고  그나마 아직은  샀을 때 가격은 지키고 있지만  더 떨어지면  대책이 없다고 “

 ‘ 다음 기회? 다음 기회가 어딨어   그래도  좀 기다려 봐야지.   지하철도 아직 완전히 물 건너간 건 아니잖아 “

“ 아니. 그거 물 건너 간지 오래야.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고.  이 정도  손해 봤을 때 손 떼는 게 맞아”

“ 몰라  몰라. 그러게 왜 아파트 대출금 갚기도 힘든데  거기서 코인까지 손을 대냐고 그것도 대출까지 받아서  “

“ 내가 나 혼자 좋자고 그래.    나 같은  흙수저에 학벌도 볼 것 없는 놈이  그럼 무슨 수로 월급만으로 집을 사냐.  

그리고  당신도  이 집 살 때  이런저런 소문들 주워 들어와선 분명히 후회 안 할 거라고 부추기지 않았나.   왠 나 혼자 결정한 일처럼 이야기하는데.  ”

“ 준우는, 준우는 어떡해. 애들이 전학 가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인 줄 알아.   지금 다니던 학원들도  지 좋아하는 미술학원 빼고는 다 정리하는 바람에  얼마나 심심해하는 줄 알아. 애들이 학원 안 가면 놀 친구가 없어진다고.   근데 전학까지 가면 거기서 새로운 애들하고 잘 적응할 것 같아?  가뜩이나  혼자라서  친구 바라기만 하던 앤 데.   나도 다시 일 알아보고 있어. 좀 만 기다려보자.  “

무슨 이야기인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까닥하면 이사를 가고 다른 학교로 전학 갈 수도 있겠구나 하는 것쯤은 눈치챌 수 있었다.  준우의 기억 상한선에는 오로지 이 동네 이 아파트 만이 있다. 5살 때 이 아파트에 이사 온 준우는 그전에 살던 다세대 빌라를 또렷이 기억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이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간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준우는 알지 못했다. 막연히 두렵기는 했다. 친구들을  못 만나는 것도  새로운 학교에 가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어야 하는 것도  그리 달갑게 느껴지지만은 않았다.

급히 달려와 교실 책상에 앉아마자  담임 선생님이  앞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지각은 면했다고 한숨을 쉬려는 찰나 엉덩이에서  이상한 감촉이 전달되어 온다.  방석에서 차갑고 축축한 무엇이 바지와 팬티를 관통해 스며들고 있었다.  준우는 순간 당황해 벌떡 일어섰다.  분명 뒷자리의 승태 녀석이 방석에 물을 뿌려놓았을 것이다.  선생님은 무슨 일이냐고 묻는데  뒤에서 녀석이 ‘말하지 마’ 하고 작은 소리로 힘주어 말한다.   준우는  다시 조용히 앉았다.  마음 같아선 선생님한테 이르고 혼내주고 싶었지만  나중에 또 더 괴롭힐 게 분명했다.  같은 유치원을  다녔던 승태랑은  유치원 때는 꽤나 친하게 지냈었다.  하지만 4학년 때 같은 반이 된 승태는 전혀 다른 친구가 되어 있었다. 일단  그동안 무얼 먹었는지 키가 준우 머리통 하나만큼은  더 커져 있었고 덩치도 5, 6학년 형들하고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만큼 단단해져 있었다.   중학교 다니는 누나와  6학년 형이 있어서였는지 하는 말들도 어쩐지 다른 친구들과 달리 좀 거친 편이고  욕도 서슴지 않고 내뱉을 때가 많았다.   준우반 남자아이들은  두 가지 부류로 나뉘었다.  승태와 친하게 지내던가 아니면 그의 표적이 되던가. 물론 준우는 후자가 되었다.   4학년 때 같은 반이 되면서 준우는 승태가 반가웠다.  유치원 때 같이 놀던 기억도 남아있고 해서  자꾸 주변을 맴돌며 친하게 지내려 했다.  처음엔 승태도 준우와  잘 놀아주는가 했다.  마침  준우가 다니던 영어학원 건물에 같은 시간에  다른 학원을 승태가 다니고 있어서   학원 가는 날이면 학교가 끝난 후  자전거를  타고 함께 가기도 했다.  승태는  능숙하게  기어를 조절하며 학원으로 가는 구름다리고개를 넘었지만 준우는  자전거가 서툴기도 했지만 기어가 고장 났는지 자꾸 말썽을 부려 중간에  멈춰 자전거를 끌고 가는 일이 많았다.    처음에 몇 번 기다려주는가 하더니  점차 뒤처지는 준우에게 짜증을 내며 그것도 못 올라오냐면서 핀잔을 줄 때도 있고  어쩔 땐 그냥 무시하고 먼저 가버리기도 했다.  그나마  학원을 그만두는 바람에  2주 정도 그러다가 말았지만.   

