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런과의 슬기로운 동행생활
<명사>1.(이야기, 연극등의 중심인물인) 악당 2. 악인, 악한 3. 범죄자
<반의어> hero 영웅
학교에 등장하는 빌런은 사실 반드시 퇴치해야 할 악당급의 인간은 아닙니다.
돌아보면 그들의 입장이 이해가 되고 대상에 따라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 나 자신이 원망스럽기도 하지요.
각종 성인들의 명언과 자기 계발 책에서는 상대가 문제가 아니니 스스로 먼저 변하라고 합니다.
물론 그게 진리임은 분명하지만 지금 당장 나를 지킬 방법이 필요합니다.
하여! 조금이라도 나의 잠을 방해하고 나의 즐거운 하루를 망치게 된다면....
일단! 퇴치해야 할 빌런이라고 규정하고 대응해 보는 것도 마음이 편해집니다 ㅎㅎㅎ
그렇다고 꼭 이겨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는 게 이기는 것이다"라는 말처럼 지는 것도 이기는 상황이 되기도 하거든요.
결국에는 객관적인 시각을 가지게 되고 모두에게 여유로운 내가 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며 이제는 어느 정도 방법을 터득하기에 이르렀어요
저만의 빌런 퇴치법 한번 들어보시겠어요?
"교장 나오라 그래!" 일단 소리부터 지르는 학부모님이 계십니다.
결국에 교장실에서 차 한잔 따끈하게 드시고는 웃으시며 나가실 거면서요..
"누구 맘대로 일처리 하시는 거예욧!" 납득할 수 없는 상황에 화부터 내는 관리자분도 계십니다.
"진작 그렇게 말하지 그랬어~~?" 라며 두배로 더 친절하게 얼르시고 웃으실 거면서요..
"잠깐 얘기 좀 하시죠!" 하며 문을 쾅 닫고 나가버리는 실장님도 계십니다.
그분 역시 내일 아침엔 굿모닝 하며 나타나실 거예요
너무 정상적인 분들을 예시로 들면서 빌런이라고 해서 좀 민망한 면이 있지만, 학교라는 곳은 학생들의 쿠당탕탕 소리 외에 어른들의 큰소리는 다소 적은 곳이랍니다.
그런 곳에서 한 번씩 나는 큰소리는 그 사람을 빌런으로 만들기에 충분한 근거가 됩니다.
나이를 먹으면서 저는, 그렇게 자기 의사가 분명한 분이 편할 때도 많아졌어요.
원하는 바를 펼쳐놓고 서로 얘기하거나 해결하면서 서로를 이해할 수도 있더라고요.
사실상 모두들 느끼고 있었던 문제점을 가장 예민하게 느끼고 있는 사람 일수도 있어서 그분들로 인해 상황이 개선되기도 합니다.
우는 아이 젖 준다고 , 일단 크게 울어 젖히면 당할 제간이 없습니다.
누구라도 그 사람의 말을 들어줘야만 할 것입니다.
꼭 문제를 해결하지 않더라도 그들이 마음속의 말을 모두 내뱉을 때까지는 귀를 열고 들어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한쪽 귀는 없다~~라고 생각하고 그저 듣고만 있어요.
옆에서 보면 작게 움츠러든 사람이 목소리 큰사람에게 그저 혼쭐이 나는 듯한 우스꽝스러운 장면입니다.
어쩔 때는 귀가 먹먹하기도 할 정도로 큰소리치는 분들도 있지만, 어느새 문제는 해결되고 들어주는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로 보답해 주는 분들이 많습니다.
소리치는 사람이 빌런이라면 점잖은 사람은 호인일까요? 꼭 그렇지만도 않더라고요.
인자함과 근엄함은 다른 의미임에도 불구하고 유교적 관념이 큰 우리나라에서는 같은 개념으로 보는 듯해요.
근엄한 태도 하나로 인자하다는 이미지까지 얻어가시는 거죠.
진심으로 인자하고 배려심 깊은 분들이 많은 곳이지만, 반전으로 너무 냉정하고 칼 같아서 소름 끼치는 분들도 빌런 리스트에 등재하기 충분합니다.
H교의 실장님은 "차 한잔 합시다"라는 말이 그렇게 무섭다고 하셨어요.
교장실로 와서 조용하게 차 한잔 하며 대화하는 시간이 그렇게 고문일 수가 없다는 거예요.
조용히 말씀해주시는 건 실장님을 존중하는 게 아니냐고 제가 물었더니 절대 그렇지 않다고 , 결국 답은 정해져 있는데 "그대로 할게요"라는 말을 듣고 싶어서 끝까지 이 말씀 저 말씀 하신다는 거예요.
한 번은 집에 있는 아이가 아파서 급하게 조퇴를 해야 한다고 했는데, 한 시간이 지나도 결재를 안 해주시는 거예요.
되면 된다 안되면 안 된다 말씀이라도 해주시면 빨리 조치를 하겠는데 계속 협의회 중이라며 결재를 미루시는 거죠.
이쯤 되면 가지 말라는 말이겠구나 싶어 복무상신을 취소하셨다고 해요.
면전에서 거절 당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다 위로하면서요.
그런데 어쩌다가 알게 된 사실은, 다른 분들도 그런 식으로 결재를 못 받거나 개인의사를 무시받은 적이 많다는 거예요.
한번 들어주면 당연한 줄 아니 쉽게 들어주지 않았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하는 분들도 계신다고 하네요.
냉혹한 빌런들을 감정적으로 대하면 내 에너지만 소진됩니다.
