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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놀이 Jul 30. 2024

플라톤 아저씨

  남들보다 부지런히 살아볼까? 꿈을 향해 달려볼까?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봉사해 볼까?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옳을까. 그 힌트를 플라톤에게서 얻었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들어봤는가. 천천히 차근차근 설명해 보겠다.


1. 이데아는 현상 세계 밖의 세상이며, 모든 사물의 원인이자 본질이다. 

예를 들자면 반지름이 2인 동그란 물체의 넓이는 4π고, 반지름이 3일 경우에는 9π라고 할 때, 이데아는 '원의 넓이는 반지름 제곱에 비례한다'가 되겠다.


2. 현상 세계에서 모든 것들은 낡고 사라지는 것에 반해, 이데아는 시간이 흘러도 그 모습을 변치 않는다.

동그란 물체는 외력에 의해 크기가 변하거나 사라질 수 있지만, 원의 넓이가 반지름 제곱에 비례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3. 이데아를 인간의 이성으로 알 수 있다고 해서 이데아가 인간 내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수학 법칙을 알기 전부터, 원의 넓이는 반지름 제곱 값이었다. 인간이 사라지더라도, 이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4. 현상 세계의 모든 사물은 이데아의 일부를 가지며, 이데아와 일치하지는 않는다.

인간은 저마다 반지름이 다른 둥그란 물체와 같다. 이데아의 법칙에 철저히 지배되지만, 이데아 그 자체일 순 없다.


조금 더 직관적인 예를 들어보겠다. 이데아를 염색체라고 생각해 보자. 우리는 정자와 난자가 수정되는 순간 23쌍의 염색체가 결정된다. 이 염색체는 나의 설계도와 같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나보다 본질적인 나에 더 가깝다. 내가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고 해서, 내가 나의 주인이라고 착각하기 쉽다. 위 4번에 적혀있듯이 이 세상은 이데아의 일부이며, 염색체를 지나서 나라는 사람을 인지하기까지 진리와 멀어졌으면 멀어졌지, 더 가까워질 순 없다. 요컨대 새로운 가지를 뻗으면 뻗을수록 본질적인 나와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마치 우리의 민낯이 있지만, 사회생활을 할 땐 나라는 사람과 좀처럼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에겐 저마다 다른 이데아를 갖고 있다. 나는 인생을 각자 자신의 이데아를 찾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자기만의 아름다운 모습들이 있다. 하지만 뜬구름 잡는 소리로 들릴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장 먹고살 걱정을 하며,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사람은 명예와 권력을 찾는다. 바쁘디 바쁜 현대사회에서 이해하기도 힘든 이데아 타령이라니. 가볍게 무시하기 좋은 말이다.


  하지만 이전에 말했듯이, 우리의 인생은 찰나에 불과하며 아무런 의미가 없다. 돈과 명예를 따르기엔 기회비용이 너무나도 크다. 자신의 본질을 느껴보라. 이것이 인생 사는 방법이다. 이보다 좋을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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