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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놀이 Aug 01. 2024

지금, 여기.

  우리는 인생이라는 소모품을 매초, 매분, 매시간 사용하고 있다. 머지않아 금방 늙고 병들어 생사의 기로에 서게 될 것이다. 그러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자. 그렇다고 자서전에 등장하는 위인들처럼 순간순간을 치열하게 살자는 것은 아니다. 이게 가능하다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공부만 하게? 그렇지 않다. 그저 지금 이 순간과 여기라는 장소를 느끼자.


  나의 이데아를 설명하면서 심리학과 대학원을 예로 들었지만, 다른 관심거리도 많다. 첫째로, 어느 날 문득 한국어 능력에 대한 흥미가 생겼다(나는 재외동포가 아니라 100% 토종 한국인이다). 영어 회화에 관심이 있던 나는, 영어를 10년 정도 독학했다. 외국인과 기본적이 대화는 가능한 수준이 됐지만, 생각보다 큰 재밋거리가 되진 않았다. 오히려 두 개의 언어를 할 수 있는 것보다 한국어 하나를 심도 게 구사하는 것이 훨씬 매력적으로 보였다. 한국에서 가장 논리적인 글이라는 수능 비문학 기출문제집을 구매해 시간 구애 없이 지문을 읽다. 둘째로, 수학과 물리 법칙 공부하고 있다. 나는 항상 이 세상에 대한 이해에 목말라 있다. 수학은 우주의 언어이며, 물리는 흥미롭고 알아두면 실생활에 요긴하게 쓰인다고 생각한다. 셋째로, 피아노를 배워보려 한다. 음악은 정말 오묘하고 신비로운 것 같다.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을, 연주를 통해 나타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남자는 늙을수록 눈물이 많아진다고 하지 않았던가. 지금 배워두면 10년 뒤, 내 삶의 아주 중요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리라 확신한다.


  위 내용들은 전부 내 직업과 전혀 연관이 없는 취미들이다. 어느 직장인이 쓸데없이 비문학 지문을 풀고 수학 공부를 하겠는가. 더군다나 나는 내 나이에 비해, 사회적 지위가 낮은 편이다. 나보다 어린 후배들이 더욱 치열하게 승진을 준비하고, 자격증 취득한다. 머지않아 나의 상사가 될 후배들이다. 뿐만 아니라 이미 나보다 나이 어린 상사도 한 트럭이다. 주위에서는 나를 안타깝게 보는 면도 없지 않다.

"능력은 좋은데.. 자네도 승진 준비를 좀 해보지 그런가.." 직속 상사가 말한다.

하지만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승진을 준비할 시간에 책을 더 읽고, 나 자신과 세상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것에 훨씬 큰 행복을 느낀다.


  그렇다고 내가 현실감각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나보다 어린 상사를 대할 때, 내 중심을 꽉 잡지 않으면 정신력이 흔들릴 때도 있다. 나도 느끼고 있다. 승진을 해서 나쁠 게 없다. 하지만 온몸이 요동치는 것을 어떡하겠는가.

'책 읽자! 벌써 설레는 걸?'

'비문학 보자! 이번엔 어떤 지문이 있을까?'

'수학 법칙을 이해하고 싶어! 이 세상과 더욱 가까워지는 기분이야!'

'오늘 많이 힘들었지? 내 심정을 음악소리로 표현하고 싶어!'


  이 나는, 내 이데아를 거부할 수 없는 몸이 돼버린 듯하다. 좀처럼 무시할 수가 없다. 무엇보다 너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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