부탁하거나 대들거나, 결국은 눈물로 호소한다고 해도 꼼짝도 안 하는 강철멘털이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그들의 체면을 손상시키는 상황을 연출하면 정말 무사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요? ㅎㅎㅎ
그런 빌런들 앞에서는 쭈글이가 되는 것이 현명할지도 모릅니다.
하얀색 깃발을 흔들면서 항복을 선언하듯이 "당신이 이겼어요" 하고 빨리 의사 표현하는 겁니다.
결재해주면 좋고 아님 말고 하는 식의 단순한 마음가짐이 멘털건강에 더 좋습니다.
혹은 " 저는 성격이 급하니 빨리 답변 주세요 아님 그냥 취소할게요" 식으로 먼저 마감시간을 종용하고 그냥 포기하는 방법도 필요합니다.
울다 지친 못난이 삼 형제 중에 하나로 보이겠지만 제 속이 편하고 시간낭비 안하면 그게 최고지요.
이 유형은 공직자분들 중에 정말 많은 유형의 빌런일 것입니다.
만약 이런 분들이 많다면 조직은 힘들게 돌아가게 되겠지요.
느리게 움직이고 가다가도 멈출 수도 있을 거예요.
대항하는 사람은 본인도 모르게 내상이 생길 수도 있어요.
그러니 잘 보시기 바래요~ 인자함인지 가짜인지를요!
지나고 보니 나쁜 의도가 아니었는데 적대적으로 대할 수밖에 없었던 인연이 있어요.
상대가 강한 성격이었던 건지 내가 성급했던 건지, 그 상황을 다시 돌리고 싶은 사건도 있지요.
내가 그 사람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다시 한번 곱씹어보게 되는 사람들도 생각나네요.
사랑하는 연인들에게도 이별이 있듯이 , 그 상황에서는 서로가 빌런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 변명해 봅니다.
그분이 4차원 일수도 있지만, 사람은 모두 각자의 차원에서 살아가는 것이니까요...
요즘 많이 이슈가 되고 있는 MZ 세대 사원들 역시 공직사회에서도 재밌는 얘깃거리입니다.
그들을 대하기 어려운 기성세대도 있겠지만 기성세대를 빌런으로 보는 MZ 세대도 있겠지요.
옛날 말에 대답만 잘하는 막둥이란 말이 있어요
대답만 잘하고 실제로는 제대로 해내는 일이 없다는 뜻으로, 미워하려야 미워할 수 없는 막둥이에 대한 사랑이 녹아있는 표현이지요.
세대갈등은 어쩌면 서로에 대한 애정이 존재하는 갈등 같기도 합니다.
세대 간 갈등을 겪는 우리 사회의 관습들이 과연 개인의 존엄성과 행복추구에 걸림돌은 되지 않았는지, 나 역시 거기에 맞춰서 살아온 대가로 어린 세대들에게 보상을 바라진 않았는지...
이런 돌아봄이 한 단계 더 넓은 세계관을 가지게 하는 계기가 됩니다.
본인이 살아왔던 교직생활에 맞춰주기를 남들에게 강요하지만, 그 누구보다 학생들을 사랑하고 모범적이었던 선생님도 생각납니다.
무슨 일이든지 처음이라며 설명과 지원을 요청하는 피곤한 분도 계셨는데요, 그분의 장점과 열정을 인정하고 보니 그동안의 일들이 별일이 아니더라고요.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는 사람이니, 싸울 때 싸우더라도 내 마음에 쌓이는 게 없다면 건강한 관계를 유지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공교육 예산을 눈먼 돈이라 오판하며 어떻게든지 수익을 남기려는 업체 대표님들을 가끔 만나게 되면 실랑이하느라 정말 많은 에너지가 필요했어요.
하지만 학교를 힘들게 하는 분들보다 도와주시는 분들이 훨씬 많기에 아직은 일할 맛이 납니다.
사실 학교와의 계약은 너무 섬세하고 잔일이 많아 업체분들이 꺼려하는 편이라고 들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렴한 예산으로 발 벗고 도와주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런 태도를 당연시하지는 않았나 스스로 반성해보기도 합니다.
아스라이 하얀 빛
한동안은 꺼내 볼 수 있을 거야
아낌없이 반짝인 시간은
조금씩 옅어져 가더라도
너와 내 맘에 살아 숨 쉴 테니
여긴, 서로의 끝이 아닌
새로운 길 모퉁이
익숙함에 진심을 속이지 말자
고마웠어요 그래도 이제는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사건의 지평선 / 윤하)
https://www.youtube.com/watch?v=BBdC1rl5sKY
가수 윤하님의 "사건의 지평선"을 들으면서 인간관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생겼습니다.
처음엔, 도입부의 신선한 멜로디와 기타 소리에 마음을 빼앗겼는데요,
어느 순간 가사가 와닿아 저도 모르게 몇번이나 반복해서 듣게 되더라구요.
연인과의 이별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다른 세계와의 공존을 생각하는 윤하님의 세계관이 정말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직장에서 만난 인연들을 사랑하는 사람과의 인연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내 인생의 작은 부분조차 아끼는 마음으로 보면 그들과의 시간 역시 저에게는 소중한 추억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헤어진 사람을 미워하고 내 인생을 저주하는 것보다 한때의 추억을 아름답게 간직하고픈 마음과 같다고 할까요...
만약 일생일대의 빌런을 만났다 해도 너무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기로...
그 사람의 세계도 존재하고 나의 세계도 동시에 존재함을 인정하기를...
지금 이 순간 나의 시간이 아름다울 수 있도록 나를 지켜내기를...
오늘도 조용히 다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