어느 날부턴지  승태 주변에는  몇몇 아이들이 달라붙기 시작했다.  그리고 학교에서도 승태는 그 친구들하고만 주로 놀았다. 준우는  그 무리에 끼고 싶었지만 학교가 끝나면 그들은 승태를 필두로 자전거를 타고 학원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가 끝난 후  승태의 무리들이  학원 가기 전 떡볶이 집에 들러 떡볶이를 먹으러 갈 건데 같이 갈 거냐고 물어왔다.  웬일로 나를 끼워주나 했기에  준우는 거절하기 싫었다. 그들과 어울리고 싶었다.   다들 각자 자기 동 밑에  묶여 있는 자전거를 가지고 놀이터 앞에 모이기로 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1층 자전거 보관소에 묶어 두었던  준우의 자전거가 없다.  생각해 보니 엄마가  당근에 내놓는다고 했었는데. 결국 준우는  그냥 뛰어서 따라가겠다고 했다.  아파트에서  6-700미터즘 떨어진  학원가까지  자전거를 타고 멀어져 가는 아이들을 노칠새라 얼굴이 시뻘게지도록 달려 도착한 떡볶이 집에는 아이들이 저마다 메뉴를 시켜놓고 있었다.  그런데 승태가 막 웃으면서  말했다.

“너 어떻게 왔냐?  자전거 없다고 해서 안 오는 줄 알았는데.  얘네들 거는 내가 사준 건데. 너  돈 있으면 네돈 네산 해라 “

준우도 처음부터 사달라고 할  생각은 없었는데 막상 그런 식으로 말하니  어쩐지 기분이 안 좋았다,  결국  준우는 먼저  떡볶이와 순대를 해치우고 학원으로 떠난 아이들을  보내고 식당 한편 테이블구석에 앉아 혼자서 컵에 담긴 떡볶이를 꾸역꾸역 밀어 넣고서  터벅터벅 혼자 아파트로 걸어 돌아왔다.  아마 그날부터였던 것 같다.   승태의 무리들이 자꾸 준우를 놀리고 짓궂은 행동을 하기 시작한 게.  한 동안 그들은  함께 놀아줄 것처럼 하다가  은근히 준우를 따돌리곤 했다.   늘 혼자 노는 게 싫었던 준우는 그들의 떡밥에 걸려 함께 놀다가 마지막에는 내팽개쳐지기를 몇 번 반복하고서야  자신의 처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저 녀석들을 생각하면 이사를 가는 게 하나도 두렵지 않긴 했다.

 하지만  준우와  놀아주는 친구들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그중 대표적인 친구가 새롬이다.  새롬이는 여자 아이이지만 이상하게  여자 아이들하고는 친하게 지내는 것 같지 않았다.   그렇다고 남자아이들하고 잘 지낸다기보다 늘 싸움을 건다고 해야 할까. 특히 승태 무리들이 교실에서 시끄럽게 떠들거나 조무래기 같은 아이들을 짓궂게 놀릴 때면 정의의 사도라도 된 듯이 참견을 해댔다.   준우도 그 덕에 위기를 모면한 순간이 몇 번 있었기에  새롬이가 싫지 않았다.  오늘도 1교시가 끝나고 준우의 엉덩이가 젖은 걸 보고  새롬이는 위로인지   핀잔인지  모를 말을 했다.

