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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비타 Dec 05. 2024

빌런보존의 법칙

행복한 학교를 꿈꿀 수 없는 이유

쓰는 사람, 버리는 사람


"왜 나한테 하라는 거예요? 나는 못해요. 실장님이 하시든가요..."


A학교 복도에서는 오늘도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어요.

못해요만 입에 달고 사는 선생님 한분과 땀 흘리며 달려와서 애원하듯 말하는 행정실장이 있네요.

문제는, 선생님이 사용하던 낡은 게시판을 복도에 그냥 방치해서 학생들이 다칠 뻔했기 때문이에요

본인이 원하는 스타일의 새 게시판을 설치한 후 오래된 게시판을 벽에 그대로 세워둔 상태였던 겁니다.



행정실장 :  좀 치워 놓으셔야죠. 힘드시면 업체에서 당연히 수거해가는데 말씀하시던지요 


선생님 : 시설은 행정실 일이잖아요? 제가 왜 신경을 써요?


행정실장 : 그게 무슨 시설이에요? 움직이는 물건이고 선생님이 원하는 걸로 사드렸잖아요...

               새 물건 받으셨으면,  낡은 물건은 불용신청하시거나 분리수거장에라도 옮겨놨어야죠. 


              다 같이 쓰는 공간에서 이건 좀 아니잖아요?

              애들이라도 안 다치게 옆으로 치워 둡시다.


선생님 : 아 그러게 제가 그걸 왜 하냐고요? 품의하는 것도 힘든데 잡무까지 제가 다 처리하라고요?

            답답한 사람이 옮겨욧!  한 번만 더 저한테 말하면 교장선생님께 다 이를 거예요.  


행정실장 :  학생들 다칠까 걱정되신다고 교장선생님 하시는 말씀 듣고 내려왔어요.

                물건 쓰는 사람, 버리는 사람 따로 있나요? 

                그게 무슨 대단한 일도 아닌데 그래요? 저랑 같이 옮기자니까요? 


사진 : unsplash의 fred johnson 



다양한 직종, 다양한 갈등


행정실장의 입장에서는 그 선생님이 이해가 안 되고, 그분의 입장에서는 행정실장이 이해가 안 됩니다.

학생들과 대화를 잘하는 직업적 특성 덕분인지,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친절하십니다

어쩌다가 학교에서 한 명씩, 대화가 안 되는 분이 꼭 나타나더라고요


교사 중에서도 직종별로 각자의 입장이 다르고, 소수 직종일수록 더 강하게 어필하는 것도 있어요

행정직과 교사뿐만 아니라 다양한 직종의 구성원도 모두 학교의 교직원이에요.

학교는 너무 다양한 직종이 함께 어울려 일하는 공간이고, 정말 다양한 시각이 존재해요.


그래서 더욱 서로에게 예의 바르고 조심스럽게 의사를 전달하게 됩니다.

결국 갈등이 생기는 사건을 들여다보면 그렇게 큰일은 또 아니랍니다.

직종 간 갈등이라기보다는 사실 개인의 문제인 경우가 더 많아요.

하지만 이런 일이 계속 쌓이고 반복되다 보니 점점 서로에게 힘든 공간이 되고 있어요.  


대화와 설득, 소통과 배려...

이런 게 가능하다고 책에는 있지만 현실적으로 빌런을 상대하다 보면, 딴 세상 이야기 같아요

끝까지 우기는 사람이 맞는 건지, 모른 척 넘어가면 이기는 건지...

동료들을 힘들게 하는 그들은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좋은 태도를 배우고 화합하는 분위기를 서로 만들어 가야 더 나은 학교가 될 거예요.

그걸 다 알고 있지만 그리 노력할 필요는 없다고 느끼는 걸까요?

정말 모범적인 분이 계셔도 특별히 인정받지도 않고, 빌런이 활보하고 다녀도 강하게 제지할 방법이 없는 곳이 학교라는 느낌이 들기도 해요.


결국 저도 '돈 받고 하는 직장생활이다..... 인간관계가 다 그렇지' 하며 조용히 넘어갑니다.

다시금 당장 해치워야 할 일에 고개를 파묻고 맙니다.

고민할 시간에도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은 점점 쌓이기 때문이지요.


사진 : unsplash의 duy pham



빌런 보존의 법칙


그렇죠... 맞아요... 좋은 분들이 정말 많은 곳이 학교라는 곳이지요

소통 잘 되는 분 , 배울 점이 많은 분, 친절한 분, 고마운 분...

좋은 것만 보고 살자 오늘도 긍정마인드 장착해 봅니다.


그러다가...

또 다른 갈등상황에 놓이는 자신을 봅니다.

행정실에서는 학교 구성원 모든 분들과 관련된 일을 하다 보니 자꾸 갈등상황이 만들어집니다 

빌런들을 겪어내는 나의 직장생활이 너무 소모적인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합니다.  


아침부터 분위기 망치는... 퇴근해도 자꾸 떠오르는... 바로 그 "빌런"!

그들의 입장에선 제가 빌런일 테고 제 입장에서는 상대가 빌런 일수도 있어요

만약 주변에 빌런이 없다면 바로 본인이 빌런이란 말도 있더군요 ㅎㅎ


학교를 옮겨도 또 다른 빌런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난번 빌런 정도면 다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쩜 그리 다양한 빌런이 존재하는 건지요?

빌런은 왜 일정량이 보존되는 걸까요? 

직장에 나가기 싫은  가장 큰 이유... 바로  빌런들 때문입니다. 


빌런은 어쩔 수 없다 해도 참 좋은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이 바로 학교라는 사실...

그 이유가 또 직장에 나가게 하는 힘이 되고 내일의 희망이 됩니다.


사진 : unsplash의 chang duong

표지사진 : unsplash의 brandee tayl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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