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도대체 왜 사는 걸까. 오랫동안 나를 괴롭혀온 주제다. 내 삶의 목적을 이해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인간이 왜 존재하는지 생각해 본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인간에겐 사는 이유가 없다. 대게는 번식의 본능을 얘기할 테지만, 그것 또한 지구와 함께 언젠간 사라질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인간은 지능을 가지고 있으므로, 다른 생물과는 차별되는, 특별한 존재며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16세기에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에 의해 이미 인간은 우주의 중심이 아니란 것이 밝혀졌다. 이렇게 존재론적 회의감에 빠진 나는 항상 우울했고 활력이 없었다. 모든 것이 무의미했기 때문이다.
몇 년을 비관적으로 살았다. 아무리 신나는 노래를 들어도 감흥이 일지 않았고, 어두운 노래에는 슬픔을 초월하여 포근하고 안락한 느낌까지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신기하게도 내가 가진 모든 슬픔이 사라졌다. 드디어 의문에 대한 깨달음을 얻은 것일까? 그건 아니었다. 여전히 나는 왜 사는지 티끌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단지 수년 동안 내가 가진 모든 우울을 소모(?)해, 더 이상 슬퍼할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일까? 이제는 이성적으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내가 사는 이 시점을 이해한다면, 조금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 첫 번째 방법은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었다. 머나먼 과거부터 시작하면 흥미가 덜할 것 같아, 현재의 나와 가장 근접한 근현대사를 먼저 공부하기로 했다. 꽤나 두꺼운 책 여러 권을 읽었다. 하지만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말 그대로 대한민국 현주소와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약간 증가했을 뿐이었다.
역사는 단순한 사례에 불과한 것 같아, 근본적인 이유를 알기 위해 과학책을 보기 시작했다. 귀납법 보단 연역법을 선택한 것이다. `총, 균, 쇠', '제3의 침팬지', '이기적 유전자' 등을 읽었다. 이 책들은 꽤나 도움이 되었다. 간단히 정리하면, 빅뱅 이후 무기물만 존재했던 지구에서 우연히 유기물이 탄생했다(실제로 무기물만 들어있는 밀폐 공간에, 인위적인 번개, 풍수, 지진 등 자연 현상을 재현해 봤더니 유기물이 나타났다고 한다). 유기물이 모여 생명으로 재탄생 됐고, 그 생명들은 효율적인 번식을 위해 포식을 시작하며 진화했다. 변이를 통해 여러 종으로 분화됐고, 마침내 최초의 인간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탄생하게 됐다. 그리고 호모 사피엔스를 통해 현대인이 된 것이다. 존재론적 과정에 대한 상당 부분이 이해됐으나, 이것이 존재 이유일 순 없었다.
다음으로, 물리학에 대한 책을 봤다. 세상은 무한했고, 양자는 나의 최소단위였다. 온 우주(양자도 포함된 개념)는 수학과 물리법칙의 지배를 받았다. 이제야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결국엔 무한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우연한 탄생을 통해 지금의 나라는 사람이 이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특별하지 않았고, 아무리 확대해도 볼 수 없는 우주의 아주 작은 일부였다. 나는 무의미했고,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도 없었다. 사는 이유 따위가 있을 수가 없으며, 난 그저 찰나일 뿐이었다.
(....)
나의 결론이 너무 매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물리법칙은 우리의 간절함에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흐를 뿐이다. 그 무엇의 예외도 없이.
이렇게 나의 존재 기원에 대해 정리를 끝내게 됐다. 꽤나 괜찮은 결론이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만족스럽기까지 하다. 공부한 보람이 느껴진다. 그렇다면 이제 우연이라는 나의 운명을 받아들여, 의문을 품지 않고 그냥저냥 살면 될까? 그렇지 않다! 이 결론을 통해 연쇄되는 질문이 있다. 그것은 바로 '그렇다면 어떻게 살 것인가'다. 내 인생은 우주에겐 아무 의미가 없지만, 나에겐 전부다. 보잘것없는 나의 간절한 모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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