 “ 야 너 이거 뭐야  승태가 또 그랬지.  너 바보냐 맨날 왜 가만있냐.  아이 저 돼지 같은 게.. 내가 쟤네 엄마한테 이를까. 우리 엄마랑 쟤네 엄마랑 친해 “  

“ 괜찮아 어차피 이따 방과 후 가려면 체육복 갈아입어야 하니까   나 체육복 가져와서 갈아입으면 돼”.

준우의 무덤덤한 반응에  새롬은 얼굴을 찡그리면서   다시 한번 방과 후 댄스에 빠지지 말라고 당부하고는  자리로 돌아갔다.   그렇지.  오늘은  방송댄스가 있는 날이다.   지난번에 걸그룹 누나들 뭐라 했지  뉴진스였나  그 춤 연습을 하나도 안 해왔는데 또 여자애들 틈새에서 혼자 엉뚱한 동작을 하고 있을 생각을 하니 준우는  또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그래도 혼자 있는 것보단 낫다.   게다가 그 시간이 지나면  내가 좋아하는 미술학원으로 간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미술학원 선생님도  보고 싶다.   준우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천천히  축축한 엉덩이를 말려가며  5교시가 끝나길 기다렸다.


그런데 한 가지 이해 안 가는 것이 있었다.  새롬이는 왜 그 방송댄스에 집착을 할까. 준우가 보기에  새롬이는 자기보다 그다지 춤실력이 나아 보이진 않았다.  동작은 과장되게 크고  힘은 넘쳐나 보이지만  전혀 박자를 못 맞추기 일쑤이고  어쩔 땐 안무하고 전혀 다른 동작을 제멋대로 지어내 추기도 했다.  선생님도  여러 번 지적을  하시다가 나중에는 포기하셨는지 그냥 내버려 두시는 눈치였다.  준우는 어쩌면 자기를 자꾸 옆에 세워 두려 하는 게  그래도  저보다는 새롬 자신이 훨씬 낫다고 생각해서 들러리를 세우려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기도 했다.  한 번은 놀이터에서 놀다가 물어본 적이 있다.

“ 새롬아 넌 왜 방송댄스 신청했어? 재미있어? “

“ 그럼  난 YG 연습생으로 들어갈 거야”  

“그게 뭔데.”

 “바보야 넌 정말 아는 게 뭐니.   블랙핑크언니들 몰라?   어쨌든  난 일찌감치  내 재능을 찾아서 유명해질 거야.  돈도 많이 벌고.. 유명해지면 그냥 유튜브만 해도  구독자가 몇십만 몇백만 되는 게  우습다고.   우리 언니는  중학생인데  매일 공부만 해  어떻게 그렇게 하지. 근데  엄마는  왜 그렇게 공부를 안 하냐고  매일 뭐 라그래.  그래서 난 집에도 미리 얘기해 두었어. 난 연예인으로 성공할 거라고.  근데 별로 신경은 안 써.  언니가  외고인지 뭔지 시험을  앞두고 있어서 온통  거기에 신경이 팔려 있다니까.  난 4학년때까진 봐준다고  그때까지   실컷 하고 싶은 거 해보라고 그러더라고”.

 준우는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새롬의 말에서 어쩐지 승태와는 또 다른 격차를 느꼈다.  다들 유치원 이후에 무슨 일들이 있었던 것인지.


