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나에게 넌 라면 같은 사람이었나 보다
오랜 외로움에 지쳐
굳이 네가 아니었더라도
누군가의 살갗과 온기가 있는 다섯 손가락이
물기 없이 투명하고 또렷한 눈동자를 그토록
하염없이 바라보고 싶었나 보다.
한 여름 목마른 사슴처럼 갈증에 못 이겨
들이켰나 보다.
눈부신 봄 보다 따듯한 너를 만나
단념에 가까운 눈물을 쏟는 걸 보면
지친 허기에 배가 고픈 영혼이었나 보다.
값싼 라면 한 그릇 같은 너.
부담 없이 왔다가 젓가락 놓으며
돌아서는 우리가 충돌 없이 비켜가도록
오늘도 봄의 날씨는 저 혼자 저리 맑구나.
이제 어둠 속으로 별빛 같은 너의 환영이
네온사인을 타고 흐르는구나.
잘 가라. 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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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HONG
2017. 05.17에 초안을 썼고,
2024.10.24. pm: 7:00에 수정 첨언 하였다.
** 2017년에 저 글을 썼을 때, 짝사랑하는 누군가가
있었어요. 야근을 하고 심야 밤 11:40 지하철을 타야 했을 때 저녁도 못 먹은 나를 위해 근처 문을 연 김밥천국에 가서 빨리 나올 것 같은 라면을 시켰습니다.
둘이 먹었지만, 고개를 들어 그 사람의 눈을 정확히 정면으로 볼 수 없는 마음이었어요. 그 짝사랑이 원래 한 사람의 단념, 아니겠습니까? 결론을 알기에, 결과를 알기에 숙인 고개. 그래도 혼밥 보단 나았을 거라고 고맙다고 했습니다.
라면 위에 올려진 계란이 내게 단념을 재촉하는 <또렷한 눈동자>로 보였어요. 그래서 문장 중에 표현했고, 그런 갈등과 갈망은 결국 <허기>로 은유되는 게 아닐까 싶어 글을 썼던 것 같아요. 가질 수 없는 마음, 배고픔. 텅 빈 마음이요. 허기란 것이.
지나서 생각하면 죄다 이불킥 이겠지만, 글로 써놓은 걸 7년의 세월 후 다시 보니.. 것도 제법 청춘의 한 페이지로 아름답습니다. 후후. 밖은 네온사인 흐르는 도시, 안의 김밥천국에서 두 사람의 라면 먹는 장면이 연상이 되면서... 끝이 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