오늘 방송댄스 시간에는  5명씩 한 조가 되어 총 4팀이 배틀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20명 중 3명이 결석을 했기 때문에 2팀은 6명 한 팀은 5명으로 인원을  구성하기로 했다.  그리고 팀별로 따로  30분 동안 연습할 시간이 주어졌다.  준우가 속한  팀 친구들은  원래 뉴진스 5명의 포지션을 자기들끼리 정해두고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대로 각자 자신의 파트를 춤추었다.  마치 준우는 애초에 그들의 팀이 아니었다는 듯이 배제되었다.   준우는 그게 조금 서운하긴 했지만  크게 신경이 쓰이진 않았다.  자긴 어차피 춤을 잘 추지도 못하고  이미 여자 아이들끼리 사전에  같은 팀을 하자고 하고 어느 정도 협의된 것이 있는 듯했다.  굳이 거기에 끼어들어 자기 자리를 주장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 바람에 준우는 그냥  혼자  뒤에서  모든 동작을 눈치껏  어설프게 따라 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연습이 마무리되어 갈 즘 옆팀에서  한바탕 싸움이 일어났다.    새롬이가 속한 팀이었고   소란의 주범은 역시 새롬이었다.   중재를 하는  선생님을 사이에 두고 새롬이와  나머지 다섯 명이 갈라져 서로 다른 이야기를 했다.  

“샘 얘가 자꾸 춤을 이상하게 추고  자기 차례도 아닌데 앞으로 나와서 춤추고 자기 멋대로 해요. “

“  아니에요. 얘네들이  자기들끼리만 순서 정해서 하고 전 그냥 뒤에서  추라쟎아요.”     

 준우는 새롬이가  자기와 비슷한 역할일 꺼라 생각했다.  다른 것이 있다면  새롬이는 자신이 센터이기를 원했다는 것이다.   춤도 잘 못 추면서.   결국  새롬이는  알 수 없는 동물의 울음 같은  소리를 지르곤  손으로는  눈물을 훔치며 강당을 나가버렸다.    사실 새롬이가 우는 것을  준우는 그때 처음 보았다.   당황한 건 선생님도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새롬이의 괴성이 너무 크고 짐승 같아서  다들 한동안 멍하니 새롬이 사라진  강당 출입구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잠시 정신이 없던  선생님이 다시 정신을 차리고  새롬을 쫓아나갔다가 잠시 후 다시 돌아와  아이들을 진정시키고 수업을  마무리했다.


방과 후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오는 길에 준우는  여전히 빨간 띠가 둘러 쳐진 놀이터 안 미끄럼틀 위에 앉아 있는 새롬이를 보았다.   준우는 주변을  한번 살피고  조심스레  띠 사이를  벌리고  몸을 숙여 놀이터 안으로 들어갔다.

 “야 너 여기 들어오면 안 돼”  미끄럼틀 밑에서  새롬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 넌 왜 들어왔는데”    새롬이는  미끄럼틀 난간에 다리를 내놓고 흔들면서  준우를 내려다보았다.   

“괜찮아 아무도 뭐라 안 그래  어차피 공사도 안 하고 있는데 뭐”

“너 괜찮아 “

“ 씨  웃기고들 있어.  어디서 춤도 못 추는 것들이”

 준우는 핸드폰 시계를 한번 보고 미술학원까지 아직 시간이 남아 있음을 확인하고는  슬며시 미끄럼틀 계단을 올라가  새롬이와 한걸음 정도 떨어진 자리에  조용히 앉았다.   

“누가 올라오래 “  새롬이 이죽거리며 말했다.

  준우가 슬쩍 고개를 돌려보니 아직 새롬의 눈가에는 눈물자국이 가시지 않았다.   준우는  새롬의  핀잔에도 그냥  말없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  새롬이도 더 이상 뭐라 말하지 않았고 이따금 분이 안 풀렸는지  씩씩거리는 거친 호흡을 내뱉었다.  

“ 너도 내가 춤못춘다고 생각하지”

 잠시의 침묵을 뚫고 새롬이가 말했다.    준우는  자기보단 잘 춘다고 말했다.  

“ 씨 어렸을 땐 내가 춤추면 아빠가 얼마나 손뼉 치고 좋아했는데.  이게  다 이 아파트 값이 똥값이 돼서 그래.  “

  준우가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자 새롬이 아는 척을 했다.

“ 엄마 아빠가 그랬어 여기 잘못 이사 왔다고   무리해서 빚도 지고 그랬는데    그러니까 언니가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한데.  매일 집 걱정. 언니걱정뿐이야 이젠 내가 춤을 춰도 별로 좋아하지 않아.”

 준우는   새롬의 이야기에 왠지 위안을 받았다.  새롬이네 엄마 아빠도 그런 이야기를 하느구나. 우리 집만 그런 건 아니구나.    

“근데  난 언니가 더 싫어. 나 보고도  춤춘다고 그만하고 공부 열심히 하래.  여기 사는 애들 다 똑같은 게 아니라나   우리 집 같은 애들은 공부라도 잘해야 한데.. 잘난 척 하기는. “

  준우는  다시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새롬이를  혼자 두고 가는 게 좀 거슬렸지만  미술학원을 빠질 수는 없었다.  지난번에 만들다만  타노스의 건틀렛 장갑과 토르의 망치를 완성하고 색도 칠해야 한다.  또 오늘 결제일이라고 엄마가 카드를 주셨다.  새롬이랑 이야기를  나누는 바람에 조금 늦었기에 준우는 또 달려야 했다.  1시간 20분의 미술시간은 하고 싶은 것들을 다 만들고 그리기에는 너무 짧았기에 조금이라도 늦고 싶지 않았다. 준우는 새롬에게 인사를 하고  학원이 있는 옆 단지로 달려갔다.    1층 엘리베이터가 번잡하고 느려서  준우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3층까지 계단을 이용해  미술학원으로 올라갔다.  선생님한테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둔하고  2번 교실로 뛰어가  지난번 만들던 자신의 작품을 확인했다.  일주일  만에 보니  지난주에  중간과정까지 만들어놓고  뿌듯했던 것만큼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얼른  앞치마를 챙겨 두르고  글루건을  콘센트에 꽂았다.    

“선생님  왜  안 들어와요   저 이거 도와주셔야 해요”

“ 음 잠깐 다 했어 잠깐 기다려   준우야.”

   나무로 만든 가벽을 사이에 두고 옆교실에 계신  선생님이 숨을 몰아쉬며 대답을 했다.  그제야  준우는 뭔가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린다. 아까 1번 교실이 뭔가 휑해 보였는데.  준우는 2번 교실을 나와 바로 옆 1번 교실을 들여다보았다.  1번 교실의 비품과 작품들은  깨끗이 비워져 있었다.   선생님은  아이들이 찾아가 지 않은  오래된 작품을  파쇄해 쓰레기 봉지에 넣다가 준우와 눈이 마주쳤다.   

“다 했다.  자 옆교실로 가자”   

선생님은  준우의 어깨를  잡고  준우를 돌려세워 앞장 세우며 옆교실로 이동했다.   

“샘 근데 왜 저 쪽 교실은  종이랑 만들기 재료들이랑  다 치웠어요? “

“ 음 그냥 청소 좀 하는 거야”

  선생님의 음성에 어쩐지 평소와는  다른  한숨이  묻어 있었다.  

“자 지난번에 어디까지 했지.   오늘은 아크릴 물감하고 크레파스 사인펜 같은 걸로  이 방패랑  망치를 좀 꾸며줘  볼까. 색도 칠해보고”

“  네 근데  그전에 여기 이 부분이 마음에 안 들어요 좀 떼어내고 다시 만들어서 붙이고 나서요.   근데   시원이는  오늘 안 오나요? “

시원이는 1학년때 이 클래스에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함께 했던 친구였다.   처음엔 5명이 있었는데  하나 둘  학원을 그만두더니 지난겨울부터는 둘이서만 계속 수업을 듣고 있었다.   

“응 아마 이제 안 나올 거 같아.   그리고  준우야…. 음… 그거 글루건 조심해 “

   선생님은 무슨 말을 할 듯 말 듯 하더니  말을 돌리고는 그냥 한숨을 쉬시며  팔짱을 끼고 앉아 준우가 만드는 작품을 멍하니 바라보셨다.   준우도  시원이마저 안 나온다니까  좀 기운이 빠지는 것 같았다.  물론 미술시간에는 진짜 미술 작품을 만들고 그리는 게 좋았지만 그래도 중간중간 시원이와 장난도 치고 서로의 작품에 대해 참견도 하고 그래서 더 재미있었다.  그런데  이제 그런 시원이가 안 나온다니  좀 서운했다.  생각해 보면 최근 들어 미술학원에는 부쩍 아이들이 줄었다.   전에는  준우가 오기 전 앞타임에도 두 교실에  최소한 3-4 명씩은 있었고  준우가 끝날 때도 뒷타임에 대여섯 명의 아이들이 오곤 했는데. 요즘은  학원에 도착하면  준우랑  시원이만 있는 경우가  많았고  끝나고 나서도 한두 명의 아이들이 오는 게 전부였다.   옆교실엔   몇 주 전부터 아예 수업이 없었으니까 선생님이 청소를  하는 것도 당연하다 생각했다. 아무튼  선생님도 아이들이 다 나가니까 기운이 없으신가 보다 생각하고  준우는 살짝 선생님 눈치를 살피면서 토르의 망치를 출력한 사진을 옆에 두고  물감으로  망치에 색을 입혀가기 시작했다.

준우가 어벤저스에 빠진 것은 지난 겨울방학 때였다.   아빠는 직장을 다니는 데다가 저녁에는 무슨  다른 부업을 한다고 해서 늦게 들어오고  엄마도 파트타임으로 오전에 일을 하셔서  특별히  한 달 치 디즈니 플러스를  끊어주셨다.  사실 엄마는 전체관람가인  애니메이션을  심심할 때 보라고  해주신 거지만  우연히 엄마랑 함께 보는 조건으로 어벤저스 시리즈를 보고는 홀딱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시리즈마다 등장하는  여러 캐릭터들 각각의 필살기와 무기, 복장 등을  분석하고  성격적 특징을 도표로 정리하기도 하고  서로의 관계도를 그려보기도 했으며  각 캐릭터를 만화로 그려보기도  했다   그물처럼 얽혀있는  이 새롭고 기이한 세상이 맞물려 돌아가는 모습이 너무 재미있었다. 각각의 영웅들과 그들이 가진 능력에  슬쩍 자신을 대입해 보면서 상상을  펼쳐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영화에도 영웅들끼리의 대결이 잠깐씩  나오지만 진짜 누가 가장 강할까  머릿속으로 그들의 대결을 상상해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악당 타노스에  왠지 마음이 끌린다.   준우는  타노스가 왠지 늘 슬퍼 보였다.   우주의 절반이나 되는 사람들을 사라지게 만들 계획을 실행시키지만  그는  그것도 우주를 구하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왠지 가장 강한 힘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어쩐지 외로워 보였다.  

“선생님  정말 사람들이 반이 없어지면  어떨 거 같아요?”

  뜬금없는 질문에 선생님이 영문을 모른다는 표정을 지었다.

“ 왜 있잖아요. 어벤저스에서 타노스는  인구를 반으로 줄여야 된대요.  그래야 우주가 파괴가 안된대요.

”준우는 어떻게 생각하는데? “

“사실  만약에 그럼  학교 방과 후에 애들이 적어지면  제가 하고 싶은 수업에 당첨될  가능성이 좀 더 생길 것 같아요. 학교에도 미술 방과 후가 있는데 지난번에  20명까지만 되는데  60명이 넘게 지원했었거든요.  인구가 반이 되면  30명이 지원하는 거고 그럼 좀 더 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는 건 맞는 거 같아요.”

“  그 없어진 사람 중에 준우가 있으면? “

“  그럼 안 되죠.  나는 토르니까”.   

준우는 방금 다 칠한 토르의 망치를 들고  장난치며 교실을 한 바퀴 빙그르 돌았다.   

“ 내가  그 사라진 인구 중 한 명인 것 같다”  

선생님이 혼잣말처럼  내뱉었다.   

“샘 봐봐요 멋있죠”   

샘이 오늘따라 칭찬을  별로 안 하는 게  아쉬웠다.   준우는 한번 더 진짜 같지 않냐며 목소리를 더 크게 해서 선생님의 관심과 동의를 종용했다.  그제야 선생님은  손을 올려 하이파이브 자세를 취했고  준우는 선생님의 손이 저리도록  세게 손바닥을 마주쳤다.  


“샘 좋아하는 게 있는데 그걸 잘 못하면 해야 돼요 말아야 해요. “

“ 오늘 준우가 질문이 많네. “

“제 친구 중에 춤을 잘 못 추는데  걸그룹을 하겠다는 아이가 있어요.   근데  그 친구가 오늘 막 울었어요.”  

준우는 낮에  새롬에게 있었던 이야기를 선생님에게 해 주었다.

“준우는 뭐가 하고 싶은데?”

“  모르겠어요  근데  미술시간이 좋아요   뭐 만들고 막 그리고 그런 거  좋아요. “

“준우는 그래도 잘하는 걸  좋아하는 거 아닌가.   그림도 잘 그리고 만들기도 잘하니까 “

“샘도  미술 좋아했어요?”

“ 그럼 좋아했으니까 전공을 했지”

“ 그럼   샘도 좋겠네요.  좋아하고 잘하는 걸 하고 있으니까.  

준우는 선생님의  표정이 어딘가 어두워지는 것을 보았다.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려다가  결재를 해야 하는 걸 기억해 내고는 가방에서 카드를 꺼내 선생님께 내밀었다.   선생님은 잠시 생각을 하는 듯 머뭇거리다가 카드를 다시 준우에게 건넸다.

“ 엄마한테 전에 문자를 보내드렸는데 못 보신 모양이구나.     사실 준우야 선생님이 사정이 생겨서 여기 학원은 다음 주까지만 할 것 같아.    그래서  결재는 안 해도 된단다.  그냥 다음 주는 와서 놀다가.    엄마한테는 샘이 따로 연락드린다고 해.   너 작품들도 다  모아 놓을게.  나중에  찾아가고.”

“   왜요? “

 준우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은 얼굴로  빤히 선생님을 쳐다보았다.  선생님은  대답 대신 준우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고  무릎을 굽혀 앉아  준우를 꼭 안아주었다.   준우는 잠시 안겨 있다가 선생님을 밀쳐내고 다시  물었다.  

“거짓말이죠? 엄마가 그만둔다고 한 거죠?  우리 엄마가  그런 거 죠만?  그렇죠? “

  선생님은 갑작스레 흥분하는 준우를 난처하게 바라보며 아니라고 했지만 준우는  교실로  씩씩거리며 돌아들어가  타노스의 장갑을 들고  쿵쿵거리는 발걸음으로 성큼성큼  선생님 옆을  지나쳐 미술학원을 문을 열고 나왔다.  선생님이 따라 나와  불렀지만 준우는 대답도 않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었다. 뒤를 돌아보면 눈물이 쏙 나올 것만 같았다.   다음 주에 꼭 보자는 선생님의  말을 뒤로하고 준우는 비상계단 철문을 열었다.   

밖은 어느새 어두 어둑해져  노을 끝자락이 서쪽 하늘에서  힘없이 스러져 가고 있었다.  그 대신 학원과 병원과 음식점들이 몰려 있는 상가 건물들엔  갖가지 광고판들의 네온이 아무런 규칙 없이 시끄러운 불빛들을 내뿜기 시작했다.  준우는 터벅터벅 걸어가면서 건물들을 올려다보았다.  전에 다니던  태권도  피아노  영어 학원의 간판들이 잇달아 보였다.  그리고  건물마다  하나씩은 자리 잡고 있는 미술학원 이름들을 살펴보았다.    피카소 미술학원   모네의 정원 미술학원    별그리미  미술학원 …     그리고 문득 손에 들고 있던   타노스의  장갑을 바라보았다.   학원이 너무 많아.  그러니까   이 들 중 반만 없어져도  아이들이 우리 미술학원에 더 올 거고 그럼  친구도 더 생기고  선생님도 그만두지 않아도 돼!   준우는  캠핑 장갑 위에   커다란 비즈로 장식한 타노스의 장갑을 조심스럽게  오른손에 끼웠다.   그리고  건너편 건물에 있는  달리의 수염이라는 미술학원을 향해  조준하듯  손을 내밀었다.   셋, 둘, 하나.   준우는  엄지와  중지를  튕겼다.   바로 그때였다.  강한 섬광이 준우의 눈앞에 펼쳐졌다.  찰나 같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준우는 그 순간이 매우 길게 느껴졌다.  그리고  진짜 세상의 반이 사라지고 있는 것을 보았다.  먼저 승태의 무리들이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자전거와 함께 재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새롬이의  팀원들이   몇 명이  춤을 추다 춤을 추는 연기가 되어  사라졌고 새롬이는 빈 센터자리로 춤을 추며 비집고 들어왔다.  그리고  학원  간판들이 하나둘씩  불이 꺼지며 사라져 갔다.    피카소도  모네의 정원도 별그리미도 모두 사라졌다.   아이들의 오후   그러니까 준우의  미술학원 간판만이   밝은 빛을 내뿜으며  그대로 있었다.   그런데   줄이 둘러진 아파트 놀이터의  놀이 기구들이 하나둘씩 사라져 간다.  이건 아닌데  이건 아닌데   놀이터는  내 예상에 없었는데  하고 있는데  착용했던 타노스의 장갑에서 뜨거운 감촉이 전해지며  장갑의   손가락들이 하나둘  재로 변해 사라지고 있다.    준우는 소리를 지르려 하지만  목에서 소리가 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자동차 경적소리와. 브레이크  밟는 소리  그리고 사람들이 비명소리가  들리다가 이내 잠잠해졌다. 그리고  서서히 눈앞은 어두워져 갔다.


 

여름방학이 될 무렵에야  놀이터는 다시 개방되었다.  두 달 가까이 다리에 깁스를 했던  준우는 우연찮게  놀이터 재개장 날에 맞춰  깁스를 풀었다. 그러나 뙤약볕이 작렬하는 놀이터에 아이들은 아무도 나와 놀지 않았다.  다행히  다리의 타박상과  골절 외에 교통사고의 후유증은 없었다.   휴대폰에  새롬이의 문자가 와 있다.   밤에 해가 진 후  9시에 놀이터로 나오라는  메시지였다.   저녁을 먹고 엄마한테  조심하라는 걱정과  잔소리를 한 바가지 얻어 듣고서야 외출 허락을 받은 준우는 어두운  놀이터로 향했다.  여전히 놀이터는 텅 비어있었다.  새롬이는 보이지 않았다.  두리번거리며 새롬을 찾고 있는데  갑자기 핸드폰 불빛과 함께 핸드폰으로 댄스곡의 웅장한 전주가 흘러나오고 미끄럼틀 뒤에 숨어있던  새롬이가  예의 그 과장스런  동작을 하면서 튀어나온다.   숨이 차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이거 내가 새로 안무 짠 거야.  이건 솔로로 나 혼자 추는 춤이야 잘 봐.“    아파트 창에서 나오는 불빛들을 배경으로  새롬이의 검은 실루엣이  여전히 엉성하고 품이 큰 동작들을  반복하고 있었다.   준우는 왠지 자꾸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여름 방학이 끝나면  준우네 집은 이사 가기로 결정을 했다.  이제 이런 새롬의 모습도 더 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니  다 나았다고 생각한 다리가 자꾸 저리고 아파왔다.   후덥지근한 공기가  맴돌았다. 밤에도 바람 한 점 안 부는 무더위가 시